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산책자'의 도시에서 난해한 예술가를 만나다

[포토에세이] 파리의 갤러리 골목

등록 2015.12.15 10:31수정 2015.12.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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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리사진전 노트르담 성당에서 생제르맹 거리로 가는 길에 전시된 사진작가의 사진들

거리사진전 노트르담 성당에서 생제르맹 거리로 가는 길에 전시된 사진작가의 사진들 ⓒ 김민수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여행자의 자세는 '게으른 여행'이다. '게으른'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천천히, 느릿느릿'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면 '반복 혹은 되돌아 봄'일 수도 있겠다.

미국 작가 에드먼드 화이트는 파리를 '게으른 산책자의 도시'라고 불렀다. 나도 전적으로 그의 말에 동감한다. 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여행자는 '게으른 산책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여행하는 곳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일정은 너무 촉박했다. 그래도 사진 덕분에 촉박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직 게으른 여행 중이다. 그곳을 거닐었던 시간은 이미 한 달이 되어 가지만, 나는 서울에서 여전히 파리를 거닐고 있으며, 그곳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a 레 두 마고 사르트르의지정석이 있기도 했으며, 카뮈가 <이방인>을 집필한 장소로도 유명한 카페다.

레 두 마고 사르트르의지정석이 있기도 했으며, 카뮈가 <이방인>을 집필한 장소로도 유명한 카페다. ⓒ 김민수


노트르담 성당에서 조금 걷다보니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레 두 마고'가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와르가 거의 매일 들렀기에 그들의 지정석이 있었던 카페, 카뮈가 <이방인>을 집필한 카페, 당대의 지성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던 카페다. 파리에서는 'Cafe de Flore'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이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거장 사르트르와 페미니즘 운동의 선두에 섰던 보부와르는 51년간의 계약결혼을 이어가며, '세기의 연인'으로 불렸다. 그들은 계약결혼을 했지만, 한 집에서 함께 살지는 않았으며, 일반인에게는 엽기적으로 보일 만한 연인관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죽어서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합장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만 쓰려고 해도 소설책 몇 권을 될 것이니 그들의 세세한 생활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수고로 넘겨야만 할 것 같다.

a 에콜 데 보자르 국립미술학교로 3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 국립미술학교로 3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 ⓒ 김민수


'에콜 데 보자르'(프랑스 파리의 국립미술학교) 건물에는 11월 13일 파리테러를 추모하는 조기가 걸려있었다. 프랑스 국기의 3색은 자유, 평등, 우애를 상징한다.

마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공포정치를 실시해 30여만 명을 투옥하고, 1만 7천 명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나가며 자유, 평등, 우애를 무색하게 했던 것과도 같은 상황이 다시 전개된 것은 아닌가 싶었다.


파리테러가 있고 난 뒤, 어느 모임에서 이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프랑스의 젊은 친구 하나가 의미심장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번 테러가 있기까지 프랑스의 시리아 난민 정책은 어떠했습니까? 단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는 시리아 난민을 양산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테러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하고, 이번 테러를 빌미로 보수우익들이 IS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고 이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a 화가지망생 국립미술학교 학생들이 작품을 옮기고 있다.

화가지망생 국립미술학교 학생들이 작품을 옮기고 있다. ⓒ 김민수


국립미술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이 커다란 유화그림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자 가이드(프랑스 문학작가이자 시인)가 그림을 보며 자기의 예술관에 대해 피력을 했다. 참고로 가이드의 아내는 유화를 전공하고 있기에 폭 넓은 예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림이 어둡죠? 젊었을 때, 배울 때에는 어두운 그림, 실험작들을 통해서 자기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그러나 예술의 깊이가 더해지면 그 어두움에 머물지 않습니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떠올려보십시오. 물론, 어두운 이미지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유명한 작품들은 밝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주는 말이었다. 사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지를 좀더 깊게 고민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가이드를 잘 만나는 것도 행운인데, 그 행운이 이번 여행에 찾아온 것이다.

a 포스터 거리 곳곳에서 만난 NOJNOMA 흑백사진 포스터, 이것도 한 예술의 장르였다.

포스터 거리 곳곳에서 만난 NOJNOMA 흑백사진 포스터, 이것도 한 예술의 장르였다. ⓒ 김민수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자주 보이는 포스터가 한 장 있었다. 장소를 불문하고 여기저기 붙어있는 흑백사진 포스터에는 'NOJNOMA'라고 쓰여 있었다. 그냥 그것뿐이었다. 유명한 작가인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페이스북이나 홈페이지가 있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흑백사진이 붙어있는 사진들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녀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 2000년 초반부터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알려진 여성 사진예술가라는 것을 알았다. 번역하니 아래와 같은 짤막한 내용이다.

'그녀는 파리의 모든 벽에 자신의 흑백 사진을 붙여 자신을 홍보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런 작업을 지속했고, 그녀는 이것이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a 포스터 작지만 눈에 확 들어왔던 포스터

포스터 작지만 눈에 확 들어왔던 포스터 ⓒ 김민수


파리에서 유명세를 타면 곧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탈 수 있다는 것은 속 쓰리지만 현실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역사적인 요인들도 많지만,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프랑스가 가장 먼저 근대정치혁명을 이루며 지금껏 다방면에서 인류의 역사를 주도해 온 까닭일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것들의 그들의 자긍심이기도 하고,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자신들만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일 수도 있겠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y)는 파리를 근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라는 의미로 '모더니티의 수도'라고 부른다.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가장 먼저 근대화된 도시인데 1853년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Eugene Haussmann)이 센 강 지사로 취임하면서 파리 개조사업을 시작한다. 넓은 직선대로와 방사선 도로로 각 구역을 나누고 도시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모두 철거하거나 밀어붙이고 파리를 개조한 것이다.

그 이후 파리는 지금껏 19세기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니 그 당시 파리 개조사업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왜 파리 개혁이 프랑스의 근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가늠된다. 아무튼 이런저런 역사적인 이유들까지 포함하여, 파리에서 뜨면(?) 전 세계적으로 뜰 수 있는 가능성은 여느 도시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다. 더군다나, 파리는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패션의 도시 등 다양하게 불리지 않는가?

a 산책자 천천히 갤러기 골목을 걷는 산책자, 천천히 걷는 자에게 도시는 선물을 준다.

산책자 천천히 갤러기 골목을 걷는 산책자, 천천히 걷는 자에게 도시는 선물을 준다. ⓒ 김민수


국립미술학교를 지나 보자르 건너편으로 갤러리 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작고 큰 갤러리에는 낯익은 작가들과 이제 막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꿈이요,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마쳤다는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이기도 할 것이다.

'그곳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만큼의 사진을 나는 찍을 수 있을까?'

요원한 꿈이긴 하지만,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니 개꿈인들 어떠리.

a 의류가게 이런 와이셔츠를 입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화사한 와이셔츠들의 진열 역시도 갤러리를 보는 듯하다.

의류가게 이런 와이셔츠를 입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화사한 와이셔츠들의 진열 역시도 갤러리를 보는 듯하다. ⓒ 김민수


갤러리 골목과 이어진 골목에는 먹자골목과 작은 가게들이 있다. 살펴보니 어느 가게든지 진열에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똑같은 제품도 어떻게 진열을 하고, 어떤 조명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보였다.

그곳에서 아주 파격적인(?) 디자인의 와이셔츠를 진열한 매장을 만났다. 과연 나는 저 옷을 소화할 수 있을까? 저 평범하지 않은 옷을 나는 입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없었다. 아이쇼핑만 하고 돌아섰지만, '그래도 나는 입을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은 떨쳐버리질 못했다.

a 거리서점 서점 앞 거리에 다양한 책들이 진열되어있다. 거리에 나온 책들은 오히려 유명작가의 책들이었다. 살가두의 '제네시스'라는 책도 만날 수 있었다.

거리서점 서점 앞 거리에 다양한 책들이 진열되어있다. 거리에 나온 책들은 오히려 유명작가의 책들이었다. 살가두의 '제네시스'라는 책도 만날 수 있었다. ⓒ 김민수


조금 더 걸으니 서점 앞에 다양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거리에 진열되는 상품들은 덤핑상품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덤핑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유명작가들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사진집 중에는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천지창조>도 눈에 띄었고,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집도 보였다. 그리고 낯익은 화가들의 작품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마도 짐에 대한 부담만 없었더라면 책도 쳧 권 구입했을 것이다. 여행길은 가벼워야 한다. 그것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준비를 철저하게 한답시고, 필요없는 것들까지도 캐리어에 공간이 남았다고 넣어온 것이다. 빈 공간이 있어야, 선물을 사든 뭐든 사서 넣을 곳이 있을 것 아닌가?

'게으른 산책가의 도시' 파리에서, 나는 난해한 예술가 NOJNOMA를 만났다. 좋은 아이디어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만일, 대한민국에서 그런 예술행위를 반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득, '선영아, 사랑해' 하는 현수막으로 대히트를 쳤던 광고를 떠올렸지만, 아마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도 제재받는 나라에서 나라에서 불법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파리 #NOJNOMA #생제르맹 #에콜 데 보자르 #레 두 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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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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