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면접 후, 내가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빅맥의 쉐프 도전기 12] 공원에서 먹는 바비큐

등록 2015.12.17 18:06수정 2015.12.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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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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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설치된 바베큐 그릴 - 적당 간격으로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 정성화


민박집 주인이 알려준 야라밴드 파크는 야라(Yarra)강을 끼고 있는 제법 큰 규모의 공원이다. 공원 내에 골프 코스도 있다. 한국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정말 좋은 공원이며, 보트를 타면 시내까지 갈 수 있다는 등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곳이다. 공원에는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정말 공원 군데군데 바비큐 그릴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비큐 그릴에는 두 개의 가스 버너가 있고, 각각의 버너 위에 있는 스테인리스 불판은 시청에서 주기적으로 청소하기 때문에 비교적 깨끗한 상태이다. 버너는 30분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데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는 스위치를 한번 더 눌러주면 된다. 스테인리스 불판 위에 그대로 고기를 구워도 되고, 나중에 청소를 편하게 하려면 알루미늄 호일을 깔고 구우면 된다.

공원에 사람이 적은 것은 인구에 비해서 공원이 많고, 또 호주 사람들이 해변을 좋아하여 휴일에는 주로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 한다. 목요일 노상 온천에 놀러 갔을 때에도 같은 경험을 했다.

온천에 들어 가기 전에 먼저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 위해 우리는 근처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두어 시간이 걸린 식사시간 동안 공원에 다른 사람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상 우리가 숲 하나를 통째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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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큐 직전 모습 -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 호일을 깔았다 ⓒ 정성화


바비큐 그릴이 이미 설치되어 있어서 챙겨야 할 준비물이 상당히 줄어 들었다. 바비큐 그릴 옆에는 다른 음식을 얹어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근처에는 벤치도 있다. 그래서 돗자리, 부스터, 프라이팬 같은 것이 필요 없고, 집게, 가위, 수저, 젓가락 같은 개인 용품만 챙겨가면 된다. 우리는 난생 처음 보는 공원 바비큐 그릴에 소고기와 소시지를 구웠다.


소고기에는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30분 정도 두면 적당히 간이 배어든다. 이렇게 구우면 퍽퍽하지 않고 감칠 맛이 난다. 소주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보드카를 곁들여서 먹어본 소고기는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질긴 맛을 느끼지 못한 것은 육질이 가장 부드러운 20개월 정도 키운 소고기를 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아해서 잘 할 수밖에 없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

식사를 하면서 나는 큰애와 속마음이 좀 더 담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큰애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말 그대로 다니기만 했던 것 같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남들이 다 가니까 그냥 자기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에 대한 면접을 하고 난 후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만일 지금 다니는 회사에 내가 다시 입사원서를 내면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신입사원 면접을 위해 신상명세서를 보면 너무나 화려한 스펙에 깜짝 놀란다. 영어도 거의 현지인 수준인 지망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즉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와 비슷한 수준의 기업에 입사원서를 내는 대학생들의 수준은 생각보다 높고, 큰애는 그 정도의 스펙을 쌓을 엄두도 못 낸다. 그리고 이대로 대학을 졸업하면 어떠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지 누구보다 큰애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큰애 입장에서는 재미도 없고,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공부에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없다. 불안한 마음으로, 불안한 시간을 게임으로 보내다가 호주로 등 떠밀려 온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호주에서 생활하다 보니 여기에서는 자기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노력(?)을 해볼 마음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여기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모든 대학생들이 정규직으로 대기업에 취업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열악한 비정규직으로 내 아이를 내몰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회의 일원으로 다양하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면 우리가 그토록 걱정하는 생계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호주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17.29달러(약 2만여 원) 정도로 선진국 중에서도 비교적 높고, 최저임금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장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비교적 잘 갖추어진 것으로 평가되는 호주의 직업학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모님께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졸업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벌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바꾼다면 괜찮은 직업학교가 눈에 보인다.

큰애는 호주의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무사히 졸업한다면 운전면허증을 딴 것처럼 다양한 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 호주의 레스토랑에 취업할 수도 있고, 내가 꿈꾸는 것과 같이 크루즈선의 요리사가 되어 전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다.

좀 더 전문적인 요리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유학 갈 수도 있다. 젊으니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노력하면 웬만한 것은 얻을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툴(tool)을 가지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호주 영주권을 취득하면 다음 단계가 많이 쉬워진다. 일을 하며 직업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고, 레스토랑을 차리거나 유학을 가는데 필요한 비용을 모으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쉐프나 유사한 직종의 급여수준이 별로 높지 않기 때문에 저축이 어렵다. 호주에서 일할 때 워킹비자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협상력 측면에서 영주권이 유리하다.

오십이 넘어서 살아 온 길을 다시 돌아보니 인생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십대와 삼십대에 다소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인생의 본선은 사십대 또는 오십대에 치른다고 생각하고 내공을 기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처럼 1막과 2막 인생을 구별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좋아해서 잘 할 수밖에 없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만큼 재미있는 오락은 없다. 일만큼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행복감을 주는 것이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따라서 자신이 평생 할 일을 자신의 의지로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여기에 투입되는 시간은 아까워하지 않아도 된다. 큰애도 지금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방황을 겪었는데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 많이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공원은 쾌적했다. 큰애의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보드카를 곁들여 들으면서 나는 점점 취해갔고 나만의 생각에 빠져 들어갔던 것 같다. 한국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일상화된 경쟁'을 벗어나, 멜버른에서 만난 여유로움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큰애의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에 얼큰하게 취한 나는 해가 지는 야라강 기슭을 산책했다.

바비큐 할 때에는 먹어 주기만 하면 되고, 여행기간 내내 아이들이 다 알아서 필요한 일을 처리 해주는, 이제는 한발 비켜 서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서 걷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 없이 행복했다. 

어렵고 힘든 길을 돌아온 큰애를 보면서, 아토피로 겪은 고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큰애의 손과 발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뭔가 안도감이 느껴졌다.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 많이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실낱 같지만, 그래도 이제는 삶의 가닥을 잡은 것 같은 것 같은 큰애의 모습에 가슴이 아리면서도 상처가 나아갈 때의 기분 좋은 고통이 나를 감싸는 듯 했다. 그동안 아이들에 대한 나의 부주의함에 대해서 다소 용서를 받는, 그런 뿌듯함으로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따라 야라강 기슭 오솔길을 오랫동안 걸었다.
#청년실업 #호주직업학교 #맬번 #바베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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