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도 에이즈 감염 어린이들이 있었다니

[네팔 지진 현장을 찾아서27] 키리티푸르의 꿈과 슬픔, 잊을 수가 없다

등록 2015.09.10 16:39수정 2015.09.1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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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지금 나의 네팔 생활은 1인 3역, 4역, 5역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작가들과의 인연으로 가끔씩은 행사에 초대를 받기도 하고 집으로 초대를 받기도 한다. 한국에 있는 네팔여성이주노동자 쉼터는 그대로 잘 운영되고 있으니 또한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네팔에 오시는 분들에 안내와 협조요청을 외면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 또한 나의 일이다.

오는 9월 21일에는 한 사업가가 온다. 그 분은 한 학교에 도서관을 지어주시기로 했다. 그 사전 작업은 내가 하는 일이다. 물론 그 학교를 찾고 부지를 정하고 도서관을 짓는 자재와 건물 규모 책과 완구 일체 등을 채울 준비도 모두 나의 일이다. 그러나 매우 즐거운 일이고 보람을 찾을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은 만들려던 빵을 못 만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해당학교 교장을 불러 면담을 하고 도서관 지을 문제를 협의하느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는 9월 19일부터 2주 동안 빵 만드는 일을 쉬기로 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네팔지진 피해자들이 하루속히 자립할 길을 만들자는 것이지 빵만 만들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a 키리티푸르를 찾아가는 길 농촌 들녘이 맑다. 산 바람도 불어오고 공기도 좋은 곳인데 붉은 벽돌집은 지진으로 금이가서 사용금지처분이 내려졌다고 한다. 당초 아이들이 머물던 시설이다. 아내와 길을 물어 찾아가던 중이다.

키리티푸르를 찾아가는 길 농촌 들녘이 맑다. 산 바람도 불어오고 공기도 좋은 곳인데 붉은 벽돌집은 지진으로 금이가서 사용금지처분이 내려졌다고 한다. 당초 아이들이 머물던 시설이다. 아내와 길을 물어 찾아가던 중이다. ⓒ 김형효


우리 네팔한국문화센터 멤버들도 함께 도서관 공사장에서 직접 노동을 할 계획이다. 전날 만들지 못한 빵을 아침 일찍 만들기 시작해서 모든 빵을 준비하고 찾아가려고 약속했던 벅터푸르의 한 학교에 가려고 아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 무슨 낭패인가? 다시 학교가 연장 휴무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난번 비로 학교 시설이 엉망이 되어 당초 당일부터 수업을 진행하려던 계획이 며칠 더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장소를 물색하였다. 지난번 미룬 장애아동보호시설인 키리티푸르(Kiritipur)에 가기로 한 것이다. 해당 시설에는 30명 정도의 어린이가 있다고 들어서 60개 정도의 빵을 준비했다.

그런 그곳에서 뜻밖에 슬픔을 만났다. 그냥 장애아 수용시설이라고 갔다. 모두 멀쩡하고 똑똑한 아이들 그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다가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해당시설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를 상세히 듣게 되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나 있는 줄 알았던,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네팔의 두 젊은이가 집 팔고, 가게 내놓고 눈물겹게 그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더욱 눈물 나는 일이다. 빵을 나눠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가 내렸다.


천막 안에서 공부하던 그들이 비가 들이치지 않은 곳으로 대피했다. 우리 부부는 나중에 꼭 다시 찾기로 다짐했고 천막대신에 양철이라도 사서 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착한 어린 영혼들을 어찌 살펴야 잘 사는 일일까? 어찌 해야 잘하는 일일까? 고민하며 돌아왔다.

a 키리티푸르에서 만난 해맑은 아이들 키리티푸르에서 만난 해맑은 아이들 그들에게 빵을 전하고나서 난 한없는 슬픔에 잠겨야했다.

키리티푸르에서 만난 해맑은 아이들 키리티푸르에서 만난 해맑은 아이들 그들에게 빵을 전하고나서 난 한없는 슬픔에 잠겨야했다. ⓒ 김형효


다음날은 며칠 동안 미루어온 카트만두 시내 아직 카스트가 남아있는 네팔에 도비(Dobi)라는 신분으로 빨래를 하는 신분에 집안 아이들이 다니는 한 학교에 빵 300여 개를 가지고 찾아갈 계획이다. 전날 가려다가 다음 날이 좋겠다는 학교 측에 안내로 전날 키리티푸르 아동시설을 찾았던 것이다.


시설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나와 교실로 쓰던 곳에서 기거를 함께 하는 열악한 곳이었다. 네팔에서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 그런 수용시설을 접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그들은 참으로 꿈 많은 아이들이었다. 부모님의 부주의로 아이들이 앓게 된 에이즈가 저들을 병들게 했다. 어떡하나? 저들이 꿈꾸는 변호사, 의사, 가수, 화가, 간호사…. 저 아이들이 좀 더 맑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매우 단순한 사유를 하며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a 신생공화국 네팔에 신분제도는 언제 사라지나? 학교 앞에 거대한 빨래터는 도비라는 계급에 신분을 가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사실을 노골화하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빵을 나누고 있다.

신생공화국 네팔에 신분제도는 언제 사라지나? 학교 앞에 거대한 빨래터는 도비라는 계급에 신분을 가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사실을 노골화하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빵을 나누고 있다. ⓒ 김형효


a 도비조르에서 만난 아이들 빨래터에 학교, 그들에게 신분차별없는 평화가 찾아들기를 기원해본다.

도비조르에서 만난 아이들 빨래터에 학교, 그들에게 신분차별없는 평화가 찾아들기를 기원해본다. ⓒ 김형효


다음날 카트만두 시내 도비조르라는 곳에 도비라는 계급에 사람들 아니 그들의 아들, 딸들이 다니는 학교에 갔다. 빨래를 하거나 남의 집에 식모 혹은 가정부 일을 하는 계급에 사람들이라고 한다. 빵 300여개를 가지고 가 일부는 우리 부부가 직접 나눠주고 일부는 학교 측에 전했다. 시험을 보는 날이라 학년에 따라 수업 시간이 달랐다.

학교 앞에는 온통 빨랫줄과 빨래로 가득했다. 바로 학교 옆에도 빨래터가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또 다음 날 배달할 곳에 빵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쉬자고 그리고 쉬고 싶었는데 아내가 나보다 더 극성이 되어 간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갈 곳에 빵을 만들고 저녁이 되어서야 아내의 케잌을 급하게 만들었다.

내가 오늘은 꼭 쉬자고 다짐한 것은 바로 아내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녁에 아내 몰래 네팔 가수 쁘라딥 범전(Pradeep Bomjan) 형님과 모한까르기(Mo Heon), 랄라 구(Lala Gurung), 람 바하두르 타다(Ram Bahadur Thada)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아내의 생일을 축하했다. 처제 언주 구릉(Anju Gurung)도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모처럼 파티 기분이었으나 몸이 피곤한 것이 문제라 곧 잠을 청해야했다.

a 아내를 위해 처음 만든 생일 케잌 바쁜 와중에 짧고 간단한 축하파티를 열었다. 아내를 위해 생일 케잌을 처음 만들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아내를 위해 처음 만든 생일 케잌 바쁜 와중에 짧고 간단한 축하파티를 열었다. 아내를 위해 생일 케잌을 처음 만들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 김형효


하지만 나는 키리티푸르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고 또 한 편의 시로 날 위로해야했다.

키리티푸르의 눈물방울 - 김형효

뜨겁습니다.
뜨겁고 뜨거워서 다가갈 수 없는 눈물방울들이
오늘도 섭씨 35도를 넘나들며 햇빛이 쨍쨍한 거리에
갈 길 모르고 흐르고 흐르기만 합니다.
뜨겁게 부둥켜안을 그리움들로 가득한 거리에는
작은 푸르름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거칠게 흙먼지만 날립니다.

마스크도 준비 못한 나와 아내는 스쿠터 바퀴가 가자는 대로
생애 최초의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아마도 한 시간에 한 방울 씩은
아무런 정처도 모른 채 내게로 와 날 부둥켜안습니다.
번지수를 묻지도 않고 관등성명도 묻지 않고
그저 넉넉한 웃음과 조금은 모자라고 겸연쩍은 웃음으로
그렇게 뜨겁고 뜨거운 눈물방울이 내게로 흘러듭니다.

나도 따라 속으로 흐르는 눈물방울을 찬찬히 바라봅니다.
그 속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들을 고맙게 읽습니다.
읽을 책이 없던 시절에 하냥 슬픈 시절인데도
슬픔도 모르고 길을 걷던 그날이
지금 저들인 것처럼 내 눈 앞에서
뜨거운 눈물방울이 되어 내게로 다가옵니다.
부둥켜안을 품이 작은 내게로 와
뭘 어쩌라고 대체 뭘 어쩌라고 그러는 것이냐?

저 속없이 해맑은 카트만두에 하늘을 보며 푸념도 하지만
나는 오늘 속으로 흐르는 그 뜨거운 눈물방울을 마시며 사람의 나라로 갑니다.
오늘 또 한 걸음 사람의 나라에 가서
그들과 만날 것입니다.
생애 최초의 만남 속에 흐르는 뜨거움
뜨거워 손조차 잡을 수 없을 그 자리에서
나는 한 시간에 한 방울에 따뜻한 사랑을 읽어낼 것입니다.
모두가 다 나를 바라봐 주시는 따뜻한 정성이 이루어내는 일들 입니다.

고맙습니다.
카트만두에서 김형효 드림
#에이즈 감염 어린이들 #키리티푸르의 어린이들 #눈물 #계급, 도비조르 #아내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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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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