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머리에 군부대 시설이라뇨, 안 돼요"

여수 향일암 군 생활관 설치 반대 운동 확산

등록 2015.09.12 22:09수정 2015.09.1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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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향일암 앞에 있는 거북머리 형상 바위.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으로 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곳이다. 이곳에 군생활관을 신축하는 문제로 여수가 시끄럽다

향일암 앞에 있는 거북머리 형상 바위.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으로 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곳이다. 이곳에 군생활관을 신축하는 문제로 여수가 시끄럽다 ⓒ 오문수


"거북머리에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 우리 어렸을 적에 어르신들이 '장생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산세를 보니 명산이라고 여겨 '깨재'라고 이름을 바꿨다고 해요. 거북이가 깨를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더 이상 큰 인물이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거북머리에 쇠못을 박고 석성을 쌓았어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거북목을 누르면 정기를 받지 못해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해방 후 동네사람들이 쇠말뚝을 뽑아내고 석성을 허물었습니다. 초소가 생기기 전에는 마을주민들이 모여 수백 년간 제사를 지내며 신성시하던 장소입니다."

임포마을 이장 김상도씨의 말이다. 김상도 이장을 만난 것은 지난 10일 파티랜드에서다.  향일암을 뒤로 하고 앞에는 거북머리를 바라보고 사는 임포마을 주민들은 8개월간의 지겨운 싸움에 답답해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10일 밤 여수시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향일암 거북머리 지키기 후원의 밤' 행사를 열었다.

거북머리에 군 생활관 공사, 주민 반발로 중단

군은 지난해 말부터 계획을 세워 올해 초 향일암 아래에 있는 거북머리 모형 정상 4060㎡ 부지에 2층짜리 연면적 1295㎡ 규모의 생활관을 짓고 있었다. 주민공청회 없이 공사를 강행하던 군은 주민 반발이 커지자 1차 중단한 뒤 다시 공사를 재개키로 했으나, 김성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남 여수시갑) 등의 중재로 잠시 중단했다.

a  향일암으로 올라가는 바위에는 거북등같은 모양을 가진 바위들이 널려 있어 신비감을 불러 일으킨다

향일암으로 올라가는 바위에는 거북등같은 모양을 가진 바위들이 널려 있어 신비감을 불러 일으킨다 ⓒ 오문수


향일암 거북머리 인근해상은 1998년 12월 17일 오후 11시께에 북한 반잠수정이 침투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초소 군인들이 발견해 반잠수정을 격침시켰다. 현재 거북머리를 지키며 사용 중인 장병 생활관은 열악해 신축 중이었다.

여수시 주장... 병영생활관 신축 위한 협의절차 성실 이행해야


여수시 돌산 임포마을 군 부대 병영 생활관 신축과 관련해 지난 2월부터 국민권익위원회 중재로 지역주민과 국방부 및 시 관계자가 수차례 협의를 갖고 지난 6월 29일 주민의견을 반영하여 현 위치에 주민 의견을 청취해 신축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후 일부주민의 반대로 지역정치권 및 시민사회단체가 개입함으로써 지역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임포마을 주민들과 지역 일부 정치인들은 임포초소의 생활관을 현 위치에서 700미터 떨어진 국립공원 주차장 위쪽 사유지로 이전하자며 추가로 소요되는 시설비 30억 원을 여수시가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방·군사시설사업에 관한 법률 제12조 '기부 대 양여' 특례 규정은 공익사업을 시행하는 사업시행자(여수시)가 국방부로부터 양여 받을 군부대 부지 내에 있는 기존 군사시설을 이전해주기 위해 새로 군사시설을 설치했을 경우 적용하는 예외 규정이다.

그런데 여수시가 국방부로부터 양여 받을 임포초소 부지 1000㎡내에는 이전할 군사시설, 즉 병영생활관이 없어 '기부 대 양여 특례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위 대체부지 조성사업에 시비를 투입하는 것은 국가사업에 지방자치단체의 비용투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지방자치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여수시의회·시민사회단체 등, 대체부지 찬성으로 여수시 입지 좁아져

일찌감치 임포주민과 뜻을 같이했던 국립공원 향일암 지키기 여수시민위원회(아래 시민위원회)는 "생활관 신축에 반대하지 않음"을 공식 천명했다. 이들은 "다만 그 위치가 여수의 자연 생태 관광지의 1번지로 여겨질 만큼 여수인의 자존심이 담긴 곳이기에 거북머리에 짓지 말아달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일엔 여수시의회도 나섰다. 여수시의회는 제163회 임시회 개회에 앞서 박성미 시의원이 발의한 '임포마을 군부대 생활관 건축 관련 성명서'를 채택했다. 시의회는 성명을 통해 시민의 대의기관으로 '원칙적으로 현 위치가 아닌 다른 부지에 생활관을 신축하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a  향일암 입구에는 "거북머리 훼손한 국방부는 하루빨리 원상복구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향일암 입구에는 "거북머리 훼손한 국방부는 하루빨리 원상복구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오문수


시의회는 입장을 통해 "전국 최고의 일출명소이자 4대 관음기도처로 각광받는 향일암지구에 군 부대 생활관을 신축하는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지역민뿐만 아니라 관광객 등도 많은 관심을 갖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 11일에는 돌산연합청년회가 국립공원 향일암 지키기 시민위원회에 합류하여 공동 대응하기로 하고 행동을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돌산연합청년회의 성명 내용이다.

"국방부는 여수의 대표관광지 임포마을 향일암 거북머리에 병영 생활관 신축으로 인해 관광지로서의 풍광을 해치고 지역민들에 원성을 자아내는 일을 중지하고, 민·관·군이 힘을 모아 다른 곳에 병영생활관을 신축해 군인들도 쾌적한 곳에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역민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

공군 방공포대 이전 논의 광주시, 하지만 여수시는...

국립공원 향일암 군부대 이전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립공원 무등산 공군 방공포대 이전 논의가 주목받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여수시와 달리 정치권과 광주시 그리고 국방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협의체를 만들어 사업을 진행키로 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건의됐던 국립공원 무등산 공군 방공포대 이전 사업은 광주시가 국방부에 이전을 요청하는 방식이었다. 예산이 없어 지지부진하던 이전사업은 2014년 권은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국방위원회에서 국립공원 무등산 공군 방공포대 이전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면서부터 속도를 붙였다.

a  지난 10일 임포마을 주민들이 여수파티랜드에서 '향일암 지키기 후원의 밤'행사를 열어 여수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지난 10일 임포마을 주민들이 여수파티랜드에서 '향일암 지키기 후원의 밤'행사를 열어 여수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 오문수


최근 이 문제는 권은희 의원이 주관이 돼서 국방부와 광주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면서 해법을 찾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지난 11일 저녁께 향일암을 방문해 재무스님을 만나 입장을 들어봤다.

"여수 향일암은 도량인데 도량 앞 군 부대 생활관은 흉물이잖아요. 향일암은 여수관광 1순위입니다. 아름다운 이곳을 후손들한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짓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 지어주세요."

해법은 없을까 고민하며 절을 내려오다 인천에서 관광 차 왔다는 한 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답변을 들어봤다.

"저는 헬기와 관련된 군부대에서 6년간 복무한 후 제대한 사람입니다. 지금 군장비가 현대화돼 얼마든지 감시가 가능합니다. 지금 상태로도 가능하다면 굳이 아름다운 경관을 훼손하면서까지 군 부대를 신축할 필요가 있을까요?"

상가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동안 주위가 어두워지고 군부대에서도 전등이 켜져 생활관이 보인다. 마침 갓김치 팔던 가게 문을 닫고 있는 K씨를 만나 입장을 들었다.

"8개월 동안 지겹습니다. 얼마 전까지 집집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도로에도 16개의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향일암으로 올라가는 이 길이요? 동네사람들이 개인 땅을 내고 스님들까지 돈을 내 우리 스스로 만든 길입니다. 우리는 공원조성해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a  임포마을 김상도 이장. "거북머리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임포마을 김상도 이장. "거북머리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 ⓒ 오문수


향일암은 일전에 영험스런 거북형상을 가진 절이라 하여 영구암(靈龜蓭)이라고도 불렀던 곳입니다. 저곳은 거북이가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을 해 풍수하는 사람들마다 저 곳을 건들면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생활관 신축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다 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빨갱이입니까? 보훈단체가 나서서 찬성하며 우리를 비난합니다. 군에서도 대토만 있으면 가겠다는 데 시장이 지으라고 하니 말이나 됩니까?"

향일암은 연간 200만 명이 찾는 여수관광 1번지다. "2009년 향일암이 불타고 난 후 관광객이 오지 않아 1년간 장사를 못했다"는 그는 "만성리 해수욕장을 살리기 위해 300억 원을 투입해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 관광객들을 끌어오기 위해서요. 그런데 20~30억 원을 아끼려다 향일암 관광지 명성을 망치면 여수관광은 어떡하겠다는 건지 묻지 싶습니다"라며 언성을 높였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밤바다에서 고기 잡는 배들이 환하게 불을 켰지만 내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 저러다 여수가 제2의 강정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주민들의 강경한 분위기를 풀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답은 있다. 정치란 갈등을 풀어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향일암 군생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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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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