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소년이 쓴 '황국신민 서사' 연습 공책

[전시] 인천관동갤러리, 전시 자료로 보는 일제 침략사

등록 2015.08.16 15:52수정 2015.08.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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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美英)은 우리의 적이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광고에 등장하는 소학교(초등학교) 2학년 광웅(光雄)이 그린 그림이다. 그런가 하면 충청남도의 한 시골 소학교 4학년 이주형 학생이 쓴 "천황폐하를 위해 쓴 황국신민의 서사"를 연습하던 공책도 눈길을 끈다. 또한 "일장기를 다룰 때는 정중하게 게양하되 가장(家長)이 국기를 다룰 것"이라는 일장기 보관 봉투도 예사롭지 않다.

일장기 그림 어린 소녀가 널뛰기 하는 그림에도 일장기가 선명하다
일장기 그림어린 소녀가 널뛰기 하는 그림에도 일장기가 선명하다인천관동갤러리

황국신민서사 초등학교 4학년생의 황국신민서사 연습 공책
황국신민서사초등학교 4학년생의 황국신민서사 연습 공책인천관동갤러리

일제 침략기에 조선 땅에서 "조선인을 황국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제국주의자들의 증거품"들을 낱낱이 선보이는 전시회가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이쿠코)에서 지난 14일부터 열렸다. 이번 전시물들은 인천근대박물관 최웅규 관장이 40여 년 동안 모은 자료 가운데 일제 침략의 현황을 잘 나타내는 공출(供出), 징병(徵兵), 징집(徵集)과 관련한 자료 150여 점을 전시로 처음 공개하는 자료들이다.

지난 13일 전시 개막을 앞두고 전시 막바지 준비를 돕기 위해 관동갤러리 전시장에서 전시 물품들을 샅샅이 점검하며 느낀 느낌은 한마디로 "일본의 집단 광기"였다. "집단 광기"는 생각보다 훨씬 소름끼쳤다. 일제 강점기 자료들은 거의 일본어로 된 것이 많아 번역을 도와주기 위해 포스터 하나, 엽서 한 장이라도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됐는데 번역을 위해 집어든 이들 자료 속에 "집단 광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다.

공출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요강까지도 공출해갔다
공출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요강까지도 공출해갔다 인천관동갤러리

식목 포스터 소나무 송진까지 거둬가다 보니 민둥산이 된 조선의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방방곡곡에 뿌렸다
식목 포스터소나무 송진까지 거둬가다 보니 민둥산이 된 조선의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방방곡곡에 뿌렸다인천관동갤러리

미쓰코시 백화점 광고 경성(서울) 미쓰코시 백화점 광고에는 "미국과 영국은 우리의 적이다'라는 초등학교 2학년의 그림이 이용되고 있다.
미쓰코시 백화점 광고경성(서울) 미쓰코시 백화점 광고에는 "미국과 영국은 우리의 적이다'라는 초등학교 2학년의 그림이 이용되고 있다.인천관동갤러리

"내일도 결전" 곳곳에 서린 일제의 집단 광기

어린이들이 배우는 국어(일본어) 책이나 여성용 계몽 잡지 표지에도 "한반도 요새화"나 "오늘도 결전, 내일도 결전" 같은 구호는 기본이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황국신문의 서사(誓詞)다. 이는 학교 성적통지표는 물론이고 일장기를 담아두는 봉투를 비롯해 납세용 소책자나 조합 통장 따위에도 새겨져 있는데 가장 눈에 잘 띄도록 책장 앞에 새겨 놓았다.

이번 전시의 초점은 공출과 징집, 징병 자료전이다. 공출의 경우 쌀을 비롯해 놋그릇, 수저, 솥단지는 물론 하다못해 목화솜이나 소나무 송진까지 공출 품목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충청도의 한 기록에는 공출용 소나무 가지 숫자까지 기록해 두고 있다. 좋은 송진을 얻기 위해서는 튼실한 소나무 가지를 꺾어야 하므로 조선의 산은 점점 민둥산이 되어갔다. 그래서 일제는 "산에 나무를 심는 것도 애국"이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곳곳에 뿌렸다.


이번 전시물 가운데 눈에 자꾸 밟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이가 그린 널뛰기 그림이다. 어린 두 소녀가 널뛰기를 하는 이 그림 한쪽에는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어린이가 그린 그림에 일장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강요된 학습 결과가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초가집 앞에 꽂혀있는 일장기 아래 앉아 있는 촌로의 모습도 당시 일제의 '일장기 강요'를 엿볼 수 있었다.

황국신민의 서사 손으로 반듯하게 쓴 황국신문의 서사는 기독교인의 '주기도문' 같은 것이었다
황국신민의 서사손으로 반듯하게 쓴 황국신문의 서사는 기독교인의 '주기도문' 같은 것이었다이윤옥

육군소년병모집 육군소년병모집 포스터
육군소년병모집육군소년병모집 포스터인천관동갤러리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우리는 마음을 모아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한다. 우리는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된다."


'황국신민의 서사(誓詞)'야 말로 조선인의 씨를 말려 일본인으로 개조하려는 일 제국주의의 궁극적인 목표였음을 이번 전시 준비를 하면서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러 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인천관동갤러리에서 준비한 공출, 징집, 징용 자료전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지내던 제국주의 일본의 '집단 광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자료로 보는 일제 침략사전>

주최 인천관동갤러리 주관 인천근대박물관

*전시기간 : 8월14일(금)~8월30일(일) 금토일 10:00~18:00 개관
*인천시 중구 신포로31번길38 (관동2가4-10)
*전화:032-766-8660, www.gwandong.co.kr
#천황폐하 #황국신민 #일제침략사전 #인천관동갤러리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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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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