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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6일은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고공농성 200일,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등록 2015.12.25 20:21수정 2015.12.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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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3월 29일이 되면 몸이 아팠다. 고통은 몸이 기억한다고 했던가, 2001년 그날의 고통이 되풀이 되어왔다.

그 날은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목동전화국을 점거한 날이었다. 한국통신에서 무자비하게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를 향해 '비정규직의 고통'을 호소한 날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특공대에 밀려 옥상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은 경찰 화이바만 까맣게 보이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립감에 고통스러워 하고, 외로워 했다. 하얀 눈발은 뿌옇게 흩날리는데 그 아래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특공대에 진압당해서 내려오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을 보며 '비정규직'에 대해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비정규직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참으로 많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고, 더 많은 이들이 이 싸움에 진심으로 연대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실제로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만들면서도 '비정규직을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조중동과 소위 '전문가'들조차도 '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위해서' 노동법 개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지경이니, 이제는 정말 모두가 비정규직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외롭지 않게 된 것일까?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해결되고 있는가?

15년 전 그들처럼, 여전히 고립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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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국가인권위원회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 지난 6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정명 대의원과 한규협 정책부장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 올라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그렇게 말만 무성한 저 뒤 켠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여전히 목동전화국 옥상처럼 높은 곳에서 고립된 채 고통을 호소한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정명·한규협 동지는 '대법원의 판결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며 서울 시청 앞 광고탑에서 200일 가까운 날들을 싸우고 있다. 여의도 광고탑에서는 풀무원 화물노동자인 연제복·유인종 동지가 추위와 싸우며 호소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아니지만 불안정한 노동의 고통을 호소하며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는 생탁 노동자 송복남과 택시노동자 심정보 동지가, 그리고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구로공장 옥상 철탑에는 신애자·구자현 동지가 세상을 향해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도 아프다. 아직도 외롭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거대한 정부와 자본과 싸움에서 졌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졌고 노동조합 깃발을 내렸다. 그렇게 패배한 것은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함께 싸우지 못한 우리 노동운동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 함께하지 못했기에 우리 사회는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 되었고, 한해 130만명이 기업 경영상의 이유로 쫓겨나고 있다.

이제 정부는 일반해고도 자유롭게 하고, 기간제와 파견제를 개악하여 비정규직을 더 늘리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해고 당해서 생존이 어려운 노동자들은 친지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고, 불안 가득한 사회에서 모두들 비겁하게 눈치를 보며 생존에 골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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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노동개악 저지, 공안탄압 저지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대회'. ⓒ 권우성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15년 전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에게는 많은 이들이 화답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답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고, '비정규직을 위하는 척' 하는 기업과 정부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행동으로 함께할 것이라고 우리는 약속할 수 있다.

지금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함께하는 것은 단지 그 개인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비정규직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는 것이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점점 늘려나가서 대중적인 힘으로 꼭 이기자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오는 26일 기아자동차 고공농성 200일이 되는 날, 오후 2시에 서울 한남동에서 행진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풀무원 고공농성장을 거쳐 국회 앞으로, 그리고 다시 시청으로 모인다. 그곳에서 우리는 밤새 울고 웃으며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곳에 더 많은 이들이 왔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수백만 노동자들이 모일 때, 지난 10여 년간 시달렸던 뼈에 새겨진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오는 26일에 모두 만나고 싶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기아차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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