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국부? 필리핀인들이 비웃겠다

호세 리살의 <나를 만지지 마라 1·2>

등록 2015.08.18 12:48수정 2015.08.1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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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호세 리살의〈나를 만지지 마라 1〉

책표지 호세 리살의〈나를 만지지 마라 1〉 ⓒ 눌민

영화 〈암살〉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죠. 참 고무적인 일이라 싶어요. 임시정부 시절의 독립군 투사들 모습을 반영한 영화라 무척 좋았으니 말이죠.

그나마 영화 말미에 권선징악도 선명하게 보여줬으니 더욱 괜찮았죠. 만약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지금껏 '반민특위'가 제대로 반영됐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꽤 괜찮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참 웃기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죠. '반민특위'를 무력화시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 지경까지 오게 한 이승만을 '국부'(國父)라고 우기는 꼴이 그것이죠. 그런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건국절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요지경 세상이죠. 기가 찰 노릇이예요.

이런 모습을 보면 안중근 의사는 뭐라고 말할까요?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심정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김구 선생도 그리고 김원봉 장군도 저 세상에서 뜨거운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까요? 이런 기현상들은 숭고한 그분들을 두 번씩이나 죽이는 꼴이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우리나라처럼 필리핀의 독립지사로 널리 알려진 호세 리살 때문이예요. 그도 스페인의 식민시절 조국 필리핀의 독립을 이루고자 열혈청년으로 뛰어다녔던 인물이죠. 심지어 필리핀 민족동맹을 결성해서 반체제 운동의 기수로 활약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의 나이 36살에 끝내 처형당하고 말죠.

그가 1887년에 쓴 장편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1·2>는 스페인의 식민지배와 착취 구조, 필리핀 민중들의 억압과 고통의 현장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필리핀 민중들의 날카로운 이성을 잠재우며 스페인 주류 권력에 기생하는 가톨릭 교회 신부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죠.

이른바 필리핀의 마닐라 차이나타운인 '비논도'를 배경으로 계몽을 통한 개혁을 꿈꾸는 청년 이베라, 이베라와 대립각을 세우는 다마소 신부 그리고 필리핀 민중의 영웅으로 떠오른 엘리아스 등이 중심인물이예요. 그들의 뜻과 행동을 통해 그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지, 어떤 기폭제가 담겨 있는지 엿볼 수 있죠.


"이번 일을 있게 하신 하느님께 모두 함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요즘과 같이 반종교적인 시대에 하느님께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명백히 일깨워주시려고 허락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1권, 266쪽)

"무지와 광신에 의존해 힘을 얻는 사람들, 국민들을 속이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 모두들 잠들어 있다고 확신하며 어둠 속에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울 걸세! 대낮의 밝은 빛이 어둠 속에서 활동하던 괴물의 모습을 비추는 날이면, 그 반응은 엄청날 거야. 수 세기 동안 억눌렸던 에너지와 한 반울 한 방울씩 떨어져 쌓인 원한들, 그리고 모든 짓눌려 있던 감정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백일하게 드러나겠지."(2권, 270쪽)


책표지 호세 리살의〈나를 만지지 마라2〉

책표지 호세 리살의〈나를 만지지 마라2〉 ⓒ 눌민

그만큼 이 책은 그 암울한 식민지배의 착취와 억압을 고발함과 동시에 필리핀의 독립을 꿈꾸는 가히 혁명적인 책이라 할 수 있죠. 예전에 우리나라의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을 발표한 적이 있었죠. 이 책도 필리핀에서 불온서적 곧 금서로 낙인찍힌 적이 있었다고 해요. 그만큼 우리나라와 필리핀은 닮은꼴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확실히 다른 점이 있죠. 우리나라는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거기에 언론들까지 가세하고 야단법썩을 떠는데, 필리핀은 리살을 진정한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한다는 점이죠.

이런 우리나라의 모습을 리살이 비웃지 않을까요? 현재 마닐라 시내엔 그를 기념하는 '리잘공원'(Rizal Park)까지 조성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그래서 더욱 널리 알린다고 하죠. 우리와는 정말 다른 국민성이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왜 이 책 제목을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로 정했을까요? 그것은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20잘 17절에 나오는 구절을 차용한 것이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막달라 마리아가 만지려 할 때, 예수님이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은 몸이라,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도록 다시 말해 붙잡지 말게 한 것이죠. 달리 보면 붙잡을 수 없는 마리아로 하여금 더욱 진리 곧 진실을 붙잡으며 살도록 부추긴 것이죠.

리살도 분명코 그런 뜻에서 책 제목을 정하지 않았을까요? 진실과 정의는 힘과 권력에 의해 억압당하고 제압당하여 묻힌다고 생각할테지만, 끝까지 그것들을 붙잡고 사는 자들에게는 언젠가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말이죠. 아무쪼록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돌아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필리핀의 국민성을 비교해봤으면 좋겠어요.

나를 만지지 마라 - 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

장 뤽 낭시 지음, 이만형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호세 리살 #NOLI ME TANGERE #나를 만지지 마라 #이승만 국부 #반민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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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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