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서로 선물을 나누는 곳'

[불행사회, 한국] '유기적 연대'로 '사회안전망'부터 갖추자

등록 2016.01.25 14:49수정 2016.01.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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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도 없는 상태에서 비무장으로, 무방비 상태로 준비하고 추진하는 공동체 또는 공동체사업은 어렵다. 대부분의 일반적, 평균적 능력과 품성의 주민, 시민들은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 '안전하게 사는 문제'에 일상과 평생을 집중하고 진력해야 하는 운명이다. 이웃과 타인, 공동체를 챙길 여력이 거의 없다.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살기도 힘겨운데, 언제 직장에서 밀려나고 쫓겨날지도 모르는 처지에 이웃과 타인을 배려하기는 어렵다. 빚을 얻고 빚을 갚아나가기도 버거운데 남을 돌보거나 보살필 시간도, 여유도 없다. 더욱이 남에게 양보하고 남을 먼저 배려해야 하는 공동체사업은 시작하기도, 참여하기도 어렵다. 설사 마음은 있다해도 몸이 따라 할 수 없는 일이다.

'공동체(Commune)'는 '서로 선물을 주는 것'

'공동체(community)'의 사전적 의미는 '공통의 생활공간에서 상호작용하며, 유대감을 공유하는 집단'을 뜻한다. 학술적으로는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에스(Ferdinand Töennies)의 공동사회(Gemeinschaft) 즉, 혈통, 장소, 정신적 차원 등을 속성으로 하는 총체적인 공동체를 말한다. 이때 공간, 상호작용, 연대가 공동체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혈연공동체나 지연공동체 같은 전통적인 공동체들을 규정하는 공간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상호작용과 연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집단들이 등장했다. 한국도 20세기에 식민통치, 한국전쟁,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사회환경의 가치에 부합하는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벨기에의 국제금융학자 베르나르 리에테르(Bernard Lietaer)에 따르면, 공동체는 라틴어 'cum'과 'munus(또는 munere)'가 어원이다. 'cum'은 '함께(together), 서로 간에(among each other)', 'munus'는 '선물(gift)', 'munere'는 '준다(to give)'를 의미한다. 즉 공동체(community)는 '서로 간에 주는 것'이다. '서로 선물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물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인간집단을 곧 '공동체(Communty)'로 정의내릴 수있다.

그런데 생업과 생활의 공간이 기계적으로 분리, 격절된 도시에서는 공동체를 더욱 하기 어렵다. 일상의 대부분을 생업 현장에서 '처자식을 위한 발법이'에 소진하느라 '서로 간에 선물을 주는 선의나 행위'를 발휘하기 어렵다. 일에 지쳐 돌아가는 생활 기반으로서 마을은 그저 숙소 또는 수용소의 모양과 기능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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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영암 선애빌 공동체마을 - ⓒ 정기석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그래서 현대사회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Durkheim, E.)은 대표적 <사회분업론>을 통해 도시를, 도시의 '동네(quartier)'를 '기계적 연대와 배제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주민들이 어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비정한 생활공간으로 생활 보다 생업이 우선되는 곳으로 비판했다.


여기서 '기계적 연대'란 '사회의 모든 성원이 공통된 관념에 따라 행동하며 전체의 공통 의식이 개인의 의식을 압도하고 지배하는 사회적 결합 상태 또는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악이 함축된듯한 비인간적인 도시의 동네 같은 곳이다. 그래서 개인간 연대의식이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기적 연대'는 '사회 발전에 따라 사회 성원 사이에 기능적 분화와 분업이 촉진되어 상호 의존성이 강화되면서 생기는 사회 연대'의 상태를 말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집단 지향적인 기계적 연대가 필요했지만 근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호혜적 연대, 유기적 연대가 등장하게 됐다"고 뒤르켐은 설명한다.

그런데 "분업이 지나치게 발달해서 개인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전문화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과 서로 의존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사회적 병리현상 같은 부작용을 경고했다. 이러한 병리 현상을 '아노미적 분업'이라고 정의하고 노사 갈등, 기업 파산 등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그래서 뒤르켐은 "무엇보다 사회 결속력 유지에 필요한 규제를 보장해야 한다"며 "우리 스스로 산업 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도덕률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쨌든 개인이, 또는 개인들의 집단이 기계적 연대를 벗어나 유기적 연대로 옮겨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듯하다. 그래서 마을이나 공동체사업현장에 가서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칫 마을공동체사업을 생업 삼아 하는 전문활동가, 어쨌든 '먹고 살만한' 이른바 중산층, 그장래 진로와 정처를 미처 정하지 못한 청년, 이들 3가지 집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안타깝게도 '먹고 살아야하는 생업의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반적, 평균적 주민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체사업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고 '유기적 연대'의 경지로 옮겨가려면 각종 지원사업을 개발하고 공모하기 전에 우선 선결과제가 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 두려움, 공포심으로부터 주민, 시민들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방시켜줘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국가와 정부가 법을 제정하고 제도와 정책을 개발하고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자면 '먹고 사는 전장'의 경쟁 상대인 이웃을, 친구를, 타인을 더 이상 경계하지 말고 서로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에게 먼저 양보하고 우선 배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뢰, 협동, 연대, 참여, 규범, 네트워크 등의 '사회적 자본'부터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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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완주군의 공동체사업 사례 - ⓒ 정기석


'사회적 자본'을 쌓으려면 '사회 안전망'부터 

그런데 그러한 '사회적 자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르치고 훈련해서 생산하고 축적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국가나 정부가 국민을 충분히 돌보고 보살피지 않아서, 국민들 개인이 저마다 알아서 가족을 돌보고 가계를 책임지느라 이웃과 타인을 돌보고 보살피는 '공동체 정신'을 갖출 기화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불안하고 위험해졌으니 국가와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란 '모든 국민을 실업, 빈곤, 재해, 노령, 질병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등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공공근로사업, 취업훈련 등을 포괄한다.

모든 사회적 위험에 대한 '포괄성'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실현하고 '국민복지기본선(National Welfare Minimum)'을 보장하는 게 목적이다. 즉 주거, 의료, 생계보호, 보육, 복지시설 서비스 등 복지욕구 전반에 걸쳐 국가가 공적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일정정수준 이하인 기존 제도의 급여를 기본적인 선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책무다.

한국은 1· 2· 3차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1차 안전망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5대 사회보험이다. 2차 안전망은 1차 안전망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부조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 보완적으로 공공근로사업을 운용하고 있다. 3차 안전망은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 최소한 생계와 건강을 지원해 주는 각종 긴급구호 제도가 있다.

그런데, 입구와 출구, 답과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고 걱정하다보면 대체 왜. 가뜩이나 개별화, 파편화된, 힘 없는 국민들끼리 이런 난제를 붙들고 씨름을 하고있나 의문이 들고 분노가 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 '안전하게 사는 문제' 등 지금 공동체가 주로 고민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는 알고보면 국가나 정부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고 보장해야하는 기본적인 책임이나 의무가 아닌가.

혹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핑계로, 결국 국가나 정부의 책임을 적당 조절하거나 면피하려고 협동조합 기본법이니, 지역공동체활성화법이니 하는 각종 공동체사업 지원 특별법, 제도까지 만들면서 국민, 시민, 주민에게 짐을 떠넘기는 모양은 아닌가.

유휴시설이 난무하는 농촌공동체, 법은 있으되 자족 생태계와 시장동력은 없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의 형해화된 현장을 보면 그런 의심과 오해가 더 깊어진다. 결국, 재고 시멘트를 처분하느라 우발적으로 추진됐다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처럼, 고도로 기획된 국가와 정부의 전략과 전술에 순진하고 무지한 국민들이 정부의 전략에 말려들어간 것은 아닌가 하는 불신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공동체사업을 잘 하려면 사회적 자본이 충분히 축적되어야 하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려면 사회안전망부터 구축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가령 기본소득제로 상징되는 '사회안전망'이 일단 구축되면, 공동체 구성원마다 서로 믿고 남을 도울만한 생활의 여유가 생겨 신뢰, 협동, 연대, 규범,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은 저절로 생성, 축적될 것이다.

그런 사회적 자본이 충분히 축적된 공동체는 자생적으로, 자조하고 자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금처럼 국가나 정부가 마치 생색내듯 공모 지원사업의 시혜를 베풀지 않아도, 훈련시키듯 지도하고 감독하고 평가하지 않아도 능히 '남에게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분업, 유기적 연대'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단계로 무상교육, 무상의료, 사회주택, 고용안정, 기본소득 등의 '사회 안전망', 2단계로 생활기술자 학교, 사회적경제자산 은행, 공동체사업 협동경영체 조합,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의 융합플랫폼 등을 통한 '사회적 자본'을 추진한 후, 비로소 3단계로 (마을)공동체사업이나 사회적경제를 시작하는 식으로 일의 순서를 지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경제 기반의 농촌 마을공동체사업'의 정책 설계도와 사업 추진전략을 새로, 다시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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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동면의 사회적 자본 발전소, '밝맑도서관' - ⓒ 정기석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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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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