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완전히 다른 룩셈부르크 광장

[룩셈부르크 기행 ②] 기욤 2세 광장(Place Guillaume II) 기행

등록 2016.01.16 19:50수정 2016.01.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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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룩셈부르크 여행은 뜻밖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예상 밖의 활기, 친절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나는 룩셈부르크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지어진 노트르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북쪽으로 다시 걸어 올라갔다.

정성스럽게 석재로 지어진 계단을 올라서자 탁 트인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룩셈부르크 독립의 상징인 기욤 2세(Guillaume II) 기마상을 품고 있는 기욤 2세 광장(Place Guillaume II)이다. 광장 한복판에서는 겨울을 맞이하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스케이트장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얼음 트랙을 돌고 있고 광장 중앙에서는 겨울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나폴레옹 방문 소식에 건물 헐고 광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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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뉘들러 온 아이스. 기욤 2세 광장의 오픈 마켓으로 다양한 먹거리들을 판다. ⓒ 노시경


유럽은 어느 도시를 가나 광장이 있고, 광장 안에서 많은 문화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룩셈부르크는 특히나 크고 작은 광장 여러 곳이 구시가에 산재해 있다. 몇 개의 광장 중에서도 룩셈부르크 시청 앞에 자리한 이 기욤 2세 광장은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광장이다. 작은 도시 규모를 생각하면 기욤 2세 광장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광장 이름은 기욤 광장인데 이 광장의 역사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광장은 룩셈부르크가 프랑스 혁명기에 프랑스 지배를 받을 당시에 만들어진 광장이다. 1804년에 나폴레옹이 룩셈부르크를 방문하게 되자 그의 방문일정에 맞추어 이 곳에 광장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기존 건물들을 헐고 나폴레옹 영접을 위한 광장을 만들어버렸으니 당시 나폴레옹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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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인포메이션 센터. 친절한 안내원이 룩셈부르크의 역사를 알려준다. ⓒ 노시경


나는 우선 기욤 2세 광장 서편에 자리 잡은 관광안내소에 먼저 들어갔다. 룩셈부르크역에서 받지 못한 룩셈부르크 지도를 얻고 몇 곳의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도를 받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위치와 동선을 확인했다. 그런데 내가 가볼 곳 리스트에 포함시킨 옛 어시장이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관광안내소의 아주머니에게 핸드폰으로 옛 어시장 사진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위치를 물어보았다. 관광안내소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노련했다.

"아니, 지금은 어시장이 없어졌는데 옛 룩셈부르크에 어시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었어요?"
"룩셈부르크를 소개하는 우리나라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봤어요. 시장은 없어졌지만 옛 건물들 여기저기에 어시장의 삶의 흔적들이 남아 있던데요."
"좋아요. 나는 이렇게 룩셈부르크 공부를 많이 하고 온 사람들이 좋아요. 방금 준 지도 줘 보세요. 지도에는 옛 어시장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요. 자, 옛 어시장은 대공 궁전의 동쪽 아래 기슭에 있어요."


나는 여행지의 지도를 기념품으로 보관하기 때문에 지도에 표시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아주머니는 내 지도를 보더니 내가 가야 할 골목길에 볼펜을 박박 칠하며 박력있게 표시해 주었다.

물론 그녀는 어시장과 기욤 2세 광장이 어떤 역사적 내력을 가진 곳인지도 충실하게 설명해 주었다. 도시나 사람이나 깔끔하고 매력 있는 곳이 룩셈부르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나오면서 더 열심히 룩셈부르크를 돌아보자는 묘한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기욤 2세 광장이 크뉘들러라고 불리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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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애완견. 일부러 멈춰 서서 사진 자세를 잡아주는 친절을 보여준다. ⓒ 노시경


광장에는 유난히도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룩셈부르크 시민들이 많다. 주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사실이 바로 느껴지는 애완견들은 개 주인들만큼이나 단정한 모습이다. 내가 한 애완견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견주들은 일부러 걷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애완견도 멈추게 하고 자세를 잡아준다. 그리고 그들은 외국 여행자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준다.

광장을 둘러보다보니 광장 동쪽의 일부가 마치 지하철 공사장처럼 땅이 깊게 파여 있다. 광장의 아래에 크뉘들러(Knuedler)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 '크뉘들러(Knuedler)'는 룩셈부르크 사람들이 과거부터 불러온 이 광장의 또 다른 이름인데, 룩셈부르크 말로 매듭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의 매듭은 가톨릭 수도사들의 허리띠 매듭에서 연유한다.

원래 이 광장에는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cesco Abbey)이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97년에 프랑스 군인들이 룩셈부르크를 점령하면서 이 광장의 수도원을 해산시켜 버렸던 것이다. 1829년에는 새로운 룩셈부르크 시청사를 건설할 계획이 세워지자 광장에 그나마 남아있던 수도원 건물은 해체되었고, 수도원의 석재들은 시청사 건설에 이용되었다.

한 번 정해진 이름은 끈질겨서, 19세기 중반에 기욤 2세 광장이라는 이름이 생겼지만 아직도 '크뉘들러'라는 광장의 옛 이름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 '크뉘들러'라는 이름은 매우 정치적으로 들리는 현재의 광장 이름보다 그동안 친숙했던 옛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룩셈부르크 시민들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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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마켓. 오후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 가게에 몰리기 시작한다. ⓒ 노시경


광장 한복판에 자리한 아이스 링크 스케이트장과 오픈 마켓의 이름도 '크뉘들러 온 아이스(Knuedler on Ice)'이다. 이 크뉘들러 스케이트장도 서울의 서울광장같이 겨울에만 문을 연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토요일마다 이 광장에서 과일, 꽃, 채소, 치즈, 빵을 파는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가 흐뭇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얼굴에는 겨울에만 탈 수 있는 스케이트를 오랜만에 즐기는 즐거움이 가득 묻어 있다. 역시 이 스케이트장에도 연인들이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정경이 겨울밤의 낭만같이 펼쳐지고 있다.

아이스 링크 바로 옆에는 깔끔한 목조 조립식 가게들이 들어선 오픈 마켓이 열리고 있다. 크레페, 팝콘, 소시지, 햄버거, 커피, 맥주 등 추운 겨울날에 생각나는 먹거리들과 봉봉 캔디, 팝콘 등 스낵을 파는 가게들이 모인 푸드코트 같은 곳이다. 가장 큰 가게는 이름부터 겨울에 맞추어 '윈터 카페(Winter Cafe)'이다. 역시 추운 겨울날이어서 그런지 보드카 같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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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 가게. 덩치 큰 아저씨들이 차분히 크레페를 기다리고 있다. ⓒ 노시경


아이스 링크에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아주 평화롭다. 햄버거 가게에서는 거구의 가게 주인이 다 팔릴까 걱정될 정도로 많은 쇠고기 패티를 가득 쌓아두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크레페 가게에서 덩치 큰 유럽 친구들이 조그마한 크레페 만드는 모습을 보며 여유있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인상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극장이나 어린이 행사 때 팔리는 팝콘과 봉봉(bonbon) 과자가 겨울 오픈마켓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의 건축물들이 즐비한 룩셈부르크에서는 과자도 전통의 과자들이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룩셈부르크 사람들이 네덜란드 왕 동상 세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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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2세 동상. 룩셈부르크 대공이었던 그는 룩셈부르크에 진정한 독립을 가져왔다. ⓒ 노시경


오픈 마켓 앞, 광장을 시각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광장 동쪽에 우뚝 선, 푸른빛이 신비롭게 감도는 기욤 2세(guillaume ll)의 기마상이다. 마르고 키가 큰 체격이었다는 기욤 2세는 동상에서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게 만들어졌다.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군인으로 용맹을 떨쳤던 그의 성격은 동상에서도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태어난 그는 네덜란드 국왕 겸 룩셈부르크 오란예-낫사우(Oranje-Nassau)가의 대공작이었다. 

정작 이 동상을 보면서 헷갈리는 것은 그의 이름이다. 룩셈부르크에 와서 보니 원래 '기욤'이라는 이름은 '빌럼(Willem)'을 프랑스어로 발음한 것이고,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에서는 기욤 2세를 빌럼 2세(Willem II)라고 부른다. '빌럼'은 영어로 하면 '윌리엄(william)'으로 표기된다. 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공용어로 함께 쓰이는 룩셈부르크에서는 이름 표기도 이렇듯 복잡한데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룩셈부르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욤 2세 동상 바로 옆 지하주차장 공사판에는 노란 가림막이 길게 세워져 있다. 자세히 보니 이 동상의 내력을 프랑스어 외에도 영어로 설명해 놓았는데, 이 설명을 보면 동상은 1884년에 세워졌다. 기욤 2세에 의해 1841년에 첫 민주주의 의회가 생김으로써 타국의 통치에서 벗어났고, 1848년에는 그가 룩셈부르크의 근본적인 자유주의 법을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동상을 만든 것이다.

기욤 2세에 의해 룩셈부르크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룩셈부르크 사람들이 네덜란드 왕으로서 룩셈부르크를 지배했던 기욤 2세를 기리는 것은 기욤 2세가 룩셈부르크에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자치권을 주어 실질적으로 룩셈부르크를 독립시켜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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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사자상. 룩셈부르크의 상징인 사자가 앞으로 전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 노시경


기욤 동상 앞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멋들어진 2층 건물이 있다. 건물 1층에는 '호텔 드 빌(hotel de ville)'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 자리에 시청이 있는 줄 알았는데 호텔이 들어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기욤2세 광장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다시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관광안내소에서 진행되던 문답 속에 나의 무식이 드디어 드러나고 말았다.

"기욤 광장 남쪽에 룩셈부르크 시청이 있는 줄 알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건물에 무슨 호텔이라고 적혀 있네요. 시청이 관광수입을 위해 호텔도 운영하나요?"

나보고 공부 많이 했다고 하던 관광안내소 아주머니가 씨익 웃으면서 이야기해주었다.

"'호텔 드 빌'이 프랑스어로 시청이고, '호텔 드 빌 드 룩셈부르크(hotel de ville de Luxembourg)'라고 하면 룩셈부르크 시청이라는 뜻이에요. 호호"

영어와 많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프랑스어. 역시 여행을 잘 하려면 그 나라 언어 공부는 필수인데 나의 언어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

룩셈부르크 시청 건물 앞 계단 양 옆에는 두 마리의 씩씩한 청동사자상이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룩셈부르크 대공가의 문장(紋章) 중앙에 빨간 사자가 있는데 이 문장에서부터 사자는 룩셈부르크의 상징이 되어 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는 적색사자라는 별명도 가진 나라이다. 문장에서 사자는 오른쪽을 보고 걷고 있는데 시청 앞의 사자는 국장과 같이 앞발을 들고 세울 수는 없어서인지 네발로 일어서 있다. 이 사자는 으르렁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룩셈부르크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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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시청사. 룩셈부르크 독립의 역사를 품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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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의 스케이트장. 밝은 별 모양 조명이 분위기를 밝히고 있다. ⓒ 노시경


해가 지자 어둡고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룩셈부르크 시청이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고 창문마다 별 같은 반짝이가 빛나고 있다. 이 룩셈부르크 시청사 건물은 1838년에 완공되고  기욤 2세에 의해 1844년에 준공식이 이루어진 역사적 건물이다. 이 무렵에도 룩셈부르크는 독립은 하였으나 네덜란드 국왕의 통치 아래에 있었고 1867년에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있던 룩셈부르크 지역이 독립하여 영세 중립국이 되었다.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독립을 쟁취한 룩셈부르크인들의 강인한 역사가 녹아 있는 곳이 이 광장이다.

룩셈부르크의 명소를 둘러보고 역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다시 기욤 2세 광장을 찾았다.  어두워진 광장의 아이스 링크는 화려한 조명 속에서 겨울왕국이 되어 있었다. 왠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스케이트장에서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아이들은 겨울밤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참으로 평안한 느낌을 주는 스케이트장이다. 저 아이들에게는 기욤 2세 광장이 어릴 적 겨울밤의 낭만으로 기억될 것이다.

밤이 점점 깊어가자 광장 한복판의 나트륨등이 분위기 있게 광장을 비추기 시작했다. 광장 나무 위의 노란 조명은 마치 별같이 나무 위에 떠 있었고, 스케이트장에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낮에 방문한 광장과 밤에 방문한 광장은 모습이 완전히 다른 광장이었다. 스케이트장 위의 별은 룩셈부르크 시를 비추고 있었다.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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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는 광장. 노란 나트륨등이 분위기 있게 광장을 비추고 있다. ⓒ 노시경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여행 #룩셈부르크 시티 #기욤 2세 광장 #룩셈부르크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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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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