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절 못다뤄? KBS의 이상한 팀장 교체

탐사보도팀 8일 성명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홍보팀 "사안과 무관, 정기 인사"

등록 2015.09.08 20:42수정 2015.09.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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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탐사보도팀이 8일 오후 성명을 내고 "정보공개청구 소송까지 하면서 지난 2013년부터 기획 취재해온 탐사보도 단독 프로그램이, 이승만 박정희 시절을 다룬 '민감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방송 목록에서 사라졌다"고 KBS 사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훈장을 통해 본 대한민국 70년 역사>란 기획 아이템을 위해 제작진이 발로 뛰며 70여만 건 훈·포장 명단을 4월 단독 입수했다. 그러나 5월에는 메르스 사태로, 8월에는 광복 70주년 특집 방송 때문에 미뤄지더니 이후에는 돌연 방송 목록에서 사라졌다"면서 "무엇이 그리 두렵냐, 이승만·박정희 얘기는 금기인 거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 성명에 따른 앞뒤 상황은 이렇다. KBS 탐사보도팀은 지난 2013년부터 <훈장> 아이템을 통해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훈장을 누가 받았으며 ▲ 왜 받았는지, ▲ 그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취재했다. 정부는 그간 서훈 명단이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비공개해 왔고, 탐사보도팀은 대법원까지 가는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해서야 70여만 건 훈포장 명단을 올해 4월 입수할 수 있었다.  

"이승만·박정희 정부 시기 친일 행적자에 훈장 가장 많이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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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 ⓒ 이희훈


취재 결과는 두 가지로 요약됐다. 지난 몇 년간 법원이 '조작됐다'며 무죄를 선고한 간첩 사건과 관련해, 당시 수사를 맡았던 수사관들이 훈장을 받았던 것. 또 훈포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친일 행적자와 함께 일제 식민 통치를 주도한 일본인도 있었는데, 이들에게 훈장이 가장 많이 수여된 시기가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 때였다. 이런 내용이 담긴 <간첩과 훈장>, <친일과 훈장> 방송은 지난 7월 취재가 마무리돼 있었다.

이들 성명에 따르면, 초기 "사실상 확정됐던" 방송 일자는 점점 밀리기 시작하더니 7월 말부터는 갑자기 방송 예정 목록에서 사라졌다. 이들 <훈장> 제작팀은 "탐사제작부장·시사제작국장이 기획 의도와 취재 내용이 담긴 기획안, 상세 방송 내용, 데스킹을 거친 원고 등 무리한 요구를 해도 다 들어줬다, 수차례 하소연와 설득과 논쟁도 했다"면서 "그러나 '잠정적으로라도 방송 일자를 잡자'는 내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작팀에 따르면 이후 <훈장> 보도와 관련한 사내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다. "민감한 내용이라서 그렇다", "공식적인 발제는 하지 마라", "<훈장>이 2부작을 할 만한지 재검토해 봐라"와 같은 말이 간부급에게서 나왔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제작팀은 성명에서 "(간부들은) 두 달 넘게 여전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탐사보도 팀장도 교체됐다. <훈장> 제작팀은 이와 관련 "취재 기자들도 곧 인사가 날 수 있다"며 "이번 취재 과정에서 보인 국장과 부장의 태도는 안절부절과 도망 다니기였다, 더는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변명은 하지 말라"고 못 박았다.

사측 "사실 아니야, 메르스 탓에 연기" vs. 취재 기자 "비정상적 절차"

이와 관련 KBS 홍보팀 관계자는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 메르스 때문에 연기된 탓'이라며 '원고 자체가 지난 주 수요일에 와서 데스크를 보는 중'이라고 한다"고 해명했다. 해당 탐사보도팀 팀장 인사 이동에 대해서는 "이번 사안과는 무관한, 팀장급 정기 인사"라고 덧붙였다. 

한 KBS 취재 기자는 사측 해명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KBS 방송 제작 내부 프로세스가 그렇지 않다, 사측도 비정상적인 절차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라며 "제가 근무해 온 20여 년 간 '데스킹 거친 원고를 가져와야 방송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적은 없었다, 이건 평소 진행해온 방송 제작 절차와는 거꾸로"라고 비판했다. 
#KBS 탐사보도 #KBS 훈장 #KBS 노조 #KBS 탐사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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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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