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당신에게

세월호 그리고 단원고 아이들 시선으로 쓴 육성 생일시 모음 <엄마. 나야.>

등록 2016.01.03 10:30수정 2016.01.03 10:30
4
원고료로 응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어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모임을 갖는 안산 치유공간 ‘이웃’의 탁 트인 마루. 유가족과 이웃들이 밥을 먹고, 뜨개질을 하고, 한방치료를 하면서 간담회도 하고 상담실에서 개별 상담도 한다. ⓒ 치유공간 이웃


"아이들 부모님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인이 꿈에라도 자기 아이가 나왔다고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생일시'에서 그 메시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부모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 단원고 아이들의 육성 생일시 모음 <엄마. 나야.> 일러두기 중에서

다시 책을 듭니다. 그런데 진도를 못 나갑니다. 책이 두꺼워서거나 난해한 문체 때문이 아닙니다. 세월호 엄마 아빠들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으며 경험한, 그 아픔 때문입니다. 마음을 추스르려 들숨과 날숨을 깊게 이어갑니다. 흐트러진 마음으로 책을 감내하기에는 적지 않은 힘듦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책을 덮습니다. 수인이와 태민이를 만나고 4월 2일에 태어난 2학년 10반 지혜에 이르러 호흡이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흔들리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지혜를 기억합니다. 불 끈 방에 누워 엄마와 친구에 학교 얘기로 수다 삼매경을 떨다 엄마가 잠든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갔던 딸.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인 4월 16일에 전화하겠다고 약속하며 떠난 제주도 뱃길. 그 약속을 영원히 지키지 못하게 된 아이가 시인을 통해 그리운 목소리로 전합니다. 

"엄마 지혜 소원 있어 / 엄마 아빠 팔짱 끼고 다니라 하면 / 부끄러움 많은 우리 엄마 아빠 놀라실 테니 /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손잡고 30분 산책하기 / 용기가 안 나면 날 깜깜해지면 그렇게 하기 / 지혜 위해 그렇게 해주기" (시인 이원이 받아 적은 '따뜻해졌어 지혜' 중에서)

'그리운 목소리로 아이들이 말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시인들이 받아 적다'는 부제가 붙은 시집, <엄마. 나야.>입니다. 책은 일러두기(intro)에서 안산 와동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동고동락하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생일모임을 한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임을 밝힙니다. 그래서일까. 책에는 '이웃'의 식구들과 아이들 그리고 시를 읽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천상의 아이와 뭍의 시인이 빚은 사랑과 청춘의 변주곡

치유공간 ‘이웃’에서 열린 단원고 아이들의 생일모임에 참여한 이웃들이 전시되어 있는 생일모임 주인공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 치유공간 이웃


서른네 명의 천상의 목소리는 생전에 못 다한 사랑을 엄마에게 속삭이고 싶습니다. 밤하늘의 별빛만큼 푸르렀던 청춘의 속내를 아빠에게 털어놓고 싶습니다. 땅위의 시인 서른네 명이 엄마의 회상에서 아이를 만나고, 아빠의 회한을 통해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친구의 추억에서 아이의 청춘을 듣고는 이내 아이의 목소리를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 아이가 전하고픈 사랑과 청춘의 변주곡을 담아냈습니다.


알뜰한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준 용돈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학교까지 걸었습니다. 아이가 떠난 후, 엄마는 애간장을 녹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해 5월 4일 진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아들의 휴대전화 카톡으로 '엄마, 지금 다시 내려가니까 꼭 만나자'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들은 이튿날인 5일,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2월 27일에 태어난 단원고 2학년 6반 동영이입니다.


"난 엄마랑 수다를 떠는 게 제일 즐거웠어요 / 아빠와 채영이가 질투해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 엄마가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게 제일 행복했어요 / 난 엄마의 껌딱지였잖아요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었던 / 엄마가 품어 주셔서 제가 있었던 거예요 / 그러니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 엄마 스스로 죄인이라고도 말하지 마세요" (시인 정끝별이 받아 적은 '오늘은 오늘만 우세요!' 중에서)

아이 영정 사진 속 눈 맞추면서 한 약속들

치유공간 ‘이웃’에서 자원봉사자들이 6월 4일에 태어난 단원고 고 박성호군의 생일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 치유공간 이웃


별빛 시린 겨울을 두 해째 맞은 아이들은 춥습니다. 그보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은 더 춥습니다. 불과 1년 전에 세월호 합동분향소 아이들의 영정 사진 속 눈에, 눈을 맞추며 약속했던 진실규명을 기억하세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분명해집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록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그럴 때, 비로소 얇은 옷을 걸치고 떠난 아이들은 더 이상 춥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당신의 품으로 꼬옥 껴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세월호 합동분향소 한편에는 나무로 지은 '성호의 성당'(약 4.5평)이 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사제를 꿈꿨던 단원고 2학년 5반 성호 임마누엘의 이루지 못한 꿈을 기려 목수들이 재능기부로 지은 성당입니다.

성호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작은 기도공간이기도 하지요. 지붕에는 아이가 다닌 선부동 성가정성당의 종탑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등대를 닮은 육각형 종탑이 우뚝 서 있습니다. 성당에서 살았고, 또 성당에서 자란 성호는 6월 4일에 태어났습니다.

"나의 사랑, 정혜숙 세실리아씨 / 엄마, 사랑해요 / 엄마 고마워요 / 엄마, 너무 사랑하고 고마워서, 미안해요 / 제가 미안하다는 말 했으니까 / 엄마는 이제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 하면서 울기 없기예요 / 울지 않고 씩씩하기예요" (시인 박성우가 받아 적은 '나의 사랑들에게' 중에서)

아이들의 생일모임은 울고 웃으며 다짐하는 치유

아이들의 생일모임 마지막 순서는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 생일 케이크에 불을 밝히고 있다. ⓒ 치유공간 이웃


시집은 치유공간 '이웃'의 정신과의사 정혜신과 심리기획가 이명수가 시인들에게 청해서 엮었습니다. 아이의 생일이면 아이 친구를 중심으로 엄마 아빠, 형제 등 30~40명이 '이웃'에 모여 아이에 관한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며 울고 웃습니다.

모임 말미에는 시인이 받아 적은 생일시를 함께 낭송하고, 아파하고, 다짐하고, 함께 치유합니다. 그리고 참석한 아이의 친구 등에게 시집을 생일 선물로 건네주었습니다.

'예은 아빠' 유경근씨는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에서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히는 것입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예은 아빠'는 416 가족협의회의 대변인으로, 집행위원장으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이와 나머지 세 딸에 대한 '아빠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10월 15일에 태어난 예은이는 2학년 3반입니다.

"아빠 미안 /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중략)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은 '그날 이후' 중에서)

시인들의 눈물을 씨줄로 분노를 날줄로 엮은 '엄마. 나야.'

생일모임에 참여한 친구들이 별이 된 친구의 학창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 앨범 등 추억이 깃든 갖가지 물건들을 함께 보고 있다. ⓒ 치유공간 이웃


시집을 기획하고 편집한 김민정 시인은 갈무리(outro)에서 "눈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며 "책을 만들 때 만져보니 눈물에 눈물이 겹쳐 종이(원고지)가 퉁퉁 부어버렸다"며 서른네 명의 시인들이 쏟은 '눈물'을 밝힙니다. 시인들의 눈물을 씨줄로, 분노를 날줄로 책을 만든 셈입니다.

그리고 김 시인은 이 땅의 엄마 아빠들에게 호소합니다.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게, 영원히 잊히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제 바람"이라며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아이들이 그러잖아요. '엄마. 나야.'"라고.

아이는 기도와 식도가 붙은 상태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닷새 만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지요.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응급실에 몇 번이나 실려 가 엄마 아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똑똑하고 낙천적으로 커 나사에서 우주를 연구하는 학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2월 19일에 태어난 2학년 6반 영만이의 엄마 이미경씨는 416 기억저장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억저장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로부터 올해의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내가 엄마를 많이 닮은 건 /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내가 엄마보다 아빠를 조금 덜 닮은 건 / 나에게 자랑스러운 아빠를 닮아야 할 숙제가 아직 남아서랍니다 (중략) 조금만 있으면 곧 봄날입니다 / 우리 모두가 일어설 봄날이 옵니다 / 그리고 나는 아주아주 괜찮습니다" (시인 이병률이 받아 적은 '곧 봄날입니다' 중에서)

내 새끼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당신에게 권합니다

별이 된 아이의 생일모임 후 참여했던 자원봉사자가 아이 엄마를 위로하며 꼭 껴안아주고 있다. ⓒ 치유공간 이웃


<엄마. 나야.>는 시를 쓰고 엮은 시인들만이 아니라 표지그림을 그린 화가, 디자이너, 종이, 인쇄까지 모두 재능기부로 참여해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시집의 두 배 정도 분량인데 가격은 절반입니다. 보다 많은 엄마 아빠들이 읽기를 원해서입니다. 인세도 없습니다. 다음 아이의 생일시집을 내는 데 쓰기 위해섭니다.

2015년에서 2016년으로 이어지는 지금, "엄마의 따뜻한 품과 아빠의 너른 품이 '오직, 내 것'"이라고 말하는 내 새끼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당신에게, 이 시집을 권합니다. 세월호가 지겹지 않도록, 진실규명의 목소리가 공명해 더 크게 울릴 수 있도록,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시기를 권합니다. 

검도 3단의 고수, '정 사범.' 한 인간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는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던 아이. 언론이 만든 영웅이 아닌 진짜 영웅.

뒤늦게 짝사랑을 고백한 여학생이 "1년 전부터 널 몰래 좋아했어… 그냥 몰래 바라만 봐도 행복하니까 제발 돌아와 달라"던 연서의 주인공.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5월이 되면 엄마 아빠 형과 남해 여행을 가기로 했던 아이. 12월 6일에 태어난 2학년 4반 차웅이입니다.

"날 깨끗한 겨울에 낳아준 엄마, 고마워 / 겨울이면 밤이 길어지니까 /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지는 계절 / 엄마의 막내아들 차웅이는 / 겨울이 와도 춥지 않은 곳에 와 있어 / 그리고 함께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 누구도 외롭지 않은 곳에 차웅이는 와 있어 / 그러니 엄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 아빠와 형과 함께 즐거운 생각만 하면서 지내 / 먼 훗날, 엄마 아빠 품에 안길 때까지" (시인 임경섭이 받아 적은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중에서)
#시집 <엄마. 나야.> #치유공간 이웃 #단원고 생일모임 #위안부 할머니 #금요일엔 돌아오렴

AD

AD

AD

인기기사

  1. 1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