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좋은 이유, 읽을수록 불편하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27]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딸은 좋다>

등록 2015.10.20 20:37수정 2015.10.2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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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에 마중을 나온 엄마. 버스에서 내리는 딸을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가 못마땅한 딸. 옷 한 벌 사줄테니 가자는 엄마. 딸은 탐탁진 않지만 싫지는 않은 눈치다.

맘에 드는 옷을 골라 기분 좋게 피팅까지 마친 딸. 엄마는 옷 값을 치르고 나서 스치듯 남자 양복 한 벌을 눈여겨 본다. 딱 한 벌 남은 양복이라는 매장 직원의 말에 엄마는 딸에게 말한다. "오빠 거 하나 사게 카드 좀 빌려줘." 딸은 그런 엄마에게 "이거 내가 산 옷보다 비싼 거잖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하고 쏘아붙인다. 엄마가 사준 옷을 가게에 그대로 두고 나오는 딸.


'뭐지? 이 익숙한 장면은? 이거 딱 우리 엄마 이야기잖아?' 싶었던 이 이야기는 바로 KBS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 속 내용이다. 짐작하겠지만, 이런 엄마와 딸이 친해지기는 쉽지 않다.

엄마와 나도 그랬다. 우리 사이에는 늘 '아들'이라는 벽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을 때면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딸은 좋다>라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 특히 그랬다. 좋은 딸이 아닌 내가 자꾸 "딸은 좋다"고 소리내어 읽어야 하니까.

딸이 좋은 이유, 읽을수록 불편하네

<딸은 좋다> 겉표지. ⓒ 한울어린이


책에서는 말한다. 딸은 좋다고. 딸을 안고 나가면 "엄마 닮아 웃는 것도 예쁘네요"라며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며. 나는 아니었다. 일찍 결혼한 엄마는 한눈에 봐도 젊고 예뻤다. 엄마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엄마는 예쁘고 난 그렇지 않은데 뭐가 닮았다는 거지?' 싶어 화가 났다. 놀리는 것 같아서.

예쁜 옷을 많이 입힐 수 있어 딸은 좋단다. 나 어릴적 엄마는 돈 버느라 바빴다. 딸 키우는 재미 같은 게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예쁜 옷을 입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 구두보다 운동화. 치마보다 바지를 입을 때가 더 많았다. 그 때문일까. 딸 둘을 키우면서도 아이들 옷 고르는 일이 신나지 않다. 오히려 어렵다. 내 눈에 예쁘다 싶으면 돌아오는 소리, "그건 남자애 건데요."


딸은 또 엄마를 졸졸 따라 다니며 "내가 해줄게요" 해서 좋단다. 아주 어려서는 기억에 없으니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는 아니었다. 엄마가 하라는 건 괜히 하기 싫었다. 사춘기 때 반항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특히 "오빠 밥 차려 주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 "오빠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알아서 먹으라고 해" 내 뻔한 대꾸에도 엄마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만큼 엄마와 나 사이도 멀어졌다.

엄마에게 화를 내고 한순간도 못 되어서 "엄마 미안해요" 쪽지를 쓰는 딸이 좋단다. 나도 엄마에게 그런 쪽지를 쓰긴 썼다. 엄마가 소중하게 보관하는 일은 없었지만. 화장대 한 귀퉁이에서 꼬깃한 채로 버려진 내 쪽지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엄마에게 뭔가 쓰는 걸 중단한 건.

끝으로 딸은 좋단다. 아기를 낳아 엄마가 되어 볼 수 있으니까. 내가 가시 돋힌 말을 할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너 닮은 애 낳아서 키워 봐라, 그래야 엄마 마음 알지" 나 닮은 애가 어때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짐했다. 엄마처럼 아들은 절대 낳지 않겠다고. 그런데 왜지? 나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은.

엄마는 말한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있냐고. 내가 아픈 손가락이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대하는 게 편치 않다. 내 속에 있는 따뜻하고 정감있는 말을 엄마에게 단 1%도 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고운 말보다 아프고 거친 말이 앞선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 직장 생활하며 아등바등 살면서도 왜 엄마 마음을 몰라주냐"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습관은 무섭다. 사람은 변하기 참 어렵다. 내가 그렇다. 그런데 엄마는 아니다. 딸이 직장에 나간 사이 손주들을 돌보고, 늦게 퇴근해 돌아올 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한다. 학창 시절,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엄마는 늘 집에 없었는데 결혼해서 애 둘을 낳고 이렇게 될 줄이야.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야 마주한 저녁 밥상. '엄마가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반찬이 좀 짜네"라는 말 한 마디가 습관처럼 튀어 나온다. '아차' 싶어 엄마 눈치를 살핀다. '내 딸이 이러면 참 속상하겠다' 생각하며.

PS. 큰아이가 이번 글을 힐긋 보더니 이런다.
"구두보다 운동화, 치마보다 바지... 이건 나랑 똑같네."
딸은 좋다.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니까.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가끔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딸은 좋다 (2006년판)

채인선 지음, 김은정 그림,
한울림어린이(한울림), 2006


#다다 #딸은 좋다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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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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