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중단 예고에도 위기감 못느끼는 이유

정부, 관계 기관에 "이용 불편없게 하겠다" 공문 보내... 실제로는 지자체, 교육청 압박

등록 2015.12.25 16:01수정 2015.12.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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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놀이수업을 하고 있는 누리과정 어린이들 ⓒ 이민선


누리과정(만3~5세) 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보육 대란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어린이집 운영자나 학부모는 아직 위기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유를 알아보니 보건복지부가 지난 11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어린이집에 보낸 한 장의 공문 때문이었다.

24일 오후 누리과정 지원 중단 위기로 인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부모들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에 있는 어린이집 한 곳과 유치원 한 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원장 A씨로부터 "불안하지 않다. 그건 학부모도 마찬가지"라는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됐다.

이유를 캐물으니 A 원장은 공문을 한 장 보여줬다. "누리과정 보육료는 관계 법령에 따라 반드시 지급되어야 하는 예산이므로 관계부처 등과 협의하여 어린이집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이 내용을 학부모에게 안내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A 원장은 학부모에게 이 공문과 함께 "무상보육은 대통령의 공약사항입니다. 그러기에 누리과정 교육비는 다 지원됩니다"라는 제목의 안내문을 가정 통신문으로 만들어 학부모에게 보냈다. 학부모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였다.

이와 함께 A원장은 "작년에도 이러다가 결국엔 줬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동요하지 않는다. 주려니 하는 것"이라며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위기감을 무디게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유치원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 B 원장 역시 "작년에도 이랬는데 결국은 없던 예산 만들어서 누리과정 진행했다. 그래서 별로 불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부 '대화' 대신 '압박'..."정부가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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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누리과정 어린이들 ⓒ 이민선


정부가 학부모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방법은 '지방정부와 교육청 압박'이다. 보건복지부가 보낸 공문의 '관계부처 등과의 협의'도 실제로는 '협의'가 아니라 압박 성격이 강하다.

교육감들은 "재정이 열악해 누리과정 예산 떠안기가 불가능하고, 대통령 공약이니 정부 사업인데 재원도 주지 않고 지원하라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며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했다. 급기야 23일에는 대통령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듣겠다며 공개적으로 면담까지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대화 대신 압박을 택했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시도 교육감을 대법원에 제소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압박에 들어갔다.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고 대신 시·도 교육청에 주는 법정 전출금에서 그만큼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시·군 교육청의 격한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어린이집 A 원장은 "싸움하는 거로 보인다. 매년 이럴 거면 차라리 지원하지 않는 게 더 낫겠다"라고 정부와 교육청을 싸잡아 힐난했다. 그러나 '누구 책임이 더 커 보이느냐?'고 묻자 "정부가 약속했으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돈 주고 하든지 돈 없으면 하지 말든지"라며 정부 책임을 강조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B 원장도 "힘겨루기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라며 정부와 교육청을 모두 비판했다. 그러나 '누구 책임이 더 커 보이느냐?'는 질문에는 "대통령 공약이든 정당 공약이든 그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국가가 한 약속이니 지키기만 하면 된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내년 1월 보육 대란이 예상되는 이유는 정부와 시·도 교육청, 지방의회 대립이 점점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방 교육재정으로 누리과정을 지원하도록 압박하자 시·군 교육청은 예산을 아예 세우지 않는 것으로 맞섰다. 현재 서울·광주·전남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강원·전북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세우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도 역시 어린이집·유치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을 비롯한 특별한 대책이 며칠 내로 마련되지 않으면 내년 1월 보육 대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누리과정 #보육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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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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