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같은 까오다이교... "이게 무슨 종교야"

[베트남-말레이시아 가족여행기 ②] 캄보디아 국경 인근의 까오다이교 총본산을 가다

등록 2015.08.12 11:20수정 2015.08.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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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오다이교 총본산 건물의 외양만으로도 다양한 종교가 혼융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 서부원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 변 곳곳에 깨끗한 천막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선명한 파란색과 하얀색 휘장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무슨 큰 행사라도 있는 걸까. 오가는 사람들도 대개 흰 아오자이를 입고 그곳을 들락거리거나 어디론가 분주히 가고 있는 모습이다. 행인이고 상인이고 다들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선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호치민 시티에서 차로 두 시간을 달려 캄보디아와 인접한 작은 도시 떠이닌에 닿았다. 20세기 초 이곳에서 태동한 신흥 종교인 '까오다이(高臺)'교의 총본산을 찾아가는 길이다. 길에서 본 천막들도, 흰 아오자이를 입은 사람들도 모두 이 종교와 관련이 있다. 듣자니까 이 도시 전체 인구의 팔 할이 까오다이교 신자라고 한다.


시내를 갓 벗어나니 언뜻 성당 같기도 하고 이슬람 모스크 같기도 한 큼지막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기둥마다 용 조각이 휘감고 있는 걸 보면 궁궐 건축 느낌도 나고, 지붕 여기저기에 작은 불상들이 얹혀있는 걸로 보아 중국식 사찰 같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장식이 돋보이는 까오다이교 사원 건물은 외양만으로도 종교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제국주의가 낳은 신흥종교, 까오다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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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입구에 놓인 관광객들의 신발들 예배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별도의 신발장이 마련돼 있지 않아 여기저기 헝클어져 있다. 이 역시 이슬람교의 영향이라 보여진다. ⓒ 서부원


때마침 예배가 시작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정오 즈음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이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축구장보다 더 넓어 보이는 예배당 내부에는 신자들이 제식 훈련하듯 줄지어 앉았고, 출입문 쪽 1층과 2층에는 성가대와 신자, 관광객들이 마구 뒤엉켜 어수선하다.

건물 내부는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총 천연색으로 화려하다. 그 어떤 포스터 물감도 그보다 선명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천정과 벽, 기둥에 하늘과 구름, 산과 바다, 꽃과 나무, 용과 새 등을 온갖 기하학적 문양과 함께 빼곡하게 새기고 그려 놓았다. 분명 교리와 연관된 것일 테지만, 마치 거대한 화폭에 그린 우리네 '민화'를 보는 느낌이다.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는 예배 공간 출입구에는 예수상과 부처상이 수문장처럼 나란히 지키고 서 있다. 다른 종교에서 떠받드는 신들을 제단 위가 아닌 한낱 문지기 삼은 배짱이 놀랍다 싶지만 꼭 그런 뜻은 아니다. 그들의 덕을 모두 존숭한다는 의미로 부러 세워놓은 것이란다. 공자와 무함마드의 가르침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가 혼융된 형태라고나 할까. 조선 말 유교, 불교, 도교의 전통에다 천주교의 교리를 수용해 이론을 정립하고 교세를 확장한 동학과 언뜻 유사하다. 아닌 게 아니라, 교리를 들여다 볼 것도 없이 예배 형식만 살펴봐도 유교와 불교, 가톨릭과 이슬람교 등이 어떻게 뒤섞여 있는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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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오다이교 신자들의 예배 모습 신자들이 좌우로 나뉘어져 앉아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서부원


예배당 내부는 남녀의 자리가 좌우로 철저히 분리돼 있을 뿐더러 출입문조차 다르다. 제단이 자리한 곳이 높고 입구 쪽으로 갈수록 점차 계단식으로 낮아지는데, 지도자와 평신도를 구분 짓기 위해서다. 남녀의 구분이 뚜렷하고 위계가 엄격한 것은 유교적인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베트남은 기원 전후 한나라 때부터 천 년 동안 중국의 영향권 내에 있었다.


신자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남자들은 따로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쓴 채 앉아서 예배를 본다. 맨 앞에 독특한 모자와 함께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옷을 입고 순서대로 앉아있는 이들이 지도자들인데, 교황과 추기경, 주교 등으로 불린다. 가톨릭을 차용한 흔적이다. 이는 또한 베트남이 19세기 중반부터 100년 가까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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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성가대의 연주 모습 그 흔한 전자 악기나 마이크 하나 없이 전통 방식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색다르다. 뒤로 여성들로만 이뤄진 성가대가 서 있다. ⓒ 서부원


그들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며, 하루에 네 차례 예배 시간이 정해져 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의무다. 이는 이슬람교를 닮았는데, 지금도 호치민 시티를 중심으로 한 메콩델타 주변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적지 않고, 규모는 크지 않지만 모스크도 많이 산재해 있다. 오래 전부터 이슬람 상인들이 교역을 하고 시나브로 이주해온 흔적이다.

비빔밥 같은 까오다이교... "이게 무슨 종교냐"

다양한 색깔의 아오자이도 각각 특정 종교를 대표한다. 노란색은 불교, 파란색은 도교, 빨간색은 유교를 상징한다고 한다. 물론 색깔 옷은 각 종교의 교리를 수행하고 있다는 증표로서 지도자들만 입을 수 있고, 신자들 대부분은 흰색을 입는다. 머리에 쓰는 모자도 여러 종류인데, 대개 가톨릭의 주교관과 무슬림 남자들이 쓰는 원통형 페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신자들 모두가 정좌한 채 응시하고 있는 정면에는 외짝 눈이 그려진 지구본이 걸려 있다. 십자가가 교회를 나타낸다면, 눈은 까오다이교의 상징이다. 신의 현존을 증거하는 눈으로, '천안(天眼)'이라 하여 정면뿐만 아니라 건물 내외 벽 곳곳에서 신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흡사 눈 부릅뜬 신이 곁에서 신자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낄 만큼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야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 시간이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뜯어볼 만한 게 참 많은 곳이다. 낮은 담으로 두른 총본산에는 예배당 외에도 여러 건물들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는데, 숲과 잔디밭이 어우러져 있어 공원 같은 분위기다. 종교시설인 만큼 별도의 입장료는 없지만, 부러 찾는 이들이 많아 입구는 기념품과 간식을 파는 노점상들 차지다.

이처럼 여러 종교가 뒤섞여 있는 까오다이교는 1920년대 후반 프랑스 식민 지배에 저항하며 생겨난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신흥종교다. 제국주의에 맞선 베트남 민중의 무력 투쟁과, 1954년 남과 북으로 분단된 뒤 친미 남베트남 정권에 대한 반정부 운동을 주도하며 메콩델타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해나갔다. 외세와의 갈등과 전쟁이 만들어낸 종교 결사체인 셈이다.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시나브로 뿌리내린 기존의 가치관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트남 민중들이 각자 기대어 살아온 여러 종교적 전통과 관습은 외세의 압제에 견준다면 그저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까오다이교는 어쩌면 신심 깊은 베트남 민중들의 의지처자, 베트남의 온전한 독립을 위해 기도하고 싸우는 그들의 아지트였을지도 모른다.

지난 20세기, 100년을 오롯이 전쟁으로 보낸 베트남의 참혹한 역사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사원 안팎에 새겨진 조각과 그림 하나도 예사롭게 볼 순 없다. 해금과 피리 소리에 실려 울려퍼지는 성가대의 합창조차 여느 종교의 찬송과는 달리 유독 구슬프게 들린다.

"'비빔밥'도 아니고, 이런 게 무슨 종교냐"며 연신 키득거리는 아이 앞에서 마음 한쪽이 영 편치 않았던 이유다. 내일 함께 호치민 시티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면 아이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 본 까오다이교가 곧 베트남의 현대사를 그대로 품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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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에서 바라본 까오다이교 총본산 출입문에 갖가지 화려한 문양이 철문에 투각돼 있는데, 예배당 내부의 조각을 평면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 서부원


#가족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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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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