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의 단군성전에서 찍은 단군상.
김종성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해모수가 부여 군주였다고 했다. 고조선 왕실의 혈통을 계승한 인물이 어째서 부여 군주가 되었을까? 부여라는 말의 의미를 음미해보면, 이 의문을 풀 수 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부여는 국호가 아니라 수도의 명칭이라고 말했다. 부여는 들판을 의미하는 우리말 '불'을 음역한 한자라고 그는 고증했다. 이 말이 고조선 수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백제 성왕 이후의 백제 도읍이 부여로 불린 것도 이런 고증과 일맥상통한다. 부여가 국호가 아니라 도읍 명칭이었기 때문에, 백제가 부여를 도읍으로 삼을 수 있었다.
부여가 국호가 아니라 도읍 명칭인데도 해모수가 부여 군주로 불린 것은, 워싱턴을 미국의 대명사로 받아들이고 베이징을 중국의 대명사로 받아들이는 언어 습관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해모수가 부여 군주라는 말은, 그가 부여를 도읍으로 둔 고조선의 군주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해모수가 부여 군주 즉 고조선 군주였다는 사실은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기 얼마 전까지도 해씨 왕실이 고조선을 지배했음을 뜻한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세워지기 얼마 전까지도 고조선 왕실이 해씨였다면, 고조선이 기씨 조선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위씨 조선으로 이어졌다는 논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다.
고조선 왕실의 정통성이 해씨에게 있었는데도, 중국인인 기씨와 위씨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논리가 나온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은 조선 전기에 유학자들에 의해 벌어진 역사 왜곡에서 찾을 수 있다.
세조 3년 5월 26일 자(1457년 6월 17일 자) <세조실록>이나 예종 1년 9월 18일 자(1469년 10월 22일 자) <예종실록>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전기에는 고조선 역사서를 불태우고 우리 역사의 뿌리를 중국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유학자들이었다.
유학자들은 중국 중심과 농경민 중심의 역사관을 가진 지식인들이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중국과 대립했을 뿐만 아니라 유목 문화를 상당 부분 보유하고 거기다가 샤머니즘 성격의 신선교 문화를 보유한 고조선 역사를 어떻게든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고조선의 정통성이 중국인들에게 이어졌다는 식의 엉터리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런 논리가 지금의 역사교육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조선의 정통성을 무시한 엉터리 역사교육이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고조선 역사 교육이 근본에서부터 잘못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실의 성이 바뀌면 왕조가 끝나던 시대에 고조선 왕실의 성씨가 기씨로 바뀌고 위씨로 바뀌었다고 가르치는 것은, 마치 '왕건 고려'의 정통성이 '이성계 고려'로 계승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황당한 일이다. 왕조의 주인이 무슨 성씨였나를 파악하는 것은 그 왕조의 역사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그런데도 고조선에 대한 우리의 역사교육은 그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다.
이런 잘못을 바로잡고 고조선 역사를 제대로 복원하려면, 한두 명의 지식과 지혜로는 부족하다. 고조선 시대의 상고사 복원은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는 소수의 필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상호 협력적으로 진행되는 역사연구가 보장되지 않으면, 고조선 역사를 올바로 복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의 중지(衆志)를 모아야 하는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황우여 부총리는 소수의 국정교과서 필진만으로 상고사를 보강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고조선 역사교육을 정상화하는 일은 집을 새로 짓는 일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것을 소수의 필진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조선 역사교육이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더 파행을 겪어야 할지,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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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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