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게시판-Food, Hospitality, Tourism, Events 4개 학과로 구분되어 있다
정성화
제일 먼저 만난 학교 게시판에는 근무시간과 급여가 적혀 있는 구인메모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고, 한쪽에는 학과별 교수진 및 스탭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각종 행사 및 쉐프대회에 대한 포스터, 우수한 성적을 거둔 졸업생들의 수상 내역과 사진도 액자에 전시되어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강의실과 요리 실습실이 번갈아 나타났다. 복도를 따라 걸어 가며 학생들이 요리를 하는 모습, 강의를 듣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드디어 큰애를 찾았다.
극장식으로 뒤쪽이 높은 강의실의 맨 끝에 큰애가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서는 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눈이 마주치기 직전에 본 큰애의 모습은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강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이 신음처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흘러 나왔다.
큰애를 기다리면서 현지 선생님과 학생 그룹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국적인 그룹의 학생들이 야외 미팅 약속을 하는 건지 즐겁게 웃으며 떠들면서 뭔가를 서로 확인했다.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려 했지만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도 오랜 기간 영어공부를 해왔지만 다른 많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말하기·듣기에 약하다. 그런데 호주 특유의 액센트가 섞인 영어는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투데이'를 '투다이'로 발음하고…, 대충 뭐 그런 식이다.
큰애는 나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 고등학교까지 별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서 배운, 속칭 스트리트 영어가 강의를 듣는 데 도움이 될까? 밥 사먹고, 물건 사고, 트램 타는 정도의 영어수준인 것 같은데, 호주인의 속도로 진행되는 영어 강의를 얼마나 알아 들을 수 있을까? 어학원에서 몇 달간 영어공부를 한 수준으로 강의를 소화할 수 있을까?
큰애가 고등학교 때, 또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겪었던 상황, 강단에서는 흘러 나오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2월 9일 입학을 했으니까 이제 겨우 일주일 경과한 시점이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한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이어지는 질문을 뒤로 하고, 나는 복잡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아내와 작은애가 기다리는 학생 휴게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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