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결혼식 포기하고 광화문 집회 갔습니다

[2차 민중총궐기 참가기 ①] 조카의 결혼식, 임용시험 보는 제자들 뒤로 하고 간 민중총궐기

등록 2015.12.09 21:04수정 2015.12.0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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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에 비가 그친 뒤 진짜 겨울이 시작된다더니, 아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동차까지 말썽이다. 애꿎은 자동차 바퀴에 발길질하며 화풀이를 해댔다. 다행히 주말에도 출근하는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배터리를 살려내서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2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힘 보태려 상경하는 날 아침, '머피의 법칙'은 어김없었다.

사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상경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일 조카의 결혼식에다 가족 송년 모임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상경하는 조합원들에게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만 남긴 채 간밤을 보냈다. 몇몇 분들은 '선생님 몫까지 외치고 오겠다'며 토닥여주셨는데, 되레 그 답장들에 마음이 흔들려 버렸다. '그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자.'

가족 송년 모임이야 해마다 있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평생 한 번뿐인 조카의 결혼식에 가지 못한다는 게 체한 듯 불편했다. 휴대전화를 꺼내 만지작거릴 뿐, 조카에게 차마 못 간다는 문자를 보내진 못했다. 이번 집회 참가가 결혼식에 대한 삼촌의 '축의'임을 언젠가는 조카도 이해할 거라 스스로 위로했다.

a  미안하다 조카야

미안하다 조카야 ⓒ pixabay


a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 촛불문화제에서 지난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의 딸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발언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힘내라"고 외치며 응원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 촛불문화제에서 지난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의 딸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발언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힘내라"고 외치며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집회에 참가하는 게 부럽다는 제자

이른 주말 아침이었는데도 (버스) 출발 장소 근처는 밀려드는 자동차로 북새통이었다.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수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는 뉴스를 들은 터였다. 나중 알고 보니 인근 학교에서 중등학교 임용 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시험장 교문을 들어서는 수험생들의 행렬이 흡사 수능 날의 풍경 같았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본의 아니게 그들의 통행을 방해해 미안할 지경이었다.

버스 앞에서 데면데면하게 서 있는 날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이들이 있었다. 제자들이었다. 손을 맞잡고 연신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이 졸업한 지 족히 10년은 더 지난 것 같다. 불과 10여 분 동안 만난 제자만 넷이다.

현재 섬에서 일하고 있는데 근무지를 옮길 요량으로 다시 응시하게 됐다거나, 일반 기업체에 다니다 그만두고 2년째 임용 시험을 준비해 왔다는 등 나름의 사연과 근황을 들려주었다. 그런가 하면, 이번 시험 잘 치르고 내년 봄 결혼할 계획이라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때 청첩장을 보내드리겠다면서 전화번호를 적어가기도 했다.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집회에 참가하려는 선생님들이 부럽기까지 해요."

한 제자는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침부터 여기서 뭐 하시느냐는 질문에 "서울 가려 모였다"고 답한 직후 나온 퉁명스런 반응이었다. 그는 오로지 교사만을 꿈꾸며 졸업 후 6년째 임용 시험 준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이가 서른하고도 넷이라면서 이번에도 떨어지면 미련을 버리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똑같은 다짐을 하며 시험에 임했을 것이다. 나이보다 더 깊이 팬 이마의 주름이 그걸 짐작하게 했다.


"힘내라. 이번엔 반드시 합격할 거야. 오늘 서울 가서도 널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해줄게."

그도 허투루 들었겠지만, 입에 발린 영혼 없는 격려다. 그의 어깨는 토닥이기조차 미안할 만큼 축 처져 있었다. 그와 짧은 포옹을 나누며 가슴으로 전하려던 말은 따로 있었다.

'이 추운 겨울날, 주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반납하고 상경해 길거리에서 구호 외치는 일이 어찌 행복한 느낌이겠니? 그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이고, 나아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책임의식의 표현이야. '헬조선'에 살아가는 우리 사회 약자들과 연대하려는 작은 몸짓이라고 생각하며 가상히 여겨주렴.'

임용 시험 외엔 단 한 번도 한눈 판 적이 없다는 그가, 조카의 결혼식과 1년에 한 번뿐인 가족 송년 모임마저 포기하고 굳이 집회에 참가하려는 나를, 어쩌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스치긴 했다.

민중총궐기 참가로 인해 불이익 받지 말라는 교육부

a 2차 민중총궐기 참가 금지 공문 담당 부서가 '교원복지연수과'라는 사실이 얄궂다. 교원들의 '복지'를 위해 참가하지 말라는 것일까.

2차 민중총궐기 참가 금지 공문 담당 부서가 '교원복지연수과'라는 사실이 얄궂다. 교원들의 '복지'를 위해 참가하지 말라는 것일까. ⓒ 서부원


1차 민중총궐기 때와는 달리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막힘없이 내달리는 버스와 붐비지 않는 휴게소 풍경이 낯설었다. 얼마나 모이게 될까 생각하니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이웃의 고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했던가. 한산하기까지 한 상행선과는 달리 고속도로 하행선은 주말 나들이객들 때문인지 자동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쉴 무렵, 그제야 막내아들의 부재를 안 팔순의 노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들으셨다면서, 부디 몸조심하라며 신신당부하셨다. 당신께서도 신문과 방송을 보기조차 무섭다면서, 이럴 땐 그저 입 다물고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씀하셨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면서, 한사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되뇌셨다.

당신은 고향 순천에서 나고 자라 여수·순천 10.19 사건과 6.25 전쟁 등 참혹한 사건들을 직접 몸으로 겪으셨다. 국가와 무력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무려 반세기가 넘도록 지니고 살아오신 거다. 여전히 대통령과 박정희를 '동의어'처럼 알고 계시며, 그의 따님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시는 분이다. 당신에게 '데모'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일 뿐이다.

"데모는 무슨, 그냥 다른 지인들과 서울로 바람 쐬러 가는 거예요. 어머님께서도 TV를 보시고는 농사꾼으로서 남 일 같지 않다며 너무너무 '짠하다'고 눈물을 훔치셨잖아요. 그 백남기 어르신의 쾌유를 비는 자리에 겸사겸사 다녀오려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을 안심시켰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걱정도 됐다. 이틀 전 교육부로부터 '2차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로 인해 교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공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참가하지 말라고 겁박하는 셈이다. 이번 집회에 대한 엄정 대응을 밝힌 법무부의 담화문을 교육부가 대신 내려보낸 것인데, 담당 부서가 '교원복지연수과'라니 참 얄궂다.

함께 상경하는 한 분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어 요긴할 거라며 어플리케이션 하나를 소개해줬다. 집회나 시위에 참가할 때 경찰의 검문이나 체포에 대응하는 방법을 사례별로 담고 있었다. 집회 참가자 입장에서야 '유용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한편으론 굳이 이런 것까지 미리 챙겨 읽어야 하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a 집회와 시위 관련 애플리케이션 정부의 말마따나 '전문 시위꾼'도 아닌데,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런 것까지 챙겨 읽어야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집회와 시위 관련 애플리케이션 정부의 말마따나 '전문 시위꾼'도 아닌데,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런 것까지 챙겨 읽어야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 서부원


☞[2차 민중총궐기 참가기 ②]에서 이어집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2차 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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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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