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길' 본 아이들, 집에 안 가려 해요

[서울'혁신'시, 무엇이 달라졌나⑨] 남산 '재미로'

등록 2015.12.29 17:10수정 2016.01.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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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의 만화의 길 '재미로'. 450m 길이의 길 양편으로 만화 캐릭터와 조형물이 배치돼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 서울시제공


라바가, 뽀로로가, 고래가 유혹하네~

"앗, 라바다. 저기 뽀로로도 있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칭얼대며 길을 올라가던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눈 앞엔 라바가 긴 혀를 내밀어 인사하고, 뽀로로가 손짓한다. 고래가 헤엄치고, 코끼리가 몸을 흔들고 있다. 아이들이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치명적 유혹'들이다.

지난 22일 오후, 명동역 3번 출구 앞 작은 공원(상상공원). 마주 보이는 퍼시픽 호텔을 끼고 왼쪽으로 들어서면 만화의 길 '재미로'가 시작된다.

재미로는 서울시가 '만화 한류의 본산'을 목표로 지난 2013년부터 조성하고 있는 만화의 길이다. 행인들 사이에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듣는 게 어렵지 않을 만큼 외국인들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본전을 뽑으려면 이리저리 눈을 잘 굴려야 한다. 도처에 낯익은 만화 캐릭터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건물 벽에서, 상점 간판, 지붕에서 '로봇 찌빠' '달려라 하니' '무대리'가 막 튀어나온다.

낡고 녹슬어 보기 흉했던 벽을 새로 칠하고, 간판을 바꾼 뒤 그 위에 산뜻한 만화를 그려넣어 거리가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다.


건물주들이 처음엔 '멀쩡한' 건물에 만화를 그린다는 것을 좀체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네가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이제는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서울시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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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입구에 설치된 타요버스 승차대.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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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 만화 캐릭터 조형물. ⓒ 서울시제공


'재미로'를 재미있게 만드는 포인트들

폭 6-8m, 길이 450m의 재미로에는 곳곳에 아기자기한 재미요소가 숨어있지만, 빼놓지 말아야 할 포인트들이 있다.

첫 번째 포인트는 '명동역'. 이 역 승강장 기둥과 벽면, 바닥에는 '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 캐릭터 대형 이미지 33장이 붙어있어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비어있던 공간에 광고 대신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고민하다가 만화를 설치하게 됐다는 심재우 서울메트로 명동역장은 "한번 뽀로로에 눈이 꽂힌 어린이들이 자리를 뜨려하지 않아 부모들이 애를 먹는다"며 뿌듯해했다.

3번 출구 밖으로 나오면 '꼬마버스 타요'를 형상화한 타요버스 승차대를 만날 수 있다. 진짜 타요버스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승차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기해 한다.

두 번째는 만화 박물관 '재미랑'. 재미로의 핵심 포인트다. 지난 10월부터 이 건물 지하 1층에서는 '만화왕국'으로 불리는 일본 돗토리현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아오야마 고쇼의 '명탐정 코난'부터 미즈키 시게루의 '게게게노 기타로',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살' 등 만화 덕후들이 알만한 작품들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다.

1층의 캐릭터 판매숍을 거쳐 3층엔 만화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작업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웹툰작가 지망생 김지연양(숭의여대 1년)은 "학교에서도 가깝고, 프린터와 각종 전문자료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4층에는 1800권의 만화를 볼 수 있는 다락방도 있다. 물론 전부 무료다. 재미랑에는 올 한해 5만여 명이 찾았다.

지난 6월에는 전래동화속의 남산 도깨비 '사쿤'의 캐릭터숍인 '재미랑 2호'를 인근에 열었다. 민간기업이 운영하지만 매출의 10%는 재미로 사업에 재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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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에 위치한 한 무역회사 건물에 그려진 만화 벽화.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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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의 한 편의점에 새겨진 만화 벽화. ⓒ 서울시제공


샛길로 들어서면 <로봇찌빠><요철발명왕>이 기다려

세 번째는 재미로 끝 '만화의 언덕'. 밤이 되면 이현세, 허영만, 황미나 등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만화사를 빛냈던 만화가들이 창조한 캐릭터들이 화려하게 켜진다.

네 번째는 재미로를 완전히 빠져나오면 마주치게 되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다. 과거 일제 강점기땐 총독부, 조선신궁 등이, 군사독재시절엔 중앙정보부가 들어섰던 음울한 자리였으나 이젠 아이들을 위한 시설로 탈바꿈했다.

만화도서관도 많이 찾지만 점토 놀이, 캐리커처 제작, 인형만들기,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제작 등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꺼리가 많아 눈요기에 지친 아이들의 놀이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다.

큰길을 걷다 지치면 샛길로 들어가보는 것도 좋다. 재미랑 2호점 건너편 골목엔 사랑, 행복, 희망, 위로, 용기를 상징하는 5개 동물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건물들이 잇달아 있는 '도로도로골목', 60-70년대의 거리를 만화로 재현한 듯한 '과거여행길', <심술통> 이정문·<고인돌> 박수동·<로봇찌빠> 신문수·<요철발명왕> 윤승원 등 한국 명랑만화를 대표하는 만화가 4인의 만화가 그려진 '명랑골목길' 등이 이어진다.

지난 10월 코스프레, 거리공연 등을 중심으로 열렸던 할로윈 축제에는 이틀간 2만여 명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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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명랑골목길'에 그려진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서당' 만화.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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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명랑골목길'에 그려진 이정문 화백의 <철인 강타우> 만화. ⓒ 서울시제공


명동 관광객 유도, 창작자 입주 등 과제... "내년이 중요"

서울시 관계자들은 '아직 시작'일 뿐임을 강조한다. 지금까지는 위에서 아래로 마중물을 부어왔으나, 이제 2년 정도 지난만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아래로부터 위로 솟구쳐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조형물 위주의 '보는 관광'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창작자들을 입주시켜서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체험하는 '체험 관광' 위주로 전환시킬 계획이다. 시는 향후 3년간 150개의 콘텐츠 기업을 남산에 유치한다는 목표다.

시는 이를 위해 내년부터 재미로의 운영을 관련 네트워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서울산업진흥원(SBA)에 전담시킬 예정이다.

강인철 서울시 게임애니팀 팀장은 "만화 콘텐츠를 더욱 확충하고 서비스를 개선해 명동 관광객들이 이곳을 함께 찾도록 하는 게 과제"라며 "내년이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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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재미로 관광 포인트 ⓒ 고정미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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