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팎의 음료값이 다른 이유

[빅맥의 쉐프 도전기 ⑪] 호주의 물가

등록 2015.12.08 18:15수정 2015.12.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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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여행기간 동안 묵었던 민박집 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 정성화


큰애가 '호주바다'라고 하는 교민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월폴 스트리트(Walpole Street)에 있는 민박집의 이름은 '태리 하우스'라고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센스 있게 잘 지은 것 같다. 처음 집안에 들어 섰을 때 마주 친, 바닥에 빽빽하게 깔려 있는 눈부신 순백색의 카페트가 인상적이었다. 발을 편하게 받아 주는 푹신한 카페트는 우리에게 생소하고 이국적이었다.


민박집 안주인과 인사를 나눈 것은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였다. 우리는 숙소를 이용하면서 협조(?)해야 할 사항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인들은 세입자가 집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것을 주요 계약조건으로 하고, 학생들만 사는 집에는 수시로 점검을 나온다는 이야기는 진즉에 큰애한테 들은 바가 있다.

민박집 주인도 임대기간이 끝나고 집을 돌려줄 때 원상회복 의무가 있으니, 특히 카페트에 음식물 같은 것을 흘리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했다. 이외에 식기와 컵은 어느 것을 사용하고, 냉장고는 어느 부분을 사용하며,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등에 대해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그리고 장시간에 걸친 주변 관광지 설명이 이어졌다.

맬버른에서의 여행 스케줄에 대해서는 큰애와 대략적으로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워킹 홀리데이 2년 동안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한 큰애의 관광지식보다는 민박집 안주인의 설명이 더 그럴 듯 해 보였다. 문제는 총알처럼 쏟아지는 설명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디에 메모를 해서 주면 좋겠는데 성격상 그렇게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주인 부부가 호주 여행을 다니면서 좋았던 경험이 끝도 없이 이어져 나왔다. 이상한 점은 큰애와 작은애가 설명에는 동의하면서도 메모를 하면서 체계적으로 스케줄을 짜는 것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랜 회사 생활로 인해 정리된 보고서에 익숙한 나에게, 이러한 상황은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개입되는 노동량이 적을수록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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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워쓰 슈퍼마켓 호주의 유명한 슈퍼마켓 체인이다. ⓒ 정성화


아까운 시간을 혼돈 속에 보낸 후, 여행의 기본적인 방향을 잡은 우리는 먼저 집 근처 야라 밴드 공원에서 저녁식사 겸해서, 바베큐 파티를 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민박집 주인의 이야기를 중간에 자르기가 어려워서 계속 초조해 하다가 기회를 잡아 대화를 마무리 짓고, 비로소 행동에 나선 것이다.

우선 바베큐에 필요한 물건을 사야 한다. 우리는 울워쓰(Woolworths)라고 하는 슈퍼마켓에 소고기를 사러 갔는데, 가격이 정말 쌌다. 네 식구에 충분한 양에다 소세지까지 더했는데 3만 원을 넘지 않았다. 소고기는 시장 보러 온 호주 아주머니에게 구이용이 맞냐고 확인해야 할 정도로 두툼하게 썰어 놓았는데, 그게 더 먹음직하게 보였다.

소고기 가격이 이렇게 싼 이유는 호주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투입된 노동력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슈퍼에서 그냥 쌓아둔 음료는 1.5리터 페트병이 2불 정도 밖에 안 하지만, 사람이 개입해서 냉장고에 들어 가면 0.5리터 작은 병이 4불로 가격이 껑충 뛴다. 소고기는 방목하여 키우기 때문에, 개입되는 노동량이 적어서 그렇게 싼 것이다. 당연히 노동량이 더 많이 투입되는 돼지, 닭의 순서로 가격이 비싸진다.

그럼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과일 가격이 싼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는 물만 있다면 작물을 키우기에 아주 좋은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농지 가격이 싸고 작물이 잘 자라니까 재배하는 데는 원가가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문제는 수확이다. 과일을 수확하는 작업은 자동화가 어렵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하는데 그럼 원가가 올라간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워킹 홀리데이 인력이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워킹 홀리데이 인력이 호주의 1차 산업 경쟁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호주 정부에 대해 워킹 홀리데이를 핑계로 한국과 아시아권 학생들을 저임금으로 내몬다는 비난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호주 정부는 1년인 워킹 홀리데이 비자기간을 1차 산업에서 종사한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2년으로 늘려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워홀러들이 1년 기간 연장을 받기 위해 이 기간을 채우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 인터넷에서 본 그런 일들을 다행히 큰애는 겪지 않았다.

서비스 구매를 최소화 하면 저축도 가능

지금 한국에서는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독하게 마음 먹으면 호주에서는 가능하다. 물론 등록금이 비싼 4년제 대학은 어렵겠지만 호주의 2년제 전문 직업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큰애에게 바라는 것처럼, 호주에서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영주권을 따서, 직업의 귀천에 따른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호주에서 산다고 하는 소박한 목표는 부모님 도움 없이 이룰 수 있다.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호주의 물가 체계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호주의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대체로 투입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 원재료의 가격은 싸고 서비스가 부가되면 가격이 급속도로 상승한다.

따라서 저축하려면 서비스 구매를 최소화 하면 된다. 음식을 가능한 직접 만들어서 먹고, 학교에 갈 때 도시락을 챙겨간다. 그러면 비용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이것은 큰애의 사촌과 같이 헝그리한 마인드라야 가능한 일이다.

수입면에서 보면, 호주의 급여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고, 일자리도 많은 편이다. 종합하면 수입과 지출 양 측면에서 호주는 의지만 있다면 고학이 가능한 사회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전략은 워킹 홀리데이 2년 동안 최대한 저축을 해서 등록금을 준비하고, 학생비자로 바뀌어 일하는 시간이 주 20시간 이내로 제한되면, 그때는 생활비 정도를 벌어서 쓴다는 것이다. 물론 주 20시간 근로시간 제한에 현금으로 급여를 받는 부분은 포함되지 않으므로 무리를 하면 수입을 더 늘릴 수 있다.

큰애도 워킹 홀리데이 기간에는 쓰고 남은, 제법 많은 돈을 내게 송금해왔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스스로 요리를 해먹고, 서비스 구매 비용을 최소화 하려는, 큰애의 사촌과 같이 생활하면서 덩달아 생활비를 절약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는 헬조선에서는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도저히 안 되면 떠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내년부터는 워홀러들이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내국인 대우로 해주었던 세금혜택이 폐지되는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호주의 소득세 누진체계를 따르면 워홀러들의 임금수준으로는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외국인들의 소득에 대해 일률적으로 30% 정도의 세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이상이 내가 울워쓰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동안 큰애에게서 들은 내용이다. 큰애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것 저것 구경하는 동안 아내는 작은 애를 앞세워서 장보기를 끝냈다. 우리는 먹을 것을 양손에 든 두 아들을 앞 세우고 바비큐를 할 야라밴드 공원으로 신나게, 그야말로 떠들썩하게 이동했다.
덧붙이는 글 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 #영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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