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도 안 들어오는 창고에서... 우린 현대판 노비"

[광운대 청소노동자 체험기⑫] 청소노동자들의 쉼터는 열악하다

등록 2016.02.17 18:19수정 2016.02.17 18:19
0
원고료로 응원
첫 번째 원칙, 휴게실, 샤워실, 탈의실, 세탁실을 일체형으로 구성한다. 두 번째 원칙, 청소근로자만의 분리된 전용공간을 확보한다. 세 번째 원칙, 3분 내외에 접근 가능한 거점 별 공간을 마련한다. 네 번째 원칙, 4대 필수비품을 구비한다. 다섯 번째 원칙, 1인당 5㎡ 내외의 적정규모 공간을 구성한다. - 서울특별시 '청소근로환경시설 가이드라인' 중 일부

자판기 2대가 비마관(전자정보공과대학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 앞에 배치된 상태다. 자판기가 휴게실의 벽이나 다름없다. ⓒ 김동수


"휴게실 앞에 있는 자판기를 다른 데로 옮겨준대요. 이미 봐둔 공간이 있다면서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아래 광운대분회)의 최수연 분회장이 학교 측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내게 전해줬다. 비마관(전자정보공과대학 건물)에 있는 청소노동자의 휴게실 환경을 개선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지난해 7월 "시민과 학생으로 찾던 공간을 노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서울노동권익센터의 '모여라! 서울노동체험원정대!'(청년노동교육프로그램 '나와 노동') 팀 소속 청년들이 광운대에서 청소노동자 체험을 했을 때였다.

나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새벽부터 청소를 함께한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우리의 믿음에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 약속은 구속력이 없었다. 말은 시간이 지나가면 증발하기 때문이다. 구두 약속 후 다섯 달가량이 지났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 약속의 주인공은 다른 부서로 갔다. 그사이 어느 누구도 휴게실 앞 자판기를 옮길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고작 휴게실 앞의 자판기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거였다. 창고 안에 있는 휴게실의 열악한 실내 환경을 바꿔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청소노동자들이 유독 자판기에 민감한 이유는 뭘까.


자판기가 비마관 휴게실의 벽이기 때문이다. 동전이 들어가고부터 음료가 나오는 순간까지 모든 소리가 휴게실로 고스란히 들려온다. 그야말로 '소음의 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판기 2대는 휴게실 앞에 당당히 서 있다.

가장 후미진 곳, 거기가 이들의 쉼터

비마관(전자정보공과대학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계단 밑 창고다. 바로 앞을 보면, 자판기가 있다. ⓒ 김동수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쓰는 휴게실 대부분은 최악의 공간이다. 쉼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건물에 있든지 하나같이 비슷한 구조다. 가장 후미진 곳에 있다. 휴게실 가는 길은 항상 미로 같다. 광운대 안에서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마도 선배들 본인뿐이지 않을는지. 본인들도 헛갈릴지 모르겠다.

중앙도서관, 비마관, 연구관(정보과학교육원 건물), 화도관(대학본부 건물)에 있는 휴게실은 모두 계단 밑 창고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천장을 타고 청소노동자에게 전해진다. 계단의 경사진 공간은 앉은키 정도의 높이다. 그 안에서 일어서는 게 불가능하다. 특히나 화도관 쉼터는 다른 곳보다 더 심각하다.

화도관 휴게실은 건물 1층 맨 끝에 우두커니 자리를 잡은 철제 벽 안이다. 문을 열면,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선배들이 사용하는 각종 물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하지만 그곳은 청소노동자들이 피로를 푸는 데가 아니다. 청소도구나 가전제품을 놓는 곳이다. 선배들의 쉼터는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있다.

휴게실 안에 또 다른 공간이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스티로폼이 문 역할을 하는 데가 바로 청소노동자들의 쉼터다. 제대로 갖춰진 문조차 없는 곳이다. 밖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스티로폼이 홀로 막는다. 스티로폼 문을 열면 찬바람이 솔솔 들어간다. 내부는 정말 토굴이나 다름없다. 휴게 공간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바로 스티로폼이다. 철제 벽이 화도관 쉼터의 열악한 상황을 가려주는 것 같다.

화도관(대학본부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계단 밑에 있다. ⓒ 김동수


화도관(대학본부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사방을 둘러 봐도 서 있을 공간이 없다. 토굴 같은 곳이다. ⓒ 김동수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허리를 강제로 숙인 채 기어가야 한다. 바닥과 천장의 간격은 좁기 그지없다. 내 앉은키가 바로 천장의 높이다. 사방을 둘러 봐도, 서 있을 공간은 없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다 보면, 천장에 머리를 찧기 마련이다. 사람이 들어갈 공간인지 의심될 정도로 열악하다. 같은 건물에 있는 총장실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옥의관(자연과학대학 건물) 휴게실은 맨 꼭대기 층의 물탱크실에 있다. 동아리방이 있는 복지관 휴게실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옥의관은 물탱크 옆에 청소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이 자리한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옥의관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음의 진원은 바로 물탱크다. 외관상 물탱크실에 청소노동자들이 붙어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옆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쪽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잘못하면 물 맞기 딱 좋은 데다.

옥의관(자연과학대학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물탱크실 안에 있다. 단열이 되지 않는 곳인 만큼, 외풍이 심하다. 의지할 건 바닥에 깔린 온돌뿐이다. 그러나 온돌 난방이 외풍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 김동수


옥의관(자연과학대학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물탱크실 안에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주변에 물이 뚝뚝 떨어진다. ⓒ 김동수


어설프게 닫혀 있는 창문은 단열이 되지 않을 만큼, 낡아 있다. 창문틀 사이로 바람이 쌩쌩 들어온다. 외풍이 매우 심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청소노동자들이 기댈 건 바닥에 깔린 온돌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닿는 데만 따뜻하다. 나머지 부분은 외풍의 영향으로 추위에 떨어야 한다. 온돌이 쉼터 전체를 데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온돌 난방이 외풍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난방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공간의 비애다.

다른 곳들도 상황이 열악한 건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휴게실이 한 사람 누우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비좁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갖는 건 사치다. 어느 공간이든 부족한 부분이 하나씩은 꼭 있다. 성한 공간이 주어진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 정도다. 인간이 살기 어려운 공간이 청소노동자들의 쉼터로 제공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선배들은 아무 곳에나 방치된 상태다. 도대체 이게 사람 사는 공간인가.

물론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공간도 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서 '호텔'로 불리는 한울관(인문·사회과학대학 건물) 휴게실이 바로 그곳이다. 한울관 쉼터는 원래 교수 연구실이었다. 하지만 기계실이 들어서고부터 이곳은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로 탈바꿈됐다. 아마도 기계실의 소음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청소노동자들은 어부지리로 온전한 공간이 생겨났다. 모든 시설이 갖춰진 유일한 휴게실이다. 기계실이 없었다면 한울관 청소노동자들도 여전히 열악한 공간에서 휴식 시간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상황이 열악해도 청소노동자들은 휴게실 교체를 마음 놓고 주장하지 못한다. 혹시나 더 나쁜 곳으로 쫓겨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열악한 환경에서 불편한 생활을 감수한다. 누군가가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보고 "불편하지 않냐?"고 질문했을 때 선배들이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건 혹시나 더 열악한 곳으로 이동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을 숨기는 거짓말일 것이다.

위생시설이 없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연구관(정보과학교육원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 2층 계단 바로 밑에 있다. ⓒ 김동수


"휴게실에 있는 생활용품들은 대부분 우리가 구해서 쓰는 거예요."

휴게실마다 있는 냉장고는 학교가 지급해준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참빛관 청소노동자들은 교수가 버린 냉장고를 주워 썼다. 누리관 청소노동자들은 각자 돈을 모아 중고 제품을 하나 들여왔다. 다른 데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직도 냉장고가 없는 곳도 있다. 얼마 전까지는 연구관의 휴게실도 마찬가지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그냥 창고였다. 그래서 전기포트에 물 한 번 끓이려면 밖으로 무조건 나가야 했다. 콘센트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관을 쓸고 닦는 선배들은 지난 5년 동안 전기 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 연구관 휴게실에 냉장고를 들여놓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냉장고가 없는 현실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특히나 여름이 고역이었다. 이를테면 싸온 도시락이 쉬는 경우가 발생했다. 너무 변질돼서 밥을 못 먹을 때도 있었단다. 음식의 부패 속도를 최대한 막으려고 소형 아이스박스를 챙기는 건 기본이었다. 눈물겨웠다. 그래도 겨울은 날씨가 차니, 밖에 음식을 내놓으면 괜찮았다.

연구관 선배들은 정말 척박한 환경에서 생활했다. 청소노동자들이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실에도 아무도 청소노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연구관은 냉장고가 없어서 음식을 보관할 때도 없잖아요. 쉰 음식을 먹다 배탈이라도 나면 책임질 건가요?"

정말 오랫동안 사정을 하니, 지난해 여름이 다 지나서야 현장 소장이 전기 배선을 설치해줬다. 힘들지 않은 작업이었다. 업체가 이 쉬운 일을 외면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수년 동안 고생해야 했다. 노조가 없었으면 꿈도 못 꿨다.

연구관(정보과학교육원 건물)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전기가 들어온 지는 얼마 안 됐다. 지금도 전압이 낮아서 전기가 끊길 때가 종종 있다. ⓒ 김동수


전기가 휴게실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선배들은 중고 냉장고를 구입했다. 비용은 3명이 갹출했다. 이제는 음식이 쉬는 걸 걱정하지 않게 됐다. 물도 휴게실 안에서 손쉽게 끓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전압이 낮아서 전기가 끊길 때가 많다. 애초에 사람이 살기 힘든 공간을 학교가 제공한 탓이다. 지하 2층의 계단 밑 휴게실은 청소노동자가 쉬는 데에 부적합하다.

"청소를 하면 기본적으로 땀을 흘리잖아요. 더러운 것도 많이 만지고요."

여름을 생각하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육체를 자주 쓰는 선배들은 그야말로 땀과의 전쟁을 한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마찬가지다. 오물과 마주하는 건 기본이다. 위생상 샤워시설이 필요한 이유다. 땀과 오물에서 자유롭지 않은 작업복을 청결하게 세탁할 시설도 없다. 청소노동자들에게 샤워·세탁 시설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없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제9항과 동법 시행규칙 제30조의5를 보면, 광운대는 청소노동자들이 세탁·샤워 시설을 이용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그런데도 노동법은 무용지물이 됐다. 사실상 벌칙 규정이 없는 공허한 문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청소노동자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조건이 상실됐다.

중앙도서관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1층 계단 밑에 있다. 휴게실 내부의 천장 높이는 앉은키 정도다. 위생시설을 설치할 공간도 부족한 지경이다. 휴게실 안에 위생시설이 없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 김동수


이제는 작업복과 평상복을 구분할 옷장을 요구하는 것도 사치다. 벽에 박힌 못이 옷장이다. 그래서일까. 못에 작업복과 평상복이 뒤섞여 걸린 게 눈에 자주 띈다. 벽은 온통 옷으로 도배됐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

대부분은 창고 같은 공간을 개조한 거라서 시스템 냉난방기는 엄두도 못 낸다. 시스템 냉난방기가 설치된 휴게실은 한울관뿐이다. 물론 교수나 교직원,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시스템 냉난방기가 대부분 설치된 상태다.

현재 선배들이 사용하는 가전제품도 모두 필요한 걸 스스로 구해 놓은 것이다. 필수비품을 구비하는 건 결국에 청소노동자들의 몫이다. 학교는 창고 같은 곳을 휴게실로 만들어준 게 전부다. 광운대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일까. 청소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매일 열악한 상황과 마주한다.

"여기가 휴게실이에요?"

"우리는 가장 낮은 존재예요. 조선시대에도 청소하는 사람들은 노비였을 거예요. 우리 이마에도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힌 것 같아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은 왜 대부분 '밑바닥 공간'일까. 청소가 '밑바닥 일'이란 생각 때문일까. 광운대 안에 '눈에 띄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것 같다.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최수연 분회장이 이야기하듯 '주식회사 광운대'의 계급 구조상 최하층이라 느껴진다.

"꼭 두더지 같아요. 후미진 공간에서 아무도 못 보게 숨어 있어야 하잖아요."

대학 구성원들이 휴게실에서 하루만이라도 생활해보면,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을는지. 청소노동자들은 매일 겪어야 하는 지독한 현실이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 개선돼야 하는 시기다.

노동법을 보면, 사업을 도급하는 자는 노동자에게 위생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용역업체와는 이미 "안전하고 편안한 휴게시설"의 제공을 단체협약으로 합의한 상태다. 학교 관계자는 비마관 휴게실에 있는 "자판기를 옮겨준다"고 구두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다. 이 문제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계속 무시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실이 광운대 한 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은 다른 대학 청소노동자들도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 사회가 육체노동자를 대하는 모습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아닐지.

학생들이 비마관 휴게실을 처음 봤을 때의 표정을 나는 기억한다.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한 학생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질문했다. 어느 때보다 슬픈 물음이 지금까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여기가 휴게실이에요?"
#청소노동자 #광운대 #휴게실 #위생시설 #광운대 청소노동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동자의 삶을 그리는 기록노동자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재해, 사고, 폭력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2. 2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3. 3 '한국판 워터게이트'... 윤 대통령 결단 못하면 끝이다
  4. 4 "쓰러져도 괜찮으니..." 얼차려 도중 군인이 죽는 진짜 이유
  5. 5 이러다 나라 거덜나는데... 윤 대통령, 11월 대비 안 하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