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KBS와 MBC 방문진의 이사진 구성이 확정, 발표됐다. MBC와 KBS를 오가며 3연임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림사건 검사출신, 이승만을 찬양하는 친일파 후손 역사학자 등 정부·여당 추천 이사진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의 인물들로 결정됐다.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 2년여 동안 정권연장을 위해 공영방송을 주물러야 할 '전사'들로 구성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쏠쏠하게 자신들의 몫을 챙긴 시민단체가 있다. 바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다. 비판의 초점이 정부여당의 무리한 이사선임에 집중되다보니 세간의 시선이 야당 쪽 인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와중이었다.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은 당초, 정부·여당에 대해 '투명하고 공정한 이사선임 절차'의 모범을 보이겠다며 지난 6월 24일 공영언론이사추천위원회(이하 공추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야당, 즉 새정치와의 조율을 거쳐 야당 몫의 이사진이 결정됐는데 이 최종확정된 야당 추천 이사진의 면면을 보니 KBS 4명 중 2명, MBC 3명 중 1명이 민언련 출신들로 나타난 것이다. 당초 공추위가 노동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KBS 11명, MBC 5명의 이사후보를 냈던 것에 비교하면 언론단체 가운데는 오로지 민언련 출신으로만 선임된 것이다. 그것도 전체의 절반 가까운 비율을 석권하면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러한 결과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민언련 출신 후보들이 공영방송 이사로서의 자질과 적성을 다른 단체 출신들에 비해 훨씬 빼어나게 갖추고 있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언론단체 출신은 한 명도 선임되지 않은데 반해 민언련의 후보들은 전원 100% 뽑혔으니 말이다. 과연 그런가? 이걸 두고 '투명하고 공정한 이사선임 절차'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된 이유는 공추위 이사후보 선임과정의 졸속성을 지적할 수 있으며 그 바탕에는 민언련의 오만과 꼼수가 숨어있다. 요약하면 이른바 점수제를 동원한 서열화로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를 자신들이 뽑은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공추위는 후보 확정과정에서 공영방송 이사의 자질과 관련해 방송의 독립성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철학 등 8가지 기준에 대해 점수를 배정해 심사위원단이 채점했다고 밝혔다. 공영방송을 견제, 감시할 사람의 철학과 가치관을 점수화, 서열화해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보들에 대해 일면식도 없는 심사위원들이 무엇을 가지고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는 말인가? 제조업체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면서 불량품과 우량제품을 가려내는 것도 아닌데… 그것도 면접 한 번 하지 않고 서류심사만으로 말이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발상 아닌가?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추천이다. 후보들 가운데 특정 심사위원과 같은 단체의 회원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제척사유가 되어 그 심사위원은 직무집행으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 심사위원과 심사대상자가 연고관계나 이해관계로 얽혀 있을 경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이고 국회고, 하다못해 조그마한 결사체나 조직에서도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곳에서는 다 그렇게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추위 심사위원단에는 박석운 민언련 공동대표가 포함돼 있었으며 중도 사퇴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후안무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허탈하다. 한국 공영방송의 현주소는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 비유되고 있다. 특히 MBC의 경우는 더욱 참혹하다.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할 기자·PD 등 현업의 제작진은 정권으로부터의 방송독립과 제작 자율성은 생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루하루 지내기도 힘든 노예와 같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밖에서라도 이들을 격려, 비판하는 활동이 배가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민언련이 보인 행태는 무엇인가. 이제 민언련은 다른 언론시민단체와 연대 활동을 하자는 말은 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공동투쟁의 기초가 되어야 할 단체 간의 신뢰, 동지애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동지인 것처럼 지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잇속만은 확실하게 챙기는 양두구육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공추위 심사과정에서 발견된 민언련의 저열한 행태는 언론단체들의 단합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며 그 후유증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엄혹한 시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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