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옮긴 사무실임시로 사용하던 사무공간에 새 프로젝트팀이 들어오면서 신뢰성센터 실험실옆 작은 공간으로 사무실을 이사했다.
강상오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마치고 총원 6명의 작은 스타트업에 새로 취업했다. 회사는 아주 큰 대기업의 사내 협력업체로 그 대기업 연구소에 있는 '신뢰성 센터'를 대신 운영하는 업무 도급 회사였다. 그 덕에 나는 그 대기업 정규직들도 출입이 까다로운 그 대기업 연구소를 매일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가본 대기업 연구소에는 400명가량의 연구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400명의 연구원들 중 60%가량이 석·박사급 인력들이고 나머지 40%가 학부 인력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리고 아주 소수로 전문대를 졸업한 연구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담당 업무는 경리나 총무로, 제품 개발 담당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진 않았다.
연구소가 있는 4층의 중앙을 가르는 복도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아주 큰 사무실이 있었다. 좌측 사무실이 연구실, 우측 사무실이 개발실로 2개의 실로 구성된 조직이 그 대기업의 연구소였다. 대략적으로 연구실에서는 새로운 모델의 선행 개발이 진행되고 개발실에서는 양산 중인 제품의 보완과 더불어 선행 개발이 완료된 제품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업무를 했다.
중앙 복도를 따라 연구실과 개발실 사무실을 지나면 각 실의 작업장이 나온다. 작업장은 연구원들이 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오랫동안 근무하는 공간으로 제품의 분해 조립과 간단한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지나면 옥상이 나오는데 건물 4층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옥탑형으로 3층의 옥상을 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 옥상은 연구원들이 머리를 식히며 담배피고 커피 마시는 공간이었다.
2005년 6월 22일. 우리 1기 멤버들은 그 곳으로 첫 출근을 했다. 우리는 그 대기업에 출입을 할 수 있는 사원증이 없었기 때문에 입구에서 사장님을 만나 경비실에 신분증을 맡기고 임시출입증을 받아 들어갔다.
난생처음해 보는 경험에 싱글벙글 웃으며 연구소로 올라갔다. 그런데 도착한 연구소에서 우리가 있을 공간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대기업 쪽과 사장님간의 의사소통에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연구소가 있는 건물 4층 로비에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으니 개발실이 있는 사무실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연구원 한 명이 나와서 우리를 안내해줬다.
우리가 간 곳은 개발실 사무실을 지나 작업장 입구에 높은 파티션이 쳐진 사무공간이었다. 연구소에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사무공간이 많았다. 그 공간은 프로젝트팀이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새로운 제품 개발이 시작되면 각 부서의 담당자들을 차출해 임시부서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프로젝트팀이 가지는 별도의 임시 사무실인 거다.
얼마전 프로젝트가 끝나 비워져 있는 사무공간을 우리가 임시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 사무실에는 딱 책상과 의자만 놓여져 있었다. 사장님의 책상에는 급하게 데스크톱 PC 한 대를 설치해줬고, 우리는 빈자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그렇게 출근 첫날 우리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옥상에 담배만 피우러 왔다갔다했다.
새로운 조직에 처음 합류를 하면 기존 사원들은 모두가 가까운데 나 혼자만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이질감이 든다. 그 어색함을 타파하지 못하면 그 조직에 흡수되지 못하고 다시 튕겨져 나온다. 어찌보면 직장을 옮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그런 점인데 우리는 모두가 창립멤버로 면접을 볼 때부터 이미 하나가 돼 있었기 때문에 출근 첫날이었지만 우리끼리 뭉쳐서 잘 지낼 수 있었다.
다음날 역시도 우리는 하릴없이 멍하니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첫날과는 달리 우리에겐 1부의 문서파일이 주어졌다. 그 문서는 바로 PDP(Plasma Display Panel - 평판디스플레이의 한 종류)의 신뢰성 테스트 메뉴얼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운영해야 할 '신뢰성 센터'에서 할 일인 것이다. 그 메뉴얼을 보고 공부를 하라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첫번째 미션이었다.
책자를 펼쳐서 메뉴얼을 보는데 신기하게도 대부분 내가 아는 내용들이었다. PDP라고는 하지만 어찌됐건 내가 몇년간 만져오던 브라운관 TV와 같은 디스플레이 소자라서 모든 용어와 테스트 방법이 같았다. PDP건 LCD(Liquid Crystal Display - 평판디스플레이의 한 종류)건 디스플레이 표현 방식이 다른 소자일 뿐 그 소자들이 궁극적으로 해야할 일은 선명하고 또렷한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테스트 방법은 최초의 소자인 브라운관의 그 것과 같을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입사한 창립멤버 4명 그리고 관리자로 입사한 과장님까지 총 5명 중에 디스플레이 관련 업종의 경력이 있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메뉴얼을 동료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임시 강사가 됐다. 내가 다른 직원들에게 그 메뉴얼에 나오는대로 테스트 방법과 이론교육을 시키는 모습을 보고 사장님은 아주 흡족해 하시면서 옆에서 거들어 주셨다.
오전 8시에 출근을 해서 오후 5시에 퇴근을 할 때까지 그 메뉴얼 책자 하나를 5명이서 돌려보며 며칠을 보냈다. 일이 없어서 한가하고 매일 칼 퇴근을 했지만 일 없이 빈둥거리는 하루는 너무 길었다.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뭔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임시로 사용하고 있던 우리 사무실에 다른 프로젝트 팀이 들어와야 한다며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다. 그 길로 우리는 신뢰성 센터에 있는 실험실 옆 조그만 사무공간으로 이사를 갔다. 출입문도 없이 높은 파티션으로만 만들어진 그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실험실 옆 작은 공간이지만 독립된 공간에 들어오니 마음이 약간은 가벼워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야 비로소 우리에게 일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 일은 바로 연구소 내 각 부서 파견 근무였다. PDP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신뢰성 센터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연구소 내 각 부서에 우리를 파견시켜 연구 보조일을 하면서 업무를 배우도록 할 계획인 것이었다.
'납땜' 부탁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던 석·박사급 연구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