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님이 어르신 웃기는 '품바'가 된 사연

15년째 웃음 봉사활동 하는 울산 중구 복산2동 박상구 동장

등록 2015.11.03 18:28수정 2015.11.0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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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중구 복산2동주민센터 박상구 동장이 지역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울산 중구 복산2동주민센터 박상구 동장이 지역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박상구

슈렉이 됐다가 각설이 품바가 됐다, 하루에도 수차례 모습이 바뀌는 변화무쌍한 50대 남성. 그가 노인들 앞에 서면 모두 배꼽을 잡고 자지러진다.

우스꽝스러운 가면도 가면이지만 그의 익살스러운 동작을 보고는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하나하나와 몸짓 하나하나는 모두 봉사활동을 위한 것이다. 그는 내년이면 정년퇴직을 하는 공무원, 그것도 동장님이다.


그는 바로 울산 중구 복산2동 주민센터 박상구(59) 동장이다. 평소 엄숙한 표정을 짓는 줄로만 알았던 동장님은 왜 노인들을 웃기는 어릿광대가 되었을까?

15년째 각설이 공연하는 동장 "몸 불편한 어르신들 웃을 때면 기뻐" 

박상구 동장이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건 15년 전인 지난 2000년. 그는 울산시 공무원 봉사단체에 가입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설을 찾아가 청소와 어르신 목욕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어느날은 우연히 다른 봉사단체가 공연할 때 권유에 따라 가면을 쓰고 막춤을 췄다. 봉사단체는 "가면 주인이 여기 있었네"라고 칭찬했다. 그는 박장대소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그는 지난 15년간 울산 웃음나눔봉사단, 가릉빈가 예술단, 등불회 등 5~6개 단체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웃음을 선사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역 어르신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나갔다.


박 동장이 가지고 있는 각종 가면과 대머리 가발 등 웃음을 주는 소품은 모두 1백 개가 넘는다. 그는 공연과 소품 챙기기를 모두 혼자서 준비한다고 했다. 수시로 봉사활동을 다니는 그의 승용차는 이 소품들로 채워져 운전석 외는 앉을 자리가 없다.

이렇게 많은 소품을 구매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생겼다. 공연의상을 찾기 위해 헌 옷 가게와 여성 옷가게를 자주 찾다가 처음에는 오해를 받았던 것. 공연에 입을 여성속옷을 고르다 주인한테 변태로 몰려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안 옷 가게 주인은 지금은 가게에 독특한 옷이 들어오면 박 동장에게 먼저 연락하는 정도가 됐다.


인터넷으로 마술 독학한 '복면 봉사왕'

 울산 중구 복산2동주민센터 박상구 동장이 어르신들을 웃길 대 사용할 가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울산 중구 복산2동주민센터 박상구 동장이 어르신들을 웃길 대 사용할 가면을 들어보이고 있다박상구

어르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봉사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어린아이들도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마술을 배워 요즘은 마술쇼도 선보이고 있다.

품바도 그렇지만 마술쇼도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다. 인터넷 서핑을 하며 혼자서 터득한 것. 이 때문에 매일 아침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떠는 그는 요즘은 출근하기 전까지 남는 시간을 마술 연습에 몰두한다.

품바 공연 등은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공연 때면 음악에 맞춰 옷과 가면을 계속 갈아입는다. 이러다 보니 공연시간 1시간이 끝나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기 마련이란다. 하지만 부름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기에 어떨 때는 하루 6번을 공연할 때도 있었단다.

박 동장은 품바 공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벌써 10여 년째 지역의 시각장애인시설을 찾아 장애인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마다치 않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울산시 공무원 자원봉사 왕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복면 봉사왕'이 된 것이다.

박상구 동장은 "처음 품바를 배울 때 인터넷 동영상을 수도 없이 보면서 동작 하나하나와 노래와 율동을 독학했다"며 "사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 앞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율동 하면 어르신들이 즐거워하시기에 나도 모르게 공연하러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웃을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분들을 즐겁게 하니 기분이 너무 좋다"며 "퇴직 후에는 울산 전역에 웃음을 선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울산 가면봉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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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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