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 땐 더운 나라로? 당신이 놓친 설경들

[겨울 추천 여행 ②] 해외 가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제주도 한라산 설경

등록 2016.01.11 07:20수정 2016.01.1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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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날씨 좋은 날, 한라산 정상 부근의 풍경.

겨울 날씨 좋은 날, 한라산 정상 부근의 풍경. ⓒ 이은영


 겨울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설경.

겨울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설경. ⓒ 박혜경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눈발을 실은 칼바람은 속눈썹에 매달려 그대로 얼어버렸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정신까지 몽롱하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하얀 눈과 안개 뿐. 시야가 뿌옇게 흐려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우고 양손에 스틱까지 쥐었지만, 삐끗했다가는 길 옆으로 떨어져 나뒹굴게 될 것이다. 가방 옆주머니에 끼워 놓은 몇 모금 남은 생수는 얼어버렸다. '헉헉' 대며 입에서 연신 입김을 뿜어내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는다.


여긴 눈 덮인 네팔 히말라야...... 가 아닌 제주도 한라산이다.

단돈 2만 원에 마주한 한라산 설경, 네팔 안 부럽네

 날이 좋은 겨울날 한라산 정상까지 오른다면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좋은 겨울날 한라산 정상까지 오른다면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 이은영


 안개와 설경

안개와 설경 ⓒ 박혜경


 바람에 눈이 날리고, 안개까지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람에 눈이 날리고, 안개까지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 박혜경


지난해 12월, 홀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설경이 아름답다는 윗세오름 트레킹이 목적이었다. 겨울 산행엔 많은 준비가 필요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사실, 조금 자신만만했다.

'10박 11일 네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도 다녀왔는데 윗세오름 쯤이야. 네팔 보단 안 힘들겠지.'

대략 이런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가방을 쌌다. 가을에 이미 두 번 다녀온 코스이기에 더 부담이 없었다. 새로 산 스틱을 가방에 우겨 넣으면서도 멋진 설경을 찍을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고,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오전 6시 현재까지 한라산 윗세오름 34㎝, 진달래밭 20㎝, 영실 5㎝, 어리목 4.5㎝, 성판악 1㎝의 눈.'

 손만 대면 금방이라도 후두둑 하고 눈뭉치가 떨어질 것 같다.

손만 대면 금방이라도 후두둑 하고 눈뭉치가 떨어질 것 같다. ⓒ 박혜경


 눈, 눈, 눈... 잊지 못할 설경.

눈, 눈, 눈... 잊지 못할 설경. ⓒ 박혜경


트레킹 전날 제주도 산간에 대설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데 이어, 트레킹 당일에는 눈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열 번 고민하다, '강풍이 좀 걱정이지만 눈이 많이 와서 설경은 예쁠 거야'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새벽 버스에 올랐다.


겨울이면 아름다운 설경을 자랑하는 높이 1740m의 윗세오름은 한라산 정상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백록담을 볼 계획이라면 성판악 탐방로나 관음사 탐방로(일부 구간 통제)를 이용해야 하지만, 정상에 욕심이 없다면 4~5시간 만에 윗세오름을 오르내리는 '영실-어리목 탐방로'만으로도 충분하다.

초등학생 아들과 아버지가 올라올 정도로 비교적 쉽게, 빼어난 설경을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겨울 산행지로 이 코스를 추천한다.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눈꽃 왕국' 한라산

 윗세오름에 오르는 '영실-어리목 코스'에 눈이 가득 쌓였다.

윗세오름에 오르는 '영실-어리목 코스'에 눈이 가득 쌓였다. ⓒ 박혜경


 윗세오름에 오르는 '영실-어리목 코스'에 눈이 가득 쌓였다.

윗세오름에 오르는 '영실-어리목 코스'에 눈이 가득 쌓였다. ⓒ 박혜경


제주 시외버스터미널 매점에 짐을 맡기고(3천원) 740번 버스에 올라탔다. 영실 입구에서 내려 탐방로가 시작되는 영실휴게소까지는 40분 가량을 걸어야 한다. 영실휴게소까지 가는 길에도 눈이 많이 쌓였지만, 탐방로는 그야말로 눈 천지이다. 입구부터 눈이 많이 쌓여 엉뚱한 곳으로 들어갈 뻔했다.

한라산은 그야말로 '눈꽃 왕국'이었다. 길은 물론 탐방로 근처 나무에도 흐드러지게 눈꽃이 피었다. 나뭇가지는 그간 내린 눈을 다 받아 안아 손만 대면 금방이라도 후두둑하고 눈 벼락이 떨어질 것 같다. 찬바람에 목이 쨍하게 울리는데 눈은 한없이 시원하다.

'겨울에는 여름 나라로 떠나는 것이 진리'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계절을 거스르는 데 필요한 돈도 돈이고,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비경을 두고 힘들게 떠나는 게 그닥 내키지 않았다. 더불어 지난해 3월 다녀온 네팔 트레킹이 눈에 아른거려 비슷한 곳에라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9월, 무려 '왕복 1만9800원 특가'로 12월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편도가 아니라 왕복이다!).

 눈에 덮인 '영실-어리목 코스'.

눈에 덮인 '영실-어리목 코스'. ⓒ 박혜경


 눈이 가득 쌓인 '영실-어리목 코스'.

눈이 가득 쌓인 '영실-어리목 코스'. ⓒ 박혜경


 배낭 옆 주머니에 끼워 놓은 조금 남은 생수가 얼었다.

배낭 옆 주머니에 끼워 놓은 조금 남은 생수가 얼었다. ⓒ 박혜경


2만 원 주고 온 한라산 윗세오름 가는 길은 기대 이상이었다. 네팔 트레킹 때 보다도 더 많은 눈을 구경했다. 만년설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이 내린 눈 덕분에 어디를 봐도 눈부신 하얀 설산.

구름에 가렸다 보이기를 반복하는 설경은 너무나 반가웠지만, 추위 또한 대단했다. 네팔 트레킹 때도 산을 오를 땐 반팔 차림으로 다니기도 했는데, 강풍의 한라산은 너무 추워 외투를 벗을 일이 없었다. 탐방로 데크에 연결된 밧줄엔 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그 옆 깃발에도 눈이 10cm 가량 바람이 불어온 방향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눈 나무, 눈 터널, 눈 계단, 눈 밭을 헤치고 도착한 윗세오름 휴게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마냥 눈 속에  파묻혀 있다.

 깃발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그대로 눈이 얼어붙었다.

깃발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그대로 눈이 얼어붙었다. ⓒ 박혜경


 윗세오름 휴게소. 눈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처럼 쌓였다.

윗세오름 휴게소. 눈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처럼 쌓였다. ⓒ 박혜경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먹는 라면은 꿀맛이다.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먹는 라면은 꿀맛이다. ⓒ 박혜경


'휴게소에서 파는 라면 먹으러 윗세오름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산행 끝에 맛보는 라면은 꿀맛이다. 추위까지 더해져 김치 없이도 라면이 술술 넘어간다. 뜨거운 국물에 몸이 노곤노곤해지지만 이젠 내려가야 할 시간.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길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영실에 비해 접근이 쉬워 어리목으로 올라왔다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눈이 많이 와 계단의 굴곡이 거의 없어진 상태라 아이젠과 스틱만 있다면 다른 계절에 비해 더 빨리 하산할 수도 있다(물론 발목, 무릎 등을 조심해야 한다).

그 매력에 빠져 첫 비행기로 와 마지막 비행기로 돌아가는 '당일치기 산행'을 하는 이들도 있다는 한라산. 당일이든 1박 2일 혹은 그 이상의 일정이든, 멀리 떠날 것 없이 올 겨울이 끝나기 전에 한라산에 한번 다녀오시길 '강력 추천' 한다. 어느 해외여행 보다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겨울 한라산 백록담.

겨울 한라산 백록담. ⓒ 이은영


 겨울 한라산 정상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겨울 한라산 정상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 이은영


 날씨 좋은 겨울날, 한라산 정상에서의 모습.

날씨 좋은 겨울날, 한라산 정상에서의 모습. ⓒ 이은영


<시시콜콜 정보>

- 나에게 맞는 코스는? : 한라산 국립공원(www.hallasan.go.kr)에 탐방로가 잘 정리돼 있다. 구간별 소요시간과 지도가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통제 구간과 등산 불가능 구간도 안내돼 있으니 가기 전에 꼭 확인하자. 날씨가 안 좋은 경우라면 오전 6시에 한라산 국립공원에 전화해 통제 구간이 있는지 문의해보는 게 좋다.

- 한라산 갈 때 버스는? : 제주특별자치도 버스정보시스템(http://bus.jeju.go.kr)에 시내, 시외버스 시간표가 잘 정리돼 있다. 특히 환승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시간표를 잘 확인하자. 너무 늦게 내려올 경우 버스가 끊길 수도 있으니 주의.

- 짐은 어떻게 하지? : 공항에서 바로 오거나 산행날 숙소도 옮겨야 하는 경우라면,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해 짐을 다음 숙소로 옮길 수 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과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 내에 소액을 내고 짐을 보관하는 방법도 있다.

- 꼭 챙기고, 꼭 기억하자 : 윗세오름까지 화장실이 없으니 산행을 시작하기 전 미리 다녀오는 게 좋다. 길지 않은 코스이지만 간식과 물은 필수로 챙기자. 바람이 심한 날 올라갈 계획이라면 얼굴까지 감싸는 워머를 준비하는 게 좋다. 이것 외에도 겨울 산행에 아이젠과 스패츠, 스틱은 필수이다.

- 어리목으로 하산한다면 : 어리목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0~15분 가량이면 도착한다. 영실과 어리목을 오가는 740번 버스는 동절기(11월 1일~3월 31일) 일 7회만 운영한다. 1시간에 1대 꼴로 배차 간격이 넓으니, 다음 버스가 한참 후에야 온다면 어리목 등산로 주변에 있는 매점 등에 있다가 내려오는 편이 좋다. 버스정류장에서 겨울 바람을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라산 #제주도 한라산 #제주도 #제주 한라산 #겨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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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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