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가 한창 꽃씨를 동그랗게 모아서 꽃대를 올릴 무렵, 큰아이는 동생이 후후 날릴 몫까지 꺾어서 나누어 줍니다. 두 아이는 함께 놀고 함께 자랍니다.
최종규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방에서 살지 않은 사람은 지하방에서 지내는 삶을 알 수 없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는 아침도 낮도 저녁도 가리지 못합니다. 시계가 없으면 때를 살피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해가 흐르는 기운을 느낄 수 없으니 '배가 고픈지 밥때가 맞는지'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힘내라! 내 동생>이라는 책을 보면, '소리 없는 삶'을 보내는 동생을 둔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한테서 '소리 없는 잠깐 체험'을 배웁니다. 아주 살짝, 고작 10분 동안 귀마개로 귀를 막도록 시켰을 뿐이지만, 아이들은 모두 시끌벅적 북새통이 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초등학생인데에도 '고작 10분 체험'을 하느라 '교과서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면서 투덜대는 아이가 있다고 해요. 초등학생이지만 대학입시를 벌써 생각하면서 '10분 동안 다른 삶 겪어 보기'조차 할 겨를이 없다고 여기는 셈입니다.
나는 발돋움을 하여 마을회관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았어요. 할머니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무언가를 해요. 팔을 크게 휘두르며 체조 같은 것을 하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체조가 아니었어요. 팔을 뻗거나 발을 굽히는 몸짓이 없었거든요. (66쪽)"할머니, 뭘 배워요?" "수화란다." "수화가 뭐예요?" "수화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손을 써서 말하는 것이지." "마짱도 수화를 배워요?" (68∼69쪽)손수 밥을 지어서 차리는 사람은 밥짓기가 어떠한 삶인가를 압니다. 그러나, 밥짓기가 너무 지겹거나 괴로운 사람은 밥짓기가 어떠한 삶인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차려 주거나 어버이한테 밥을 차려서 올리는 삶이 나한테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삶인가 하는 대목을, 참말로 날마다 느낄 수 있지만 참으로 어느 때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동생한테 힘내라고 외칠 줄 아는 아이는 동생이 어떠한 삶을 보내면서 얼마나 씩씩한가를 압니다. 아이한테 힘내라고 따순 말을 건넬 줄 아는 할머니는 아이가 어떠한 삶을 누리면서 얼마나 야무진가를 압니다.
씩씩한 이웃하고 동무한테 힘내라고 눈짓을 합니다. 야무진 아이들한테 힘내라고 손짓을 합니다. 아픈 아이가 아픔을 털고 새로운 기쁨을 찾아나설 수 있기를 빌면서 손을 맞잡습니다. 슬픈 이웃이 슬픔을 씻고 새로운 노래를 찾아서 부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난 할머니를 가리키며 오른손을 쥐고 '똑똑' 하고 이마를 두드렸어요. 그런 다음, 마짱을 가리키며 왼손 엄지손가락을 뺀 네 손가락을 가슴에 대고 위로 두 번 움직였어요. '할머니는 병에 걸려 이제 마짱을 알아보지 못한단다.' (81쪽)

▲ 큰아이는 동생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으레 동생 발걸음에 맞추어 옆이나 뒤에서 달려 줍니다. 동생더러 "힘내!" 하고 옆에서 북돋아 주는 큰아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지켜봅니다.
최종규
어린이문학 <힘내라! 내 동생>은 문학이면서 삶입니다. 이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와 같은 한식구가 있으며, 씩씩하게 서로 돕는 한집안 삶을 어린이문학이라는 틀로 새롭게 담았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에도 '농아학교'가 따로 있습니다. '장애 어린이'를 '일반 교실'에서 함께 배우도록 하는 얼거리는 아직 한국 사회에 없습니다. 학교교육이라고 하면 '비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청소년'만 따로 모아서 '대학입시 교육바라기'로 나아가도록 하는 '교과서 수업 진도 채우기'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돕는 마음을 가꾸면서 서로 사랑하는 숨결을 북돋우도록 하려는 학교교육이라면, '일반 교실'과 '장애 어린이 교실'을 따로 나눌 까닭이 없습니다. 참다운 사랑으로 흐르는 학교라면 '일반 학교'과 '장애 어린이 학교'를 따로 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내 동생이 '장애 어린이'라고 해서 한집안에서 동생만 딴 집을 지어서 따로 혼자서만 살도록 하지 않습니다. 한식구이니 한집에서 함께 살며, 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일과 놀이를 함께 해요. '한 나라'라고 하는 틀을 헤아린다면, 또 '한 학교'라고 하는 배움터를 살핀다면, 우리는 이웃과 동무를 어떻게 마주하면서 손을 맞잡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마짱은 눈물이 가득 고인 채 할머니 앞에서 수화를 해요. 두손을 펼쳐 책을 읽는 몸짓을 한 다음, 손으로 지붕을 만들고 집게손가락을 비스듬하게 앞으로 내밀었어요.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수화로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어요. (88쪽)어린이문학 <힘내라! 내 동생>에 나오는 할머니는 손자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혼자 수화를 배우다가 그만 몸이 무너져서 드러눕습니다. 몸져누운 할머니는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서 지내야만 합니다. 소리 없는 곳에서 사는 아이는 할머니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할머니한테 죽을 떠먹이고, 자꾸자꾸 수화로 말을 겁니다. 한동안 집에서 머물다가 농아학교 기숙사로 떠나야 하는 아이는 마지막으로 할머니한테 수화로 말을 겁니다. 이때 할머니는 '처음으로' 손등을 겨우 움직이면서 이녁 손자한테 '힘내렴'이라는 수화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너와 나는 이웃입니다. 나와 너는 동무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운 사람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서로 따사로이 보살피는 사랑이 싱그러운 바람이 되어 불 수 있기를 빕니다. 다 같이 힘을 내면서 즐겁게 웃는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힘내라! 내 동생
키시카와 에츠코 지음, 노래하는 나무 옮김, 카리노 후키코 그림,
꿈터, 200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