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과 싸우는 스님 "이 정도 저항은 있어야"

새해 맞아 지율스님과 나눈 이야기... '4대강 기록관' 추진, 봄부터 작업 들어갈 예정

등록 2016.01.03 14:40수정 2016.01.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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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하는 천성산과 낙동강 그리고 내성천을 내 몸처럼 여겨 살피고, 기록하며 늘 현장에 있는 비구니 지율(59)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새해가 되기도 해서, 지난 2일 문안 인사를 드리면서 나눈 대화다.

스님은 내원사 산감 소임을 맡았던 2001년, 천성산을 파헤치는 터널공사(경부고속철도)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환경운동에 나섰다. 그 뒤부터 스님은 줄곧 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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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12년 7월부터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변 '텐트'에서 생활하는 지율 스님. ⓒ 권우성


스님은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또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라며 3000배와 삼보일배를 하고, 2003년부터 2006년 1월까지 다섯 차례 단식농성하기도 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천성산에 있는 도롱뇽이 없다'고 하자, 스님은 '도롱뇽의 친구들'과 함께 법원에 '도롱뇽 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율 스님은 4대강사업이 시작될 무렵인 2008년 12월부터 낙동강을 여러 차례 답사하면서 사진·영상 촬영하고 기록을 남겼다. 국토교통부, 한국수자원공사, 삼성물산은 4대강 사업의 하나로 낙동강 상류인 내성천에 영주댐 공사를 벌였다.

스님은 2011년부터 영주시 평은면에 있는 내성천 강둑에 천막과 컨테이너를 설치해놓고 현장 기록 작업을 벌였다. 스님은 영주댐 공사로 사라지게 된 내성천, 그 곳곳의 아픔을 기록해 왔다.

스님이 촬영하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과 <물 위에서 쓰는 편지>가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영주댐 공사 중단 소송' 1심 판결 불복해 항소


내성천 가에 살던 지율 스님은 요즘 법원 출입이 잦다. 소송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내기 위해 다시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2월 18일 지율 스님 등 18명이 낸 '영주댐 공사 중단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영주댐 공사로 원고의 환경 이익이 수인한도를 넘을 정도로 침해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지율 스님 등은 내성천은 세계에서 드문 모래강인 데다 수달과 삵, 먹황새, 원앙 등 천연기념물 20여 종과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지라고 주장했다. 또 원고 측은 영주댐 건설 담합으로 안정성이 부족하고, 수질 오염과 모래 유실, 지하수 부족 등 생태계 파괴 우려가 크다며 소송을 냈다.

지율 스님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님은 "5년 동안 내성천을 지켜보고, 내성천 하류의 변화와 지질 변화도 생겼다"라면서 "내성천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판결문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소송은 변호사 없이 지율 스님이 '나홀로 소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여러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다"라면서 "지질분야 전문가와 생태조류조사·식생조사를 해서 자료를 내주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가 법정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법정에서 이긴다는 게 쉽지 않다. 법정에서 심리를 몇 시간 동안 할 때도 있다. 제가 공부를 많이 한다. 저희들이 만드는 기록이나 자료가 있고, 정부측에서 내놓는 자료도 있다.

환경영향평가라든지 관련 자료들을 꼼꼼하게 해야 한다. 법정 심리를 통해 그런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하나하나 잘라서 이야기 하기가 힘들고,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 지키기' 등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스님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일부 소송은 승소했다. 스님은 2008년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게재' 소송을 내, 이른바 '10원 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또 스님은 2010년 8월 언론 인터뷰와 방송 토론, 연설에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승환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원고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스님은 김종대 전 대법관과 박재완 전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 비서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졌다.

언론사 등에 대한 소송에 대해 지율 스님은 "저도 하기 싫다, 잘못된 보도를 계속하니까, 바로 잡아야 하기에 언론중재와 소송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면서 "한 언론사는 계속해서 소송을 해서 그런지, 요즘은 좀 뜸하다"라고 말했다.

리나 콜레이라이트(호주국립대 역사인류학 박사과정)씨는 지난해 9월 조계사 교육관에서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등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지율 스님의 저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소송을 통한 지율 스님의 환경운동은 국가 체제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여정이며, 이 과정에서 저항의 기록을 쌓아간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단식과 절을 통한 항의의 수단 역시 대단한 불교적이며 그 가치를 온전히 살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스님의 투쟁이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환경운동이 그러하듯 국가체제 변방에서 저항하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을 통해 법정이라는 국가 체제 속에서 정의를 실현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 이기고 지는 것을 넘어서서 소송을 통해 환경파괴에 대한 저항을 기록화하고 환경운동가들이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데어터를 축적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다."

내성천 가 천막과 컨테이너 철거당해... 수공 앞 노숙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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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12년 7월부터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변 '텐트'에서 생활하는 지율 스님. 지금 이 텐트와 컨테이너는 철거되었다. ⓒ 권우성


지율 스님이 자료를 모아놓고 거처해 왔던 내성천 가 천막과 컨테이너가 지난 12월 23일 철거당했다. 천막과 컨테이너가 영주댐 수몰지 안에 있기에, 수자원공사가 법원 결정에 따라 강제철거 집행한 것이다.

스님은 그날 밤 수자원공사 영주댐공사현장 사무소 앞에서 노숙하기도 했다. 수공 측은 컨테이너를 두더라도 수몰지 밖에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님은 "화가 난다, 수공 측은 수몰지 밖이면 컨테이너를 옮겨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땅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뒤에 들어보니까 그 사람한테 여러 군데서 전화를 해서 왜 땅을 내어주느냐고 압력 같은 걸 넣는 모양이다"라면서 "이전에도 평은면 한 마을 집에 있었는데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라고 회고했다.

스님은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내성천의 변화를 기록하려고 하니까 컨테이너라도 필요한 것"이라며 "수공 측이 컨테이너를 갖다 주겠다고 한 날까지 되지 않는다면 수공 사무소 앞에서 노숙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4대강 기록관' 추진 ... 봄부터 여러 사람 모여 작업

지율 스님은 '4대강 기록관'을 추진한다. 스님은 '땅 한 평사기 운동'을 벌여 낙동강 회룡포 쪽에 450평 규모의 땅을 확보해놨다. 기록관은 오는 봄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스님은 "기록관은 건물이다, 유형의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낙동강 등에 대한 기록을 해왔고, 그 자료들이 많다"라면서 "그런 자료를 한데 모아 놓을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리는데 기록관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가 없어도 그 자료들을 모으고 기록해야 하기에 공간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3월에 날씨가 풀리면 여러 사람의 손으로 만들 것"이라며 "4대강 사업은 끝났지만 강 옆에는 지금도 개발이 진행 중이고, 지하수 등 심각한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라면서 "여러 가지 우려했던 상황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제3, 제4의 개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동을 걸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기록관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힘든 일을 왜 혼자 하시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환경단체가 아니다. 다른 분들은 본인들의 업이 있고, 저는 이 일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직업이 있는 분들은 직접 나설 수가 없다 보니, 후원을 하면서 돕기도 한다. 그래야 건강하다. 실무자가 없다보니 제가 실무 역할을 하는 것이지 힘든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저도 편한 사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이 겪게 된다. 일반인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할 것이다. 그래도 저는 신앙인이다 보니 남보다 낫고, 이겨낼 수도 있다. 저 같은 사람도 힘든데 일반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얼마나 힘들겠나."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스님은 "건강하다"라고 답했다.

"건강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전쟁터에 나오면 아프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집에 가면 아픈 데가 많다. 현장은 늘 긴장하게 된다. 현장에 있으면 아플 여우도 없다.

제가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현장에 있는 게 아니다. 정부나 개발론자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역행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 정도 저항력은 있어야 건강한 사회 아니냐."
#지율 스님 #천성산 #낙동강 #내성천 #영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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