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밀가루로 만든 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익혀내고 있는 삼해주 기능보유자 권희자 장인.
허시명
삼해주가 마포에 많았던 것은 마포나루라는 포구, 요즘으로 치면 서울역이나 강남터미널처럼 사람 왕래가 잦았던 지역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소주는 전통적으로 북쪽 지방이 강했는데, 서해안을 거쳐 한강을 거슬러와 마포에 정착한 평안도·황해도 소주 기술자들이 합류해 삼해주 빚는 기술도 향상됐다고 한다. 때로는 과거 보러온 남편을 뒷바라지하던 평안도 아낙이 삼해주 도가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서울시 삼해주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권희자 선생은 해일 해시에 술을 빚었다고 한다. 해시가 오후 9시부터 오후 11시 사이니, 한밤중에 술을 빚은 게다. 권희자 선생의 제법에 따르면, 정월 첫 해일에 멥쌀을 가루내서 끓는 물을 붓고 범벅을 누룩과 함께 치대 삼해주 밑술을 빚는다. 음력 2월 첫 해일에는 멥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끓는 물에 익히고 이를 밑술과 섞어 중밑술을 빚는다. 음력 3월 첫 해일엔 고두밥을 지어 중밑술과 섞어 마지막 덧술을 한다. 이렇게 세 번에 나눠 빚는 삼해주가 다 익으면 맑은 청주를 얻게 된다. 이를 소주고리로 증류시키면 삼해소주가 된다.
삼해주는 버드나무 가지에 새순이 돋는 봄에 마신다 하여, 버드나무 꽃을 뜻하는 유서주(柳絮酒)라는 운치 있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이르면 4월말 늦어도 5월에는 즐길 수 있는 술이다.
이쯤 되면 삼해주를 서울의 술이라고 칭할 만하다. 그런데 삼해주가 서울을 대표하는 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혹시나 해서 나는 마포구 공덕동 일대에서 삼해주를 수소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포구의 향토사학자에게 물어보니, 그이도 알 길이 없고, 흔적 하나 남은 곳이 없다고 했다. 100년 전에는 수천 독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니.
오랜 세월 한양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었고, 마포나루를 드나들었던 옛 사람들이 달콤하게 맛봤을 삼해주를 이제라도 다시 맛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삼해주 기능보유자도 있고, 삼해주 제법도 옛 문헌에 잘 남아있으니, 삼해주를 빚으면 될 일이다.
2016년 올해는 정월 첫 번째 해일이 2월 11일이고, 두 번째 해일이 3월 18일, 세 번째 해일이 4월 11일이다. 계승되고 있는 전통 술 중에서 해마다 술 빚는 날이 정해진 술은 삼해주밖에 없다. 이 날에 맞춰 삼해주를 빚어보면, 왜 36일이나 24일 간격으로 해일에 술을 빚었는지 얼마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나 또한 꼭 삼해주를 빚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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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의 또다른 역사, 그곳은 '술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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