▲<인생이 왜 짧은가> 표지
숲
OECD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길게 일을 하는 나라 2위이다. 멕시코가 1위로 1년에 2236시간을 일하고 2위인 우리는 2163시간을 일한다. 최근 전 세계의 염려를 사고 있는 나라 그리스는 2060시간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서 사는 게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걸 이 지표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오래 일을 한다는 건,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오래 자기의 시간을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쓴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가장 오래 일을 하는 나라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는 어디인가?'라는 질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더해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남을 의식해야 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나보다는 공동체를, 나보다는 가족을, 나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해야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거기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비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는 쉬지 않고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경쟁적으로 그 어떤 목표를 향해 자기 자신을 수단화하게 되었다.
결국, 일을 할 때나, 일을 하지 않을 때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건.
그래서 우리는 자주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한 해를 마감하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봐도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다.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 열심히 달렸다는 사실, 열심히 비교했다는 사실, 그래서 결국 '번아웃' 되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우리는 더는 삶에서 충만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우리가 사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철학자인 세네카는 <인생이 왜 짧은가>라는 책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삶을 산다는 건 시간을 쓴다는 말이다. 그러니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선 시간을 잘 써야 한다. 그런데, 세네카가 보기에 로마 시민 중에도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재물을 노리거나 제 재물을 염려하느라 여념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공허하고 변화무쌍한 제 자신도 불만스러운 변덕에 쫓겨 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곤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목표를 전혀 세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하품만 하다가 느닷없이 죽음의 포로가 되지요. 그래서 나는 가장 위대한 시인의 신탁 같은 말이 진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요. "우리가 사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인생이 아니라 그저 시간일 따름이지요. - 본문 중에서 우리의 앞에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이 놓여있다. 시간을 가능성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시간은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네카도 말했듯, 우리 대부분은 시간을 삶으로 치환하지 못한 채 시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두곤 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좇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써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끝없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고, 어떤 사람은 쓸데없는 일들에 줄곧 매달리지요. 어떤 사람은 술에 절어 살고, 어떤 사람은 늘어지게 게으르지요. 어떤 사람은 항상 남의 판단에 매달리게 마련인 명예욕에 지쳐 있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에 쫓겨 이익을 좇아 모든 육지와 바다를 두루 쏘다니지요. - 본문 중에서
세네카는 시간과 맞바꿀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은 나눠주려 하지 않으면서, 시간은 쉽게 나눠준다. 시간을 나눠준다는 것은 곧 인생을 나눠준다는 뜻인데도 그렇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내 시간을 한 번 보내보려 하는데 하필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거절하지 못했던 적이 몇 번이던가.
그래서 세네카는 우리에게 충고한다. 가장 현명한 삶은 "자신의 시간을 조금도 빼앗기지" 않는 삶이라고. 그는 충고는 또 이렇게 이어졌다. 모든 시간은 우리 자신을 위해 비워두라고. 주어진 시간은 놀리지도 말고, 모든 시간을 이용하라고. 무엇보다 남의 지배를 받지 말라고.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은 좇지 말고, 재물이나 돈, 권력, 명예 등을 좇으며 삶을 낭비하지 말라고도 그는 말했다. "순간순간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쓰고, 하루하루를 마치 자신의 전 인생인 양 꾸려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삶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삶에서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일을 하지 않는 순간조차도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내 인생보다 더 중요하단 듯이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우리도 우리 삶에서 충만함을 좀 맛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개인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가끔은 나만, 내 삶만을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도 되는 것이다. 때로는 사회의 시선이나 주위의 요구에 무감해질 필요도 있다.
우리가 이렇듯 충만한 개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세네카는 이렇게 정리했다.
아무도 그대에게 세월을 되찾아주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대를 다시 한 번 그대에게 돌려주지 않을 것이오. 인생은 처음 시작한 그대로 흘러갈 것이고, 진로를 되돌리거나 멈추지 않을 것이오. - 본문 중에서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쫓기만 하다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삶. 그 누가 이런 삶을 살고 싶을까. 이런 삶을 살지 않으려면 우리는 세네카의 말대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가치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인생이 왜 짧은가 - 세네카의 행복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오래된 질문
루키우스 아니이우스 세네카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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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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