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도 인생... 안되는 날도 있는거래요"

[포토에세이] 안성오일장

등록 2015.08.18 18:45수정 2015.08.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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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성오일장 안성중앙시장 부근에서 매달 2, 7일자가 들어간 날에(2,7일 오일장) 열리는 오일장이다. 예로부터 안성장은 유기가 유명했고, 전주장, 대구장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장이기도 했었다.

안성오일장 안성중앙시장 부근에서 매달 2, 7일자가 들어간 날에(2,7일 오일장) 열리는 오일장이다. 예로부터 안성장은 유기가 유명했고, 전주장, 대구장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장이기도 했었다. ⓒ 김민수


조선시대 3대장으로 전주장, 대구장, 안성장이 있었다고 한다. 안성장은 유기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지역상권의 변화로 인해 안성오일장 역시도 쇠락의 길을 걷는 듯했다.


안성오일장은 안성중앙시장 주변에 형성이 된다. 오일장이 열린 탓인지 상시로 영업하는 시장통은 한산했으며, 여는 재래시장들처럼 한 눈에 보아도 장사가 잘 안되는 것 같이 보여서 마음이 무거웠다.

a 안성오일장 오질장에서 안아름 장을 봐가는 손님, 손에 든 물건 하나하나가 정성이 들어있는 것이고, 또 정성의 손길이 더해지면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쓰임새 있게 사용될 것이다.

안성오일장 오질장에서 안아름 장을 봐가는 손님, 손에 든 물건 하나하나가 정성이 들어있는 것이고, 또 정성의 손길이 더해지면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쓰임새 있게 사용될 것이다. ⓒ 김민수


한 아주머니가 오일장에서 물건을 한아름 사가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 아주머니가 양 손에 들고가는 박스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안다.

모종가게에서 배추와 양배추, 상추모종을 살 때 함께 모종을 샀기 때문이다. 대략 배추모종 200개, 그 정도면 김장배추로 충분하다고 했다. "혼자서 그렇게 많이 해요?"라는 상인의 질문에 아주머니는 "아녀, 우리 새끼들 나눠줘야주. 그러려면 200포기는 필요해요" 하신다.

그러니까, 저 모종을 애지중지 키워내는 일도 일이겠지만, 배추를 거두고 김장을 하는 일까지 생각하면 보통 정성이 아닌 것이다.

a 안성오일장 휴일 다음날은 오일장이 좀 한산하다고 한다. 14-16일 마지막 여름휴가를 겸한 휴일이 끝나고 열린 오일장(월요일)이라 더 한산해 보인다.

안성오일장 휴일 다음날은 오일장이 좀 한산하다고 한다. 14-16일 마지막 여름휴가를 겸한 휴일이 끝나고 열린 오일장(월요일)이라 더 한산해 보인다. ⓒ 김민수


오일장을 둘러볼 때 장이 한산하면 내 마음은 무거워진다. 그래도 조선시대 3대장이라고 해서 기대를 하고 왔는데, 여느 쇠락해가는 오일장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활기가 없는 듯했다.


a 안성오일장 갓 수확한 채소들이 싱싱하다. 채소들도 어떻게 진열을 해놓는가에 따라 먹음직 스럽게 보이는 법이니 좌판에 물건을 진열하는 것도 중요한 장사수단이다.

안성오일장 갓 수확한 채소들이 싱싱하다. 채소들도 어떻게 진열을 해놓는가에 따라 먹음직 스럽게 보이는 법이니 좌판에 물건을 진열하는 것도 중요한 장사수단이다. ⓒ 김민수


"오늘은 손님이 많이 없나봐요?"
"휴일 다음날 열리는 장은 손님이 많이 없어요. 더군다나 이번엔 14일 임시공휴일에, 15일 광복절, 16일까지 여름 마지막 연휴였잖아요."
"그러면 주말이 낀 오일장은 북적한가요?"
"그럼요. 오늘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장사가 안 되면 힘드시겠어요?"
"장사도 인생같아서 잘되는 날도 있고 안되는 날도 있는 거래요."

그랬다. 장사도 인생같은 것이구나. 인생도 장사와 같은 것이구나. 다들 개똥철학이라도 갖고 살아간다지만, 장터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은 그저 개똥철학이 아니라 깊은 삶의 통찰인 듯했다.


a 안성오일장 요즘도 시골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을 키와 체, 키와 체조차도 어린시절엔 좋은 놀이기구였고, 간격이 넓은 체는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안성오일장 요즘도 시골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을 키와 체, 키와 체조차도 어린시절엔 좋은 놀이기구였고, 간격이 넓은 체는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기에 안성맞춤이었다. ⓒ 김민수


키를 보면서 몇 해 전 들깨와 참깨를 고를 때 키질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의 키질, 그것이 마지막 모습일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은 어머니의 흔적들을 사진으로 담아두었을 것을 후회가 된다. 그래도 몇몇 키질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기도 하니 위안은 된다.

구멍이 넓은 체는 이맘때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그만이었다. 부모님께는 체에 구멍이 나고 녹이 슨다고 야단도 맞았지만, 그래도 삼태기와 체로 잡은 미꾸라지를 한 동이 내놓으면 아버지는 추어탕거리가 생겨 좋다하셨고, 어머니는 잡아온 미꾸라지에 굵은 소금을 뿌리셨다.

그런 소소한 잔인함(?), 내가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의 산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생각했던 것 같다.

a 안성오일장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모종농사도 다시 활기를 띤다. 배추, 상추, 양배추 등 다양한 모종들이 제법 많이 팔려나간다.

안성오일장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모종농사도 다시 활기를 띤다. 배추, 상추, 양배추 등 다양한 모종들이 제법 많이 팔려나간다. ⓒ 김민수


a 안성오일장 레몬종류로 물에 다려서 차를 먹듯이 마시면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안성오일장 레몬종류로 물에 다려서 차를 먹듯이 마시면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 김민수


배추, 양배추, 상추 모종을 샀다. 말린 레몬은 물에 달여 먹으면 좋다고 해서 샀고, 올갱이는 오랜만에 올갱이된장국을 끓여 먹기 위해 샀다.

그렇게 장을 봐서 집에 돌아온 뒤 모종을 심는 일과 올갱이를 삶아서 까는 일을 하다보니 하루가 훌쩍 저문다.

a 안성오일장 오일장마다 태극기를 파는 분들이 제법 많다. 현 정부 들어 태극기사랑운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는 여파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안성오일장 오일장마다 태극기를 파는 분들이 제법 많다. 현 정부 들어 태극기사랑운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는 여파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 김민수


언제나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광복절을 앞둔 청평오일장에서도 태극기 파는 분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안성오일장에도 태극기 파는 분이 있었다.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를 파는가 싶었는데, 요즘들어 태극기사랑운동이라는 것이 펼쳐지면서 마치 '태극기사랑=애국심'인 듯 행세를 하는 것 같다. 시골 마을 회관에는 마을깃발과 새마을깃발, 태극기가 삼위일체로 휘날리기도 하니,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운동은 전시성운동 같아서 부담스럽다.

태극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시절과 오늘날의 태극기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느닺없이 강조되는 태극기사랑 운동은 마치 애국가를 4절까지 줄줄이 불러야만 애국자라는 논리와 다르지 않은 듯하여 이 역시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a 안성오일장 조선시대 오일장에서 관청의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하는 이들을 '시전상인'이라 했고, 허가를 받지 않고 하는 이들은 '난전상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잡상인 취급도 당하지만, 오일장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들은 바로 이 난전상인들이 아닌가 싶다.

안성오일장 조선시대 오일장에서 관청의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하는 이들을 '시전상인'이라 했고, 허가를 받지 않고 하는 이들은 '난전상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잡상인 취급도 당하지만, 오일장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들은 바로 이 난전상인들이 아닌가 싶다. ⓒ 김민수


조선시대 장에는 시전상인과 난전상인이 있었다. 시전상인은 관청의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하기에 세금을 냈지만, 난전상인은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새금을 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전상인들 눈에는 난전상인들이 눈엣가시처럼 보였겠지만, 그들 스스로 난전상인을 단속하지 않았다.

시전상인의 세금을 받는 관에서 적절하게 난전상인들을 단속함으로써 그런 불만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옛날 오일장에서 '난전상인'들은 오일장의 꽃이기도 했다. 그들이 있어 장이 비로소 장 같았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잡상인'이 될 것이고, 지금은 단속으로 서울에서는 거반 사라진 '노점상'이 되겠다. 그들을 깡그리 없애버린 거리와 시장은 깨끗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 사는 맛은 많이 쇠락하지 않았나 싶다.

a 안성오일장 뜨거운 햇살을 양산으로 막아가며 유모차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쓸쓸해 보인다.

안성오일장 뜨거운 햇살을 양산으로 막아가며 유모차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쓸쓸해 보인다. ⓒ 김민수


오일장의 뒤편. 아직은 뜨거운 햇살이 기승을 부린다. 오일장의 뒤편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너무 없다. 휴일과 연휴의 끝에 열린 안성오일장은 쓸쓸한 정취의 오일장이었다.

그래도 주말에 열릴 장은 북적일 것이라니 다행이다. 장사가 잘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고, 인생도 웃는 날도 있고, 우는 날도 있고... 그게 사람사는 세상이야기지 무엇이겠는가?
덧붙이는 글 안성오일장은 2,7 오일장으로 2와 7자가 들어간 날 열리는 오일장입니다.
8월 17일 다녀왔습니다.
#오일장 #안성오일장 #시전상인 #난전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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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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