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검사실수술 후 2번째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강상오
시간은 어느 덧 흘러 6개월 만에 병원 가는 날이 다가왔다. 한창 치료를 받을 때는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스케줄을 잊어버릴 일이 없었는데 최근엔 6개월마다 한 번씩 병원을 다니다보니 다음번에 병원에 가서 어떤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잘 잊어버린다.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은 병원비 영수증 옆에 다음 진료 예약증이 함께 붙어서 나온다. 그 예약증을 찢어서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고 있다. 이번 예약은 2월 25일 오전 10시 30분이고 비고란에 2월 18일 '채혈'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통 채혈을 하고 나면 1시간 정도만에 바로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진료 당일 채혈을 했었는데 이번엔 일주일전에 채혈을 해야 하는걸 보니 뭔가 다른 검사가 있었던것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채혈을 하러 병원을 가기 이틀전에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예약 내용을 확인하니 '초음파 검사'가 예약돼 있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가 오전 9시 15분까지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안내해줬다. 6개월 만에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내가 아직 고위험군의 '중증환자'라는 사실을. 이번에 초음파 검사를 하면 수술하고 두 번째로 받는 초음파 검사가 된다.
나는 갑상샘에 3cm 크기의 악성 종양을 발견했고 갑상샘을 모두 드러내는 전절재 수술을 받았다. 갑상샘과 함께 전이가 의심되는 24개의 림프절을 함께 제거했고 조직검사 결과 그중 7개의 림프절에서 전이가 발견됐다. 추가로 있을지 모르는 전이 병소를 치료하기 위해 '방사성 요오드 치료'도 진행했다.
그로부터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병으로 인해 나의 인생이 달라져 그 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요즘엔 술자리에도 자주 참석하고 내가 병을 앓기 전처럼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도 접하면서 지내고 있다. 치료가 한창 진행되던 당시엔 절대 그러지 않았는데 시간은 인간을 참으로 무디게 만드는 것 같다.
잠시 내가 고위험군의 중증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다 몇 달 만에 병원갈 때가 되면 다시 긴장된다. 특히 이렇게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할 때면 괜스레 아무것도 없는 목 아래쪽을 거울에 비춰보며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나처럼 한번 암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평생 이런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게다.
평소 나는 오전 9시에 기상해 조그만 내 작업실로 10시에 출근을 한다. 그런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가 아침 일찍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까지 가야 하는 날이면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일찍부터 일어나 졸린눈을 부비며 병원에 간다. 이렇게 생활 패턴이 갑자기 바뀐 날이면 그날은 물론이고 그 다음날까지도 몸이 아주 피로하다.
아침에 졸린 눈을 부비며 병원으로 갔다. 오랫만에 도착한 병원 주차장은 언제나처럼 만원이었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일찍 서둘러 왔기에 늦지 않고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초음파 검사실 앞에서 점퍼를 벗고 내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렸다. 언제나 대학병원에 오면 '아픈 사람들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들중에 한명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환자들이었고 그 들 사이에 내가 끼어있으면 '젊은 사람이 어쩌다…'와 같은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초음파 검사실 안은 어둡다. 그래서 왠지 더 음산한 기운이 돈다. 검사 장비 옆에 있는 침대에는 베개가 하나씩 놓여져 있는데 갑상샘 초음파 검사를 할 때는 베개를 머리가 아닌 어깨에 베고 누워 머리가 최대한 뒤로 젖혀지게 눕는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냅킵을 목 셔츠 안에 꽂듯이 키친타월 같은 종이를 티셔츠 목 안으로 넣어 검사 준비를 한다.
초음파 검사 장비를 목에 가져다 대면 끈적한 점액이 검사 장비와 함께 피부에 닿는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 검사를 받았지만 여전히 그 느낌은 적응이 잘 안 된다. 초음파 검사를 받는 5분여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진다. 검사기를 목에 가져다 대면 모니터 화면에 내 목 안쪽이 보인다. 동그란 구멍이 뻥뻥 뚫린, 달의 표면과 같은 화면이 보였다.
초음파 검사를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으셨냐'고 물으셨다. 내 목 안쪽이 그렇게 달 표면처럼 구멍이 뚫린듯한 모습을 한게 방사성 요오드 치료로 인한 자국인듯 했다. 그리고는 이내 수술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별 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단지 수술할 때 함께 절개했던 오른쪽 귀 아랫부분 '피지선'에 또 0.5cm가량의 피지선이 보인다고 하셨다.
8년 전 즈음 오른쪽 귀 아래에 있는 피지선이 점점 커져서 고름이 가득찬 '화농'이 됐다. 턱이 엄청 부풀어 오르며 통증이 심해졌고 급하게 동네 병원에 가서 절개를 하고 고름을 짜냈다. 그렇게 한 달간을 매일 소독하러 다니며 고생을 했다. 하지만 완치는 되지 않았고 2년만에 똑같은 부위에 또 고름이 차서 절개를 해야 했다.
두 번의 절개를 했는데도 이후에 계속 같은 부위에 조그만 '몽우리'가 만져졌다. 그리고 그 몽우리는 갑상샘암 수술을 할때 뿌리를 뽑자면서 함께 제거됐다. 그렇게 8년동안 나를 괴롭히던 녀석인데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또 자라나고 있었다.
혈액검사 결과를 보던 교수님의 한마디 '약 잘 안먹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