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문화유산 거느린 팔공산, 이 가을에 '딱'

뛰어난 단풍과 보물 12점 아직 못 보셨다면...

등록 2015.10.28 17:45수정 2015.10.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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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단풍 ⓒ 정만진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여 우리의 독립 기상을 세계 만방에 떨친 날이다. 그런가 하면 1979년 10월 26일은 한국이 세계적 망신을 당한 날이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인 최고 정보기관 수장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26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대단했지만 대구 시내에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행사도 없었고, 박정희 대통령을 제향하는 의식도 없었다. 국사에 대한 관심은 그토록 뜨거운데 어째서 모두들 이토록 조용한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 궁금증을 품은 채 팔공산으로 들어갔다.


고려 유신 길재는 회고가를 통해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말했다. 팔공산은 길재의 한탄이 사실임을 뜨겁게 말해주었다. 국사를 운운하는 사람들은 입만 뜨거웠지만 팔공산은 온몸으로 가을을 뜨겁게 증언하고 있었다.

단풍 구경은 파군재 출발, 동화사 삼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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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팔공산 전경, 갓바위부처, 동화사 대웅전, 동화사 봉서루의 사명대사 유적 '영남치영아문' 현판, 송림사 5층전탑 ⓒ 정만진

팔공산에서 단풍을 구경하는 길은 파군재에서 출발하여 파계사 삼거리를 거친 다음, 동화사 삼거리로 내려와 다시 파군재로 돌아오는 여정이 '최고'로 추천할 만하다.

파군재는 왕건이 견훤의 후백제 군대에 대파를 당한 고개로, 삼거리 가운데에 신숭겸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파계사 삼거리까지 고목 분위기를 풍기는 큰 나무들이 울긋불긋 단풍을 뽐내고 있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파계사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동화사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무들이 크기는 작아져도 그 대신 아담하고 아기자기하여 또 다른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준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이정표가 도로변에 세워져 있지만 단풍 구경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니 무시해도 좋다.


몽고군이 쳐들어와 초조 대장경을 불태운 부인사가 중간쯤에 있다. 부인사는 절집들이 그 당시 전소되었지만 아름드리 고목들이 많이 남아 있어 단풍 나들이 장소로는 썩 괜찮다.

동화사 아래를 지나 내려오면 갓바위부처가 있는 관봉과 파군재로 돌아오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단풍만 보려면 파군재로 돌아오면 되고, 산정에 새겨져 있는 '세계 유일의 갓 쓴 돌부처'를 구경하고 싶으면 좌회전하여 관봉 쪽으로 가야 한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갓바위부처까지 오르는 데에는 대략 30분가량 걸린다. 갓바위부처의 공식 이름은 '관봉 석조여래 좌상'으로, 국가 지정 보물 431호이다.

팔공산에는 보물이 많다. 동화사에 있는 것만 살펴봐도 성보박물관의 사명대사 초상(보물 1505호), 보조국사 초상(1639호), 아미타회상도(1601호), 당간지주(254호), 부도(601호), 금당암 동서 3층석탑(248호), 대웅전(1563호), 목조 약사여래 좌상(1607호), 비로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244호), 비로암 3층석탑(247호), 봉황문 앞 절벽의 마애여래좌상(보물 243호) 등 11점의 보물이 떠오른다.

그 외에 북지장사 대웅전(805호), 파계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992호)과 영산회상도(1214호), 기성동 3층석탑(510호), 송림사 5층전탑(189호)도 보물들이다. 염불암 청석탑과 마애 여래 좌상 및 보살 좌상, 동봉 석조 약사여래 입상, 동화사 극락전, 부인사 서탑과 석등, 파계사 원통전, 비로봉 마애 약사여래 좌상, 송정동 석불 입상, 신무동 마애불 좌상, 서봉 삼성암지 마애 약사여래 입상 등 유형문화재들과 기타 문화재자료까지 나열하자면 그저 '팔공산에는 문화재들이 숱하게 많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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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단풍 ⓒ 정만진


팔공산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팔공산 입구 지묘동 일대는 927년 왕건이 견훤에게 대패하여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전쟁터이고, 동화사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영남 일원의 승병들을 지휘하고 훈련시킨 총본부였다. 그래서 지금도 동화사 봉서루에는 '영남치영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의 '치'는 승려를 뜻하고, '영'은 군영, '아문'은 '본부' 정도의 의미이다.

몽고의 침략, 왜구의 침략, 6.25전쟁 때에도 팔공산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세계문화유산인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보다 200년이나 앞서 제작된 초조 대장경이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던 중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고군의 침탈을 당해 불에 타버렸고, 사람들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이곳에서 죽었다.

<고려사>에는 '공산성에 들어간 백성들이 굶어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늙은이와 아이들의 시체가 골짜기를 메웠는데, 심지어는 나무에 아이를 매달아두고 가는 자도 있었다' 등의 처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나저나 2015년 10월 26일, 팔공산은 단풍으로 아름답다. 도시는 인간들이 내뱉은 말들로 어지럽지만, 팔공산은 단풍으로 사람을 어지럽게 한다. 게다가 수많은 문화유산까지 거느린 팔공산, 언젠가 한번은 꼭 찾아보아야 할 우리나라의 명산이다. 그렇다면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 적격이다.
#팔공산 #갓바위 #사명대사 #동화사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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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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