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벨라루스 아줌마 나타샤의 "스파시바!"

다문화 교실의 행복 바이러스, 나타샤 아줌마

등록 2015.12.28 17:39수정 2015.12.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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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나타샤의 두 아들 현수와 현준이 ⓒ 김혜원


"선생님, 스파시바. 고마워요. 현준이가 학교에 가겠다고 했어요. 정말 잘 됐어요."


나타샤의 목소리는 유쾌하고 즐거운, 하이톤의 '솔'이다. 오늘도 그녀는 특유의 통통 튀는 하이톤으로 인사한다. 걱정하던 큰아들 현준이(중학교 2학년)의 학교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현준이 엄마 나타샤(51, 바시레브스카야 나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의 고향은 벨라루스다. 다문화센터 한국어 교실에서 나타샤를 처음 만났을 때 벨라루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보다 나타샤에게 벨라루스를 먼저 배웠던 기억이 난다.

"벨로루시 아니고 벨라루~스. 벨라루스는 하얀(백) 러시아라는 뜻이에요. 폴란드, 리투아니아 같은 동유럽이 바로 옆 나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피부도 하얀 편이에요. 우리는 러시아말도 쓰고 벨라루스 말도 사용해요."

나타샤는 동갑내기 한국 남편과 결혼한 지 16년이 됐고, 잘 생긴 현준이(15), 현수(9) 두 아들을 뒀다. 비록 한국말이 서툴고 갈색 머리카락에 흰 피부를 가졌지만 누가 뭐래도 한국 아줌마다.

"내가 살았던 고향 마을은 빌리지 볼쉐빅인데 민스크(벨라루스 수도)에서 50km 떨어진 시골이에요. 나무와 꽃이 많아서 공기가 좋고 아름다운 호수와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곳이에요. 우리 동네에는 소련 시대부터 닭 가공 공장이 있었어요. 마을 사람 대부분이 닭 공장에서 일했지요. 우리 아버지는 그 닭 공장에서 40년을 일한 수의사예요. 엄마는 과학 선생님이셨는데 오빠와 저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항상 공부 많이 해야 한다고 가르쳤거든요."


나타샤는 그런 엄마의 노력 덕분에 수도 민스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녀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 소련이 붕괴됐고, 벨라루스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장들이 문을 닫으니까 실업자들이 많이 생겼어요. 1990년 소련이 무너지고 외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미국 문화가 밀려 들어왔어요. 그전까지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였는데 갑자기 자유연애, 프리섹스, 그런 문화가 막 퍼졌어요. 배급이 사라지고 일자리가 없어지니까 보통 사람들의 살림은 더 어려워졌고 많은 가정들이 파탄을 맞았어요. 이혼이 유행처럼 많았어요."

큰 결심... 한국으로 떠난 나타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나타샤 ⓒ 김혜원


국가적 혼란은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회적 약자층에 속한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시기. 스무살의 나타샤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저는 다른 나라의 문화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대학에서도 많은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활동들을 했어요. 그러다가 학교 앞에 생긴 한국문화원을 알게 됐고, 거기서 한국문화를 배우고, 한국 사람들과 친구가 되면서 한국을 좋아하게 됐어요."

개방적인 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던 나타샤가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가족이 해체되기 시작했던 당시 벨라루스 사회에서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며 '효'와 '예절'을 강조하는 한국문화는 오히려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한국문화원에 다니며 좋은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며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선생님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었는데 가정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자녀들에게도 너무 친절하고 집안일과 육아도 함께하고요. 나도 저런 가정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타샤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대학 입학 후 10년간이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보람있는 봉사활동을 하며 많은 친구들을 사귄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다.

"제가 결혼했던 때만 해도 벨라루스의 결혼 적령기는 21살이나 22살이었어요. 저는 27살이었으니까 '노처녀'였지요. 결혼 적령기 남녀의 비율이 1:3으로 여자가 많다 보니 비슷한 또래의 벨라루스 남자와는 결혼을 하기 어려웠고요. 그러다 한국문화원에서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을 주선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소련 시절에는 국제결혼이 허용되지 않았었거든요."

나타샤는 큰 결심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남편의 사진을 보고 결혼을 결심하고 편지와 전화로 친해진 뒤 급기야 결혼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잘생겼지만 무뚝뚝한 남편, 처음엔 사이 안 좋았지만..."

아빠도 현준이도 강아지를 좋아한다. ⓒ 김혜원


"남편은 잘생긴 사람이지만 무뚝뚝한 편이에요. 착하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 아버지도 남편처럼 말이 없고 무서운 사람이에요. 남편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처음엔 서로 성격이 달라 어려웠어요. 한국말을 못해서 답답하고 우울증도 심했어요. 하지만 이제 달라졌어요. 우리 현준이랑 현수 때문에 노력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현준이는 벌써 커버려서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좀 더 일찍 한국말도 배우고 노력했으면 현준이가 지금처럼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많이 미안해요."

나타샤는 요즘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다. 현준이의 부족한 학업이나 학교 부적응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직 어린 현수를 가르치기 위해서 독서노트 쓰기 공부도 하고 있다. 지난 12월 15일에는 현준이를 데리고 홍천 해밀학교에 다녀오기도 했다. 현준이가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하고 즐겁게 학교에 다니며 자신의 꿈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것이다.

"남편은 매일 피곤해요. 대리운전을 하거든요. 해밀학교 가던 날도 그랬어요. 천안까지 대리운전을 하고 새벽 3시 넘어서 찜질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오전 6시에 일어나 씻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더라고요. 남편도 내년에는 일을 조금 줄이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겠다고 했어요. 저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다른 날은 한국어 공부를 더 하려고 해요. 남편도 저도 더 노력할 거예요. 돈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더 중요하니까요.

요즘엔 남편이 저를 많이 도와주고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많이 가져요. 남편이 현준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면 저는 좋아요. 현준이는 아직도 엄마랑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렇지만 이제 점점 좋아질 것 같아요. 돈이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이 좀 없더라도 가족끼리 따뜻한 말을 주고받고 서로를 격려해주고 사랑하고 위로해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게 하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남편도 현준이도 현수도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타샤의 또 하나의 꿈

해밀학교 입학 상담중인 현준이와 나타샤 그리고 현준이 아빠 김효성씨 ⓒ 김혜원


나타샤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늘 그리운 고향 벨라루스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것이다. 어릴 적 뛰어놀던 아름다운 고향의 산과 들, 호수와 나무, 구수한 빵냄새가 미치도록 그립고 늙으신 부모님도 너무나 보고 싶다.

"요즘 같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2009년에 현준이 현수 데리고 딱 한 번 다녀 왔어요. 아이들은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나봐요. 부모님과는 가끔 전화만 주고받는데 나이가 드셔서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요. 늘 '나타샤 보고 싶다' '우리 아기들 보고 싶다' 그러세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아내의 나라, 엄마의 나라를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들은 벨라루스를 소련에서 독립한 가난한 나라로만 알아요. 우리 아이들도 남편도 똑같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벨라루스는 참 아름다운 나라예요.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착한 사람들이 있어요. 바쁘지 않고 아주 평화롭고 조용해요.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예요. 

남편과 아이들도 그런 벨라루스를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현준이와 현수가 엄마가 벨라루스 사람이라서, 엄마가 가난한 나라에 사람이라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래서 꼭 아이들과 벨라루스에 다녀오고 싶어요."

착한 엄마, 좋은 아내, 씩씩한 엄마가 되고 싶은 나타샤. 같은 대한민국의 아줌마로서 열렬히 나타샤를 응원하고 싶다. 아프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위축되거나 소심해지지 말고 처음 한국에 올 때처럼 강하고 씩씩하게,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응원한다. 또 다가오는 새해에는 나타샤가 기도하는 모든 꿈이 이뤄질 수 있길 기도한다.
#다문화가정 #벨라루스 #해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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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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