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주민이 만든 국수. 관객들이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많은 양을 준비하고 있다.
유순상
공연이 끝나면 소담한 국수 그릇이 별관 식당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떡볶이도 있다. 박 감독이 손맛 좋은 마을 주민에게 부탁해 마련한 간식이다. 먼 길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답례라고 한다.
연극을 본 아버지와 딸, 부부, 오래된 연인들이 국수 가락을 넘기며 감상평을 나눈다. 마음속 별점이 몇 개나 매겨졌는지 박 감독도 근처에 앉아 긴장하며 엿듣는다고 한다. 인터뷰를 위해 두 번째 방문한 날, 박 감독은 대접 가득한 국수를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비평을 좀 더 듣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잔치란 게 일방적으로 돈 내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마을 잔치를 할 때 마을 사람들이 돈도 모으고 노동력도 나눠가며 만들었잖아요. 저희 공연도 그런 잔치판과 같은 거죠."88세 노인을 무대에 세운 주민 연극제도외지인이 폐교를 빌려 문화 사업을 하다 원주민에게 쫓겨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마을 정서를 무시하고 사업을 확장하다 눈총을 받는가 하면, 사업성이 있어 보여 주민들이 오히려 폐교를 임대하는 경우도 있다. 귀촌한 사람에게는 원주민과 잘 어울려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박 감독은 해법을 연극에서 찾았다. 지난 2005년, 인근 영동군 양산면 수두리의 마을 이장이 박 감독에게 마당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체험마을을 조성하고 있었는데, 다른 마을보다 더 돋보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수두리 마을 연극제'가 탄생했다.
박 감독은 마을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구전으로 내려오는 소소한 이야기를 대본에 옮겼다. 밭에서 도망간 소를 찾느라 고생고생했는데 소가 멀쩡히 집에 와 있어 화가 나 소뿔을 부러뜨린 일, 아침에 수레에 쌀을 싣고 방앗간에 갔다가 그 돈으로 전부 술을 먹은 남편의 이야기, 육성회비를 못 줘 아이들과 다툰 이야기 등이다. 이장이 마을 주민들을 배우로 섭외하고 박 감독은 연출을 했다. 그 해 50여 가구 주민들 앞에서 공연했다. 배꼽을 잡는 사람, 민망해하는 사람 등 관객들의 반응도 볼 만했다.
"당시 나이가 최고 많은 배우가 88살 어르신이었어요. 농사지을 힘도 없으신 분이었죠. (주민 고령화로) 마을에는 60대도 거의 없었거든요.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안 해 대본을 쓰는 데 애를 먹었죠. 친해지는 시간이 꽤 걸렸어요. 그래도 공연이 잘 끝나고 호응도 좋았죠. 요즘에 마을 주민들이 다시 연극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니까요."자계예술촌은 인근 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공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방송사가 귀농과 귀촌, 산골 등 다양한 주제와 엮어 예술촌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농산물 현장 거래와 택배 판매도 늘었다. 매년 산골공연예술잔치가 열리면 자계리 부녀회가 먹거리 장터를 펼치고 잔치국수와 파전 등 식사거리를 만들어 판다. 마을 농민들이 생산한 블루베리와 곶감, 표고버섯 등 각종 특산물 장도 선다.
"우리가 알려지면서 방송에서 촬영을 많이 와요. 그런데 촬영팀들이 우리만 찍고 가나요. 동네도 촬영하고 특산물도 찍잖아요. 마을 분들은 그것 때문에 농산물 판매가 는다고 생각해 주세요. 예쁘게 봐주시는 거죠. 시골에서 의지로만 십몇 년을 어떻게 버텨요. 동네 분들이 도와주시니까 이제껏 있는 거죠."버티는 일 쉽지 않지만 '삶의 주인' 될 수 있었던 세월

▲ 자계예술촌에서 박창호 감독이 부인과 후배에게 고성 오광대 춤을 가르치고 있다. 연필로 스케치하고 색연필로 빛깔을 입혔다.
유순상
산골 생활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우선 10명 가까이 됐던 예술촌의 상근자가 이제 박 감독과 박 대표 둘만 남았다. 후배들은 대부분 대전으로 돌아가 공연이 있을 때만 온다. 24시간 편의점이나 옷가게 등 도시가 주는 편리함이 없고 다른 극단과의 교류도 쉽지 않은 공간에서 젊은 후배들이 정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배우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간제 일을 해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었다.
'버티는 것이 장기'라고 말하는 박 감독도 처음에는 이런 고립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거리의 신호등과 도시의 시곗바늘이 아닌,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대로 삶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술 마실 가게는 찾기 어렵지만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이 더 소중해졌고, 사람을 만나는 횟수는 줄었지만 자신을 알아가는 맛은 웅숭깊어졌다고 할까요."부부는 처음에 농사를 짓겠다고 밭 1000평에 각종 농산물을 심기도 했다. 농기계를 처음 몰다 손이 찢어진 일도 있다. 이제는 텃밭만 일구고 있지만, 산골 생활에 적응하려다 힘들고 불편한 일을 많이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밖에 나가 있으면 빨리 오고 싶다고 한다. 사람들 번잡한 것이 점점 불편해졌다. 누가 몇 시에 일어나라고 하지도 않고 몇 시에 자라고 간섭하는 일도 없는 자유를 즐긴다.
그래도 부부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간다. 월, 화, 수요일은 지역 초등학교에서 '침묵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학교폭력예방 연극교육을 하거나 지역아동센터에서 동화를 활용한 연극 수업을 한다. 목, 금, 토요일은 자체 공연 연습을 하거나 전국을 돌며 기획, 초청 공연을 한다.
지난해에는 충북문화재단의 '찾아가는 문화 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돼 1년 동안 아이들과 학교생활의 어려운 점을 극으로 만들어 공연했고, 8월에는 제주도 4·3평화인권마당극제에 초청돼 연극 '방을 위한 투쟁'을 선보였다. 꾸준한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예술경영 콘퍼런스'에서 예술경영 우수사례 부문 최우수 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름이 알려지니까 주위에서 아이들 체험 공간을 만들라는 등 여러 가지 제안을 해요. 사람들이 오면 잘 자리가 없냐면서요. 하지만 그것들은 작품 창작에 곁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잘하든 못하든 연출할 때 '살아있구나'를 느끼니까요."산골무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연극인으로서 혹시 대도시 무대에서 각광을 받거나, 영화나 방송을 통해 인기를 얻는 배우를 키워내고 싶은 욕망도 남아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박 감독은 단호하게 답했다.
"연극인의 꿈이 다 영화배우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무대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이곳을 가꾸며 연극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을 키우고 싶어요. 전 늘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습니다."

▲ 자계예술촌 박연숙 대표와 박창호 예술감독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작품은 극단 터 대표작인 <방을 위한 투쟁>이다.
자계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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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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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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