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묘에서 학춤 추면 애인 생겨? 직접 해봤다"

[할많하않?할많하! ⑤] 비연애인구 전용 잡지 계간 <홀로> 편집장 짐송씨

등록 2015.12.25 20:23수정 2015.12.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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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의 절망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넘쳐납니다. 청년들이 참 할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뭘 아느냐', '사회문제에 신경 끄고 네 앞가림이나 해라'라는 '꼰대'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할많하않', 이 신조어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입니다. '할많하않'이 아닌, 할 말이 많으니 하겠다는 청년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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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무정형, 비연애인구 전용 계간<홀로> 전방위, 무정형, 비연애인구 전용 계간<홀로>. 2013년 2월 14일 첫 발행한 계간 <홀로>는 올 8월까지 총 7권 발행됐다. 독립출판물치고 장수한 편이다. ⓒ 김예지


24일 저녁 : 수면제를 먹는다.
25일 : Full 수면
26일 아침 : 눈을 떴다. "잘 잤다"

SNS 유머 페이지에 떠도는 '크리스마스 계획' 내용이다. 게시물 밑에는 친구를 태그한 댓글로 가득하다. '이거 네 얘기 아니냐?'고 묻거나, '울지 말라'고 다독이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영화 <나 홀로 집에>(1991)가 개봉한 지도 어언 24년이 지났건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주인공 '케빈'은 여전히 수많은 솔로들의 '감정적 동지'로 소환된다. 건조하게 표현해 그저 '종교적 기념일'일 뿐인 크리스마스에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것, 그중에서도 애인이 없다는 건 슬프고 부끄러운 일로 여겨진다. '커플=위너, 솔로=루저'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공식은 특별한 날이면 더욱 자주 언급된다.

여기, 크리스마스는 "세계 4대 성인의 탄신일"이고, "어르신 생일에 시끄럽게 하는 거 아니"라며 밖에 나가는 대신 집에서 미역국을 먹으라고 권하는 잡지가 있다. 전방위, 무정형, 비연애인구 전용 잡지 계간 <홀로>다.

솔로가 '정신 승리'하려고 장난으로 만든 잡지냐고? 아니다. <홀로>는 지난 2013년 2월 14일부터 발행한 독립 잡지다. 소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모아, 매호마다 300~500부를 배포한다. 무가지로 시작한 잡지지만, 올 8월엔 유가지로 전환해 7호를 선보였다. 독립출판물치고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축에 속한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홀로> 편집장 짐송(필명, 27)씨를 마주했다.

"연애하지 않는 것, 누구나 경험하는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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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홀로> 편집장 짐송씨 짐송씨는 "비연애는 모두가 체험하는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이렇게까지 부정당하는 것이 이상했다"며 <홀로>를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 김예지


"이 잡지는 '비연애주의가 뭐 어떠냐'고 물을 뿐이에요."


짐송씨의 말처럼, <홀로>는 비연애 상태의 우월함을 주장하지도, 연애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간 홍수처럼 흘러넘쳤던 연애 담론에 묻혀 가시화되지 못한 '연애하지 않을 자유'와 '선택하지 않는 선택'에 대해 신나게 떠든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글에선 "아직도 케빈이 크리스마스 친구 넘버원인 줄 아느냐"며 장난스럽게 말하다가도, 크리스마스의 자본주의적 속성과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오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고찰한다. 겉보기엔 가십과 흥미 위주의 잡지로 보이지만, 그 속은 꽤나 진지하다.

"비연애는 다른 소수성과 달리 누구나 체험하거든요. 365일 내내 연애하는 사람이 없고, 태어나자마자 연애를 하진 않잖아요. 모두가 체험하는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이렇게까지 부정당하는 것이 이상했어요."

한 대만 여성이 결혼을 강요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홀로 결혼식을 올렸을 때도, 어느 할머니가 '모태솔로'로 산 것이 최장수의 비결이라고 밝혔을 때도 사람들은 비아냥거리기만 했다. 이들의 소식을 전한 기사엔 '혼자 결혼해주어 고맙다', '할머니, 울지 말고 말해 보세요' 따위의 댓글이 달렸다. 짐송씨는 이런 시선이 불편했다. 그가 자신의 노동력과 돈을 들여 <홀로>를 만들게 된 배경이다.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문제로 진단으로 하고 이상하게 봐요. 친구들도 '졸업하기 전에 남자친구 봐야 한다', '너는 연애를 하기 위한 노력을 안 한다', '눈이 너무 높다'고 말하고요. 저는 왜 저의 사적인 문제들을 지적 받고, 오픈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25세가 지나도록 모태솔로면 학이 된다, 지구가 망한다'는 얘기들도 그렇고.(웃음)"

실제 2013년 5월에 발행한 <홀로> 2호에선, 짐송씨가 직접 '장희빈 묘에 가서 조공을 바치고 학춤을 추면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을 검증했다. 관광객들의 시선을 무릅쓰고 춤을 췄지만, '애인은커녕 애인될 만한 인간의 머리터럭'도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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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홀로> 편집진이 '장희빈묘에 조공을 바친 뒤 학춤을 추면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을 검증(?)하는 현장. ⓒ 계간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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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홀로> 편집진이 '장희빈묘에 조공을 바친 뒤 학춤을 추면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을 검증(?)하는 현장. ⓒ 계간 <홀로>


이처럼, <홀로>는 유쾌한 방식으로 '연애를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만드는' 사회에 반기를 든다. 비록 한글 2010 프로그램으로 디자인 해, '미적 감각이 개화기에 멈춰 있는' 잡지지만 그래서 오히려 부담이 덜하다. 어딘가 모르게 어설픈 디자인과 B급 감성이 녹아있는 <홀로>를 보다 보면, 짐송씨가 만들어낸 '비연애'와 '홀로', '짝꿍'이라는 단어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외국처럼 '싱글'이나 '솔로'와 같은 표현이 없어서 '비연애인구', '홀로'라는 말을 억지로 쓰고 있어요. 의도적으로 개념상의 낯설음을 느끼게 하려는 거죠. '커플' 대신 '짝꿍'이란 말을 쓰는 건, 꼭 사랑에 근거하지 않는 관계라도 함께 살거나 공동체를 꾸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거고요."

좁은 '연애'의 개념을 넘어서, 다양한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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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모태솔로'면 학이 된다? 계간 <홀로> 7호의 첫 페이지. 우리나라엔 연애에 관한 엉뚱한 속설들이 많다. 짐송씨는 2013년 봄, 직접 '장희빈 묘에 가서 조공을 바치고 학춤을 추면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을 검증하기도 했다. ⓒ 김예지


'홀로', '짝꿍'이라는 단어에 대한 열린 해석만큼이나, <홀로>가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다. 발행 초기엔 비연애인구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젠 '남녀 간의 독점적 관계'로 한정하는 좁은 '연애'의 개념을 넘어선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말한다. 비혼, 동성애, 다자연애(폴리아모리), 무성애 등도 <홀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이를 위해 짐송씨는 직접 인터넷을 통해 여러 필진을 섭외하고, 기고문을 받는다.

"누군가에게는 '연애 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에겐 그 연애를 제한해요. 장애인이나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연애가 있고, 그것에 맞추도록 강제하는 거예요. 그 이데올로기 자체를 거부하고, 비연애인구들끼리 연대하고, 존재를 인지하고, 존중하면서 내용을 확장하는 중이에요."

<홀로>는 기존의 연애와 로맨스에 대한 편견과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최근호에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7호엔 4편의 데이트 폭력 경험담이 실렸다.

"연애가 대체 무엇이 길래 엄연한 폭력을 은폐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전치시키는 로맨스가 힘이 세요. 옛날엔 강간 사건이 나면, 판사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결혼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사랑이 가지고 있는 신화 같은 것을 탈피해야 해요.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연애는 의외로 '극한 체험'일 수 있어요. 이런 얘기도 나오잖아요. '때리지 않을까, 몰카를 찍어서 공개하지 않을까 무섭다'고. 여성들이 안전한 연애와 이별에 대해 계속 걱정을 하게 되는 거죠."

짐송씨는 "데이트 폭력이나 여성혐오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았다"며, "이제야 운동성 가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그는 '비연애'라는 개념 또한 "계속 사람들 눈에 걸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연애라는 개념을 인지하게 만든 것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를 깊이 있게 끌어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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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과 잔여가 아닌, 나와 당신의 그 자체" "미완과 잔여가 아닌, 나와 당신의 그 자체". 홀로는 안쓰럽거나 불쌍한 상태가 아니다. 그저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자유이자 선택일 뿐. ⓒ 김예지


<홀로> 8호는 2016년 2월 14일 나올 예정이다. 딱 3주년 호다. 짐송씨는 "아직 필진을 섭외하는 중"이라고했다. 그러면서도 "인상 깊은 코너가 무엇이었는지 조사하고, 잡지 변천사를 다루거나 셀프 시상식 코너를 만들고 싶다"며 아이디어를 늘어놓았다. "3호부터는 독자들에게 멱살 잡혀가듯 만들었다"며 농담을 던졌지만, 그도 <홀로>를 만드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점점 관심사가 확장이 되면서 그만둘 수 없게 됐어요. 독자들이 있잖아요. 함께 손을 잡고 가는 기분이에요. 좋게 말하자면, 연대?"
#계간홀로 #홀로 #크리스마스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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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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