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고민 한번에 해결? 전혀 공감 안 가네

문화체육관광부 만화집 '공감' 9월호, 노동개혁에 대한 정부 측 입장만

등록 2015.10.06 16:38수정 2015.10.0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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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행복한 일자리? ‘공감’이라는 만화집의 이름이 무색하게, 반쪽짜리 설명만 늘어놓은 이 만화의 내용을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문화체육관광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이 노동'개악'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의 입장만을 담은 내용의 만화집을 내놓아 논란이 예상된다.

어렵게 학업을 마쳤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하는 마하탄. 마하탄의 가족은 정년이 연장됐다는 조카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도, "우리 마하탄 같은 청년들은 어쩌냐"며 한숨을 내쉰다. 마하탄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마을 이장은 "임금피크제는 이런 고민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9월 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정책 홍보용 만화집 '공감' 9월호에 개제된 만화 '마하탄의 추석' 줄거리다. '공감' 9월호는 '노동개혁'을 중점 기획 주제로 삼았다. 그 기획 시리즈의 일부인 이 만화는,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이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장년은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조금 덜 받으면서 정년을 보장받고, 기업은 줄인 임금으로 새로운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그런 면에서 임금피크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닌 꼭 이루어야 할 필수과제"라고 말하는 식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주장과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빈약하다. 아무리 정책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만화라지만, 임금피크제의 긍정적인 기대 효과만을 소개하는 것은 '반쪽'에 그친 설명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이 불확실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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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동시장이 이대로 가면 자멸한대요" 이 만화는 등장인물을 통해 “임금피크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닌 꼭 이루어야 할 필수과제”라고 말한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과 닮아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임금피크제는 '마법의 열쇠'? 반쪽짜리 설명

지난 6월, 국회입법조사처는 '임금피크제의 쟁점과 입법·정책적 시사점' 연구 보고서에서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더라도 이를 통해 고령자의 고용기간이 연장되면 기업의 인건비 총액 자체는 현재보다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증가할 것"이라며 "임금피크제 실시와 고령자 고용기간 연장을 통해 기업의 인건비 총액이 현재 수준보다 증가한다면, 정부의 기대나 경영계의 예측과는 달리 청년 신규고용 창출에는 다소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쉽게 말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기업이 지출해야할 돈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되레 늘어나, 청년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데 투입할 비용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5일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60개의 공공기관중 28개 기관에서 기존 정년자의 임금총액이 평균 107% 증가했다. 32개 기관에서 평균 57% 감소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임금피크제 시행 전 대비 임금총액이 20%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예측한 국회입법조사처는 연구 보고서에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고용연장과 청년 신규고용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마법의 열쇠는 아니"라며 정부에 정책 추진에 대한 '속도 조절'을 주문하기도 했다,

우리와 다른 독일 노동개혁,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한지 의문"  

문제는 더 있다. 이 만화에서 한 등장인물은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독일 등 선진국들도 노동개혁으로 우리와 같은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독일은 1990년대 높은 실업률과 낮은 경제성장, 높은 복지비용이라는 삼중고 때문에 유럽의 병자로 불렸지만,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유럽의 중심국가로 부활했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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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경향>은 사설을 통해 “과연 유럽의 노동개혁을 한국의 ‘노동개혁’과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라며, “한국의 노동개혁은 사실 하르츠 개혁을 잘못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문화체육관광부


하지만 이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독일 등 유럽의 노동개혁은 우리나라의 노동개혁과 방향이 다를 뿐만 아니라, 독일의 노동개혁 평가에 관해서도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경향>은 5일 '유럽의 노동개혁을 부러워하는 한국의 보수에게'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독일의 하르츠의 개혁이나 유럽의 노동개혁을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해당 사설에서 "과연 유럽의 노동개혁을 한국의 '노동개혁'과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라며, "한국의 노동개혁은 사실 하르츠 개혁을 잘못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르츠 개혁은 고용유연성과 함께 안정성을 강조했지만, 한국의 노동개혁은 고용유연성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노동개혁 내용에는 비정규직 사용 기한을 늘리고,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 고용불안정성을 오히려 높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르츠 개혁을 연구한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또한 우리나라의 노동개혁과 독일의 노동개혁은 그 내용에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독일의 노동개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도스탈 교수는 지난 9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하르츠 개혁은 '노동법'을 수정한 게 아니다, 실업급여와 연금제도를 손 본 것이 개혁의 골자"라며, "한국이 지금 '노동개혁'이라고 이야기하는 임금피크제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법 개정, 노조의 협상력을 낮추는 등의 개혁이 아니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실업률이 낮아지고, 경제가 회복한 것을 하르츠 개혁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데,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무엇보다도 독일인으로서 해외에서 하르츠 개혁이 각광 받는 것은 의아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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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말고 힘 내!" 희망찬 결말이지만... ‘공감’이라는 만화집의 이름이 무색하게, 반쪽짜리 설명만 늘어놓은 이 만화의 내용을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문화체육관광부


문체부, "우리는 홍보파트, 고용노동부 자료 바탕으로 만들어"

한편 '공감'을 발행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계자는 6일 기자와 통화에서 "(공감은) 정부에서 발행하는 정책 홍보지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와 같은 문구도) 정부 홍보 카피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임금피크제를 통한 고용 창출이나 독일 노동개혁을 언급한 부분 등과 같이 이견이 있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다룬 것에 대해서는 "모든 정책에 이견은 있을 것"이라며, "공감은 관련 부처에서 보내준 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고용노동부에서 그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홍보파트에서 (만화의 내용에 대해) 모든 걸 세세하게 연구하고, 담당부처처럼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감'은 온라인 사이트 '카툰 공감'(www.cartoonkorea.kr)에 업로드 되며, 일부 관공서나 대학 도서관 등지에 배포된다. 
#노동개혁 #임금피크제 #청년일자리 #독일 노동개혁 #노사정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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