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 냄새를 싫어하는 그들, 여긴 누구의 도시?

[사진과 시로 만나는 세계의 도시 9] 타일랜드 방콕

등록 2015.11.02 15:53수정 2015.11.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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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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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은 1년 내내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북미와 유럽의 청년들은 햇살 보기가 힘든 자신의 나라에서 햇살 쏟아지는 태국으로 여행을 온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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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카오산로드.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로만 보자면 여기가 유럽인지, 아시아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신성한 불교사원과 막무가내의 음주가 뒤섞인 공간.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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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열대과일 두리안을 파는 방콕의 상인. 두리안이 뿜어내는 향기는 매우 독특해서 그걸 싫어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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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거리'로 불리는 방콕의 카오산로드에는 조잡한 액세서리를 파는 것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이 많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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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방콕 거리. 대부분의 태국인들은 잠들고 싶어하지만, 무언가로 인해 잠들지 못한다. ⓒ 구창웅 제공


이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준 아름다운 다리라고 했다
그 예술적 표현을 반박하며
누군가는 테이블을 성난 주먹으로 내리쳤다
방콕은 그저 발정을 다독이는 매춘굴일 뿐이야

게을러도 좋을 태국인들은 24시간 일한다
'세븐 일레븐'은 발길을 옮길 때마다 신기루처럼 나타나고
남부 코사멧과 북부 치앙콩에서 온 시골 소녀들
시간당 1달러를 받으며 하얗게 밤을 지샌다
떠오를 해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나온 전 생애보다 길다

놀러온 금발들에겐 방콕의 밤은 언제나 짧다
제 나라 콜라 한 잔 값으로 좌충우돌 진행될 흥정이 즐겁다
배낭은 무겁지만 삶이란 더없이 가벼운 것
일년 내내 햇살의 세례를 받는 이곳은 천국이 아닐까
눅눅한 안개 속 자살이 익숙한 나라로 돌아갈 이유가 없고
발권된 귀국행 비행기표는 카오산로드 시궁창에 버려진다

꾸벅꾸벅 꺾이는 목을 겨우겨우 버텨내며 견디는 밤
이제는 가슴 속 차오르던 물음도 버렸다
대체 당신들은 언제가 돼야 잠드는가
개당 2달러 액세서리는 오늘도 도통 팔리지가 않는다
아버지보다 아낀 라마 5세가 꿈꾼 나라는 이런 곳이었을까
동생은 오늘도 비키니를 입고 팟퐁에서 춤을 춘다
에어컨 냉기 탓에 기침을 친구처럼 달고 산 지 2년

이윽고 해 뜰 무렵 거짓말처럼 바람이 불었다
실려 사라질 께 뻔하지만 그 바람에 묻는다
그러나 누가 있어 답을 들려줄까
이 도시는, 이 나라는 대체 누구의 것인가
두리안의 냄새를 싫어하는 이들로부터 밥을 얻는 우리는,
우리는 누구인가.
#방콕 #태국 #두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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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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