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한겨레 기자 출신이 동장님 된 이유

[인터뷰] 전국 최초 '민간인 동장' 금천구 독산4동 황석연씨

등록 2016.01.04 07:30수정 2016.01.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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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사상 전국 최초로 동장에 임명된 황석연씨가 독산4동 주민센터 앞에 서있다.
민간인 사상 전국 최초로 동장에 임명된 황석연씨가 독산4동 주민센터 앞에 서있다.김경년


"마을에서 처음 일어나는 변화를 내 손으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시 금천구 독산4동장으로 임명된 황석연씨(49)는 이같이 소감을 말했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 임명장을 받은 황씨는 오는 4일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동장으로 임명된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황씨는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인 출신' 동장이다.

금천구(구청장 차성수)가 경직된 행정에 민간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난해 7월 민간인 동장을 공모했으나 마땅한 응모자가 없어 무산됐다가 이번에 결국 '적임자'를 찾게 된 것이다. 

민간인 동장 사업은 다른 구에서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관행상 동장은 5급 공무원 중에서 임명되는 자리였기에 당연히 노조 등 공무원 사회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 광산구가 공무원 가운데 신청을 받고 주민투표를 거쳐 동장을 뽑은 적은 있지만 민간인을 임명한 적은 없다.

황씨는 사범대 출신으로 중고교 교사를 거쳐 <조선>, <한겨레> 등 일간지 기자를 지냈으며 최근 은평구 소재 서울혁신파크의 운영위원장을 맡는 등 도시 재생과 마을 만들기에도 관심을 보여왔다. 인구 2만 2천여 명의 독산4동은 아파트 480세대 외에 대부분 다세대 빌라가 많은 만큼 마을 만들기에 적절한 곳이기도 하다.

황씨는 지난 12월 27일 동 주민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금은 지난 100년 넘게 위에서 아래로 정책을 시달하는 방식이었던 우리나라 행정이 바뀌고 있는 과정"이라며 "최일선인 주민센터에서 주민·직원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금천구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황씨는 "서울에서 외지고 낙후된 곳이란 이미지가 있는 금천구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서초구처럼 건물을 세우고 아파트값 올리는 식으로 할 수는 없다"며 "오히려 스위스, 독일 등의 '행복한' 마을들과 교류하여 마을 브랜드 향상을 꾀하는 방식을 추진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석연 동장과의 일문일답.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에는 40-50대때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이 죽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에는 40-50대때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이 죽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김경년


"주민들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기록해보고 싶다"


- 먼저 최초의 민간인 동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말해 달라.
"마을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응모를 했다. 우리나라 행정은 지난 100년 넘게 톱다운 방식으로 위에서 정책이 내려오면 직원들이 주민한테 가서 전달하는 문화였는데, 이게 바뀌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지켜보고 싶었다. 아니, 변화를 같이 만들어가고 싶었다."

- 그럼 기자 하면서 기록하면 되지 않나.
"그냥 지켜보는 것과 같이 만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앞으로 2년간 주민들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

- 독산4동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나.
"조지 베일런트라는 사람이 쓴 <행복의 조건>이란 책을 보면, 사람의 인생에서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은 40, 50대 때 친구가 많은 사람이라고 나온다. 독산4동의 40, 50대를 특화 시켜서 그 사람들이 활발하게 네트워크를 맺고, 마을에서 뿌리를 내리고, 친구를 만들어가는 그런 일에 주력하고 싶다."

- 교사, 일간지 기자, 교육사업가 등 경력이 상당히 다양하다.
"처음 사회 생활은 중고교 교사로 시작했고, 1995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1997년에 <한겨레>로 옮겨 인터넷한겨레 설립에 관여했다. 이후 교육사업에 종사하다가 서울교육청 자문을 맡아 '방과후학교'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교육감선거캠프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혁신파크의 비상근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 동장이 되면 혁신파크는 어떻게 하나.
"혁신파크는 비상근이라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동장 일과 혁신파크에서 꾸몄던 마을 관련 일들이 서로 연계된 게 많아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왜 동장을 지원했나.
"10월초 혁신파크 회의에서 금천구가 민간인 동장을 찾고 있는데 잘 안된다고 하더라. 금천구는 내가 사는 곳이라고 했더니 당신 한번 해보라고 해서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후 지인으로부터 정말 해보라고 권유 전화를 받고 고민하다 원서를 넣어봤다. 전국 최초라는 말은 오늘 처음 들었다."

- 지금까지 해온 일과 동장이라는 일은 너무 달라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집사람도 왜 그러냐고 의아해 한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필(feel)이 꽂힐 때가 있다.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혁신파크나 서울시에서 마을 관련 일을 하면서 지켜본 일들이 재밌었다. 동에 가면 그런 일을 직접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50대에 이렇게 인생이 바뀌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결정한 일은 아니다."

- 기자 경력이 동장 업무 수행에 도움 되겠나.
"기자들 하는 일이 기사의 핵심을 잡아내는 것 아닌가. 일단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핵심을 파악한 뒤 한 가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기사 쓰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마을에서는 처음 일어나는 일들을 내 손으로 기록하고 싶어” 동장 공모에 지원했다는 황석연씨.
“마을에서는 처음 일어나는 일들을 내 손으로 기록하고 싶어” 동장 공모에 지원했다는 황석연씨.김경년

"서초구처럼 건물 세우고 집값 올리는 식으론 금천구를 발전시킬 수 없다"

- 민간인 동장 탄생의 의미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
"동 행정은 대민접촉 최일선의 가장 중요한 행정 단위다. 지금까지는 위에서 지시를 받아 수행하는 형식이었지만 이제는 성격이 어느 정도 변할 때가 된 듯하다. 굳이 민간인 중에서 동장을 임명했다는 것은 어쨌든 주민의 시각에서 일 해보란 메시지 아닌가.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 주민 시각에서 일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금천구는 서울에서 외지고 낙후된 곳이란 이미지가 있다. 언론 기사에서 주로 서초구랑 비교되는데, 주로 서초구는 집값이 가장 비싸고 금천구는 가장 싸다, 서초구는 아이들 성적도 가장 높고 금천구는 가장 낮다, 심지어 평균수명도 서초구는 가장 높은 곳이고 금천구는 가장 낮은 곳이란 식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서초구처럼 건물 세우고 아파트값 올리는 식으로 해선 금천구나 독산동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본다. 내가 할 일은 그런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애정을 가지고 터를 가꿔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 그러니까 서울시와 혁신파크가 주력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연상된다.
"서울시에 한 농아부모커뮤니티가 있는데 이 분들이 스스로 수화를 배우고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런데 비싼 동네카페를 이용하거나 누군가의 집에 가서 한다. 동사무소가 그런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장소가 있는데 시민들이 잘 모른다(황씨는 최근 독산4동 주민센터에 개설된 주민모임공간 '활력소'를 예를 들었다). 동네주민들에게 이런 게 열려있다고 알려줘야 한다.

또 아파트보다 다세대 빌라가 많은 지역 특성상, 초등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동네 골목을 예쁘게 만드는 꿈' 공모 같은 걸 하고 싶다. 거리에 당선작을 걸어놓고 주민과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얘들 소원을 들어주자'고 호소하고 싶다. 기존에 동은 발주하고 업체가 와서 꾸며주고 가버렸다. 예뻐지긴 하지만 내가 한 게 아니니까 좀 지나면 다시 엉망이 되기 일쑤다. 그러나 주민들이 스스로 이뤄나간다면, 주민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해줘서 행복감을 느끼고,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내 소원을 들어줬다'는 자존감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주민들을, 동장은 직원들을 도와줘야 할 것이다."

- 직원들이 주민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동사무소 하면 증명서 떼주는 곳이란 인식이 많지 않나. 이제 많은 일이 기계화된 점도 있고, 공무원들은 더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출근하면 하루 일정한 시간은 지역에 가서 주민들을 만나 주민센터에 이런 게 있다고 알리고, 찾아오게 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행정 프로세스를 바꿔보려 한다. 문제가 잘 안 풀리면 혁신파크에 가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모셔와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공무원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안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시키려고 민간인 동장을 세운 게 아니겠나. 갈등 사례가 아닌 좋은 사례로 만드는 일을 공무원들과 즐겁게 해나가고 싶다."

"주민과 밥해먹고, 간식 만들고... 직원들을 시민단체 간사들처럼"

- 동장으로 부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첫 작업으로 주민센터에 있는 부엌에서 주민과 직원이 같이 밥을 지어먹고, 아이들 간식 만드는 엄마들을 도와주는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직원들의 행정업무가 많아 힘들면 구청장과 상의해 줄이고. 직장인이 퇴근하고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주민센터에 와서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 영화 <셸 위 댄스>의 주인공은 퇴근 후에 강습소에 가서 몰래 댄스를 배운다. 그러지 말고 주민센터에 와서 놀란 말이다. 각 프로그램의 팀장은 주민들이 하고, 직원들은 시민단체 간사처럼 주민들 사이에 들어가 행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 2년 후엔 다시 동장에 지원할 건가.
"일단 2년간 즐겁게 해볼 생각이다. 동장 맡은 것도 상상을 못했던 것처럼 그때 일은 그때 가서 봐야겠다. 중요한 건 재밌게 하는 것이다. 금천구나 독산동은 마을의 브랜드 이미지가 없어 자존감이 낮다. 내가 독산4동에 살고 금천주민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서초동과 비교하지 말고 스위스, 독일의 마을 중에 행복한 마을 찾아서 그런 마을들과 독산4동을 같은 반열에 올리는 사업들을 하려고 한다. 그런 지역 사람들을 초청도 해보고."
#민간인 동장 #황석연 #금천구 #독산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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