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짠맛' 모르는 사람들, 안타까울 뿐이다

[류외향의 자연주의 음식과 삶의 이야기 ⑮] 요리는 상상력이다

등록 2016.03.28 11:08수정 2016.03.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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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 원종훈씨는 짜장면집 8년 만에 요리에 득도를 한 듯하다. 생전처음 해보는, 어떤 경우에는 먹어본 적도 없는 메뉴도 인터넷에 널린 요리 동영상 한두 개 보고 나면 금방 따라한다. 이런저런 재료를 갖다 놓고 눈대중, 손대중으로 집어넣고는 휘리릭 섞어 뚝딱 완성하는데, 심지어 맛도 보지 않고, 접시에 담아 내어놓는다.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진짜 다 된 거야? 간이라도 좀 봐야 되는 거 아냐?"라고, 내 깜냥에는 서당개 8년 차랍시고 알은 척을 하지만…. 남편의 귀에는 그저 가당치 않은 참견에 불과한 소리다. 남편은 그때마다 경상도 억양의 명언을 날리신다.

"맛은 정해져가 있다."

이게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8년 차 서당개의 식견으로 풀이를 하자면 이런 소리다. 맛은 단맛, 짠맛, 신맛, 감칠맛 그리고 때로는 쌉싸름한 맛의 어우러짐에 의해 결정되므로 저마다 다른 풍미를 가진 식재료에 설탕, 간장, 식초, 고춧가루 등의 네 가지 양념을 황금비율로 섞으면 혀로 검증하지 않아도 어떤 맛인지 다 안다는 뜻이다.

식재료의 구성을 보면 머릿속에 맛의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는 뜻이다. 나는 그럼에도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접시를 받아드는데…, 먹어 보면 놀랍게도 맛있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그런 맛이 난다. 그때의 느낌은 마치 선물상자를 받아들고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하다 뚜껑을 딱 열었을 때, 시선이 그 선물에 내리꽂히는 그 순간의 느낌과 같다.

요리에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능력


서당개가 8년이 된들 무엇 하고, 10년이 된들 무엇 하겠는가! 많은 분야가 그렇지만, 요리 역시 타고나야 한다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역시 많은 분야가 그렇듯이 사람은 노력하는 만큼 성장하고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타고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천재성이 어느 순간 발현되기 시작한다. 내 남편은 요리를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맞는 말 같다. 예술을 노력만으로 할 수 없듯이 요리도 그러하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상상력이고, 요리도 그러하다.

'요리는 상상력이다'라고 한다면 나처럼 요리에 젬병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인데,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식재료와 양념의 황금비율 맛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능력은 타고난 요리사에게는 기본적인 자질이다.

그러니 맛을 상상하고 상상한 대로 실현하는 능력을 가진 요리사를 예술가라 칭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냥 예술도 아니고 종합예술이라고 했는데, 식자재를 다듬는 일부터 빠르고 정확한 칼질과 리듬감 있게 웍을 돌리는 몸의 움직임에 눈과 코와 귀로 맛을 느끼는 다차원적인 감각 기능까지 총동원되는 바, 이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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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주도로 간 도시 남자들>에 나온 남편의 요리하는 사진은 진정 예술가스럽다. ⓒ 류외향


남편 자랑이 너무 심했다. 아내가 하는 남편 자랑이라 제 눈에 안경이요, 가재는 게편이요,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는 격이라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와서 드셔 보시라. 짜장면·짬뽕도 좋지만, 코스 요리를 먹어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요리계의 마술가루인 MSG를 포함한 인공조미료 한 톨 들어가지 않고 그저 천연 설탕, 간장, 식초, 고춧가루의 조합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먹으면 누구든 '엄지 척'이다.

우리 게으름대마왕 남편님은 요리할 때만은 재바르고 날렵하다. 요리가 생업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쉬는 날 아침 일찍 혼자 일어나 김밥 싸는 부지런함을 보면 그에게 요리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른바 플레이팅 감각이 좀 떨어진다. 우리말로 하면, '그릇 담기'쯤 되려나. 짜장면이나 짬뽕, 탕수육은 예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이 푸짐하게 담아주면 먹어주는 메뉴인데, 중식 요리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코스 메뉴는 좀 예쁠 필요가 있다.

다른 맛들이 죽어가는 음식 문화

일곱 가지에서 아홉 가지의 요리가 나가므로 접시에 담아내는 각 요리의 양은 조금씩이다. 그릇 담기 기술은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양이 적어 빈약해 보이는 것을 어떻게 빈약하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서양 요리의 플레이팅으로 정착이 된 게 아닐까 싶다.

하여 남편이 코스 요리를 할 때면 나는 옆에 꼭 붙어서 요리에 맞는 그릇을 딱딱 대기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접시에다 담아 버린다. 요리에는 젬병인 나는 의외로 그릇 욕심이 많다. 예쁜 그릇을 고르는 재미가 어찌나 좋은지, 필요가 없을 때도 그릇 코너에 가서 눈요기라도 실컷 한다. 서양 요리처럼 너무 많은 꾸밈은 오히려 요리의 진가를 해칠 수 있으므로 알맞게 예쁜 그릇에 잘 담아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까만 깨를 뿌리거나 색색의 고명을 얹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족하다. 시각적인 만족도를 미각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만한 낭패도 없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맛이다.

맛이란 무엇인가? 음식은 짠맛, 단맛, 신맛, 감칠맛의 어우러짐으로 사람의 입맛을 충족시키며, 그 중에서도 맛이 좋다, 나쁘다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칠맛이다. 감칠맛은 다시마와 멸치, 토마토에 많이 든 L-글루탐산나트륨과 가다랭이에 많이 든 이노신산, 버섯에 많이 든 구아닐산 등이 가지고 있는 제5의 맛이다.

그럼에도 감칠맛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기본적인 4가지 맛인 짠맛, 단맛, 신맛, 쓴맛은 그 느낌이 명확하지만, 감칠맛은 그러기엔 복잡미묘한 무엇임이 틀림없다. 사전을 찾아보니,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이 이렇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드물다. 아무튼 감칠맛은 흔히 우리가 무엇 '땡긴다'라고 표현하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맛이 분명하긴 한 모양이다.

이 감칠맛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L-글루탐산나트륨을 추출하여 'MSG'라는 상품이 만들어졌고, 여러 상표를 달고 근현대 음식문화사를 주름잡아왔다. 여기서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천연재료 속에서 다른 영양분과 연결되어 복합체로 존재하는 MSG와 그 복합체에서 똑 떼어져 유리된 분자로 존재하는 인공조미료 MSG는 그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인공조미료 MSG는 혀에서 맛을 느끼는 부위인 돌기를 흥분시켜 뇌를 자극한다. 그 결과, 도파민을 생성시켜 기분을 좋게 만든다. 즉, MSG는 뇌 흥분독소이며, 뇌 흥분독소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치매, 다발성경화증, 루프스 등의 뇌 손상을 가져온다. 그 외에 망막세포를 손상시키고, 부신 건강을 해치고,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대사증후군을 일으키고, 췌장도 상하게 만든다는 의학 논문들은 덤이다.

두 번째 문제는 점점 강력해지는 감칠맛 때문에 다른 맛들이 죽는다는 점이다. 감칠맛이라는 게 단지 MSG의 맛만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여러 풍미가 고루 섞여야 진짜 고급 감칠맛이 나는 건데, 요즘 저잣거리의 맛은 정제 MSG 맛과 정제 단맛밖에 없는 듯하다. 이 두 가지 맛은 서로 상승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음식문화가 갈수록 천박해지고, 그에 따라 입맛은 가난해지고, 건강은 심각하게 악화되어 간다. MSG가 얼마나 맛을 단순하게 획일화하느냐는 그것이 짠맛조차 삼켜버리는 것을 보면 확연해진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자료는 우리에게 없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우리는 이것을 안다.

미각을 잃어버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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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인공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자연주의 중식 요리. 남편은 눈대중과 손대중만으로도 최고의 맛을 이끌어낸다. ⓒ 류외향


평택에서 영업을 할 때, 맛은 있는데, 짜다는 평을 내리는 손님들이 종종 있었다. 초기에는 우리 입맛이 너무 짠가? 실수로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짜게 먹는 편도 아니고, 간수 잘 빠진 고급 천일염을 한 그릇 당 티스푼 1/3 정도밖에 넣지 않는다. 멸치육수가 기본적으로 짠맛을 내기 때문에 별도로 넣는 소금의 양은 아주 작다. 멸치도 계절마다, 품질마다 짠 정도가 달라지고, 멸치를 잡아서 말리는 업체에서 사용하는 소금의 양도 다르므로 매번 육수 맛을 먼저 보고 그게 맞춰 소금의 양을 결정한다.

그들이 느끼는 과도한 짠맛은 결국 미각의 상실 때문이다. 오랜 세월 인공조미료에 길들여지면서 진짜 짠맛에 대한 미각을 잃어버린 탓이다. 그들이 짜다고 말한 그 짜장면이나 짬뽕에 MSG 몇 톨만 넣어도 짠맛은 마법처럼 사라진다. 감칠맛에 의해 진짜 짠맛이 중화돼 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크면 클수록, 고급이면 고급일수록 소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공조미료만 있으면 짠맛까지 다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글루탐산나트륨에 이미 존재하는 나트륨 성분 때문인데, 나트륨과 염화나트륨은 다르고, 수많은 미네랄과 복합체로 존재하는 천연 염화나트륨인 천일염과 정제 염화나트륨인 정제염 또한 다르다. 나트륨에 익숙한 혀는 미네랄 풍부한 천연 소금의 짠맛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미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는 뜻이다. 우리 가게에 온 손님들의 반응을 보면 그가 현재 얼마나 건강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가 있다. '맛있다'는 평을 아끼지 않는 손님들에겐 건강해서 그러신 거니, 건강검진 따로 안 받으셔도 된다고 칭찬해준다. 그 반대의 경우, '맛없다'는 말은 못하고 보통 '제 입맛에는 좀 안 맞네요'라거나 '맛이 특이하네요'라며 왕창 남긴다. 그럴 때는 '건강이 많이 나쁘신 것 같으니 몸 관리 좀 하셔야겠어요'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만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가장 안타까울 때가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삼대가 와서 많이 남기고 가는 경우이다. 병의 가족력이란 유전의 문제가 아니라 식생활의 문제다. 같은 음식을 먹은 몸은 같은 미각을 가지게 되고, 병력도 비슷해진다. 자연주의 식단을 통한 밥상 재건 프로젝트가 절실한 때다. 잃어버린 미각을 찾아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제매거진 <이코노믹리뷰>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이야기는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으며, 현재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은 평택이 아니라 제주도 화순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연주의식당 #착한식당 #마라도에서온자장면집 #NOMSG #N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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