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곽노현 전 교육감, 사단법인 이사장 되다

[참가기] 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새로운 교육 운동의 출발이 되길

등록 2016.03.28 21:21수정 2016.03.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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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에 2012년 5월 어느 수요일 오후였습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곽노현 교육감이 재직하던 그때, 사무실 벽시계가 오후 5시 30분을 가리키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구내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아, 아... 이거 지금 되는 거예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뜬금없는 '방송사고'. 적막 속에서 근무하던 사무실 내 교육청 공무원들이 일하던 손길을 멈추고 모두 구내방송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들려온 낯익은 음성.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저, 교육감 곽노현입니다."
"아..."

직원들 사이에서는 짧은 경탄과 반가움, 그리고 의외의 상황에 놀라는 복합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생긴 이래 '서울의 교육 대통령'이라 불리는 교육감이 구내 방송 마이크로 등장하는 사례를 본 적 없기 때문입니다.

'시 읽어주는' 교육감, 곽노현의 낭만

교육청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발생한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교육감님이 직접 마이크까지 들고 구내방송에 등장한 것일까. 사람들은 순간 '두런두런'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곧 이어진 곽노현 교육감의 말씀.


"교육감이 구내방송을 해서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자주 좀 뵙고 해야 하는데, 사정상 그렇지 못해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고생하시는 여러분께 시 하나 낭송해 드리고 싶어 이렇게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 같은 곽노현 교육감의 뜬금없는 말씀에 순간 직원들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 사라지고 얼굴에는 미소가 일었습니다. 교육감이 구내방송에 등장하는 특이한 사건 앞에서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일순 긴장했다가 약간은 황당한 결말에 웃음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곽노현 교육감의 시 낭송. 이날 곽노현 교육감은 시인 김부조님의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를 낭송했습니다. 저 역시 그날 처음 들어보는 시였지만 참 좋았던 느낌을 잊을 수 없어 그 시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 ​

"이제 날도 저무는데, 번지 없는 허공을 돌아 나오다 막다른 궤적에서 무너지는 새들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바람 잘 날 없는 숲 속에서, 상생을 위한 뿌리를 내리다 목마른 침묵으로 시드는 나무들아. 너희들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각본 없는 하루를 따라나서, 차가운 세상에 시린 등만 내주다 서둘러 속울음을 배워버린, 너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날도 저무는데 우리 모두 집으로 가자. 따뜻한 집으로 가자."
- 시인 김부조,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잠시 후 곽노현 교육감의 시 낭송이 끝나자 또다시 직원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작게 박수를 치며 웃기도 했지만 "구내방송으로 뜬금없는 시 낭송을 하다니 뭐야" 하는 어색한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다시 곽노현 교육감의 말씀이 구내방송의 스피커를 통해 이어졌습니다.

"교육감이 왜 저러나 당황스러우셨죠?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수요일은 정부가 '가정의 날'로 지정한 야근 없는 요일입니다. 그런데 여러 업무로 바빠 수요일에도 늦게까지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만은 야근하지 마시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셔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라는 의미에서 시를 한 편 골라 봤습니다."

아. 그제야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또 이어지는 방송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도, 이 방송을 마치는 대로 퇴근을 하겠습니다. 교육감인 저부터 퇴근을 할 테니 오늘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마시고 바로 퇴근하셔서 모두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서울 교육도 행복하고 건강하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일화는 이후 서울특별시 교육청 내에서 작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교육감이 직접 구내방송을 했다는 사실에 교육감에 대한 신뢰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이후 '시 읽어주는' 낭만적인 교육감 때문에 행복하다는 여직원들도 적지 않게 봤습니다.

이러한 직원들 사이에서 긍정적 영향 덕분에 이날 이후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30분이 되면 '시를 읽어주는 방송'이 정착되었습니다. '나도 시를 낭송하고 싶다'는 직원의 자율적인 신청을 받아 시를 한편씩 낭독한 후 '가정의 날'을 안내하는 구내 방송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이러한 곽노현 교육감은 안타깝게도 4년의 임기를 채 마치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게 됩니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입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를 두고 무모한 주민투표를 강행했고, 그 결과 주민투표가 무산되면서 곽노현 교육감이 '정치적 승리'를 얻자 이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후 유무죄에 대한 치열한 법적 논쟁 끝에 결과는 '권력을 쥔 자가 원하는 결론'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에 따라 곽노현 교육감은 수감 생활을 겪어야 했고, 그가 꿈꿨던 '문예체 중심의 새로운 서울 교육' 역시 그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좌절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재직 기간에 곽노현 전 교육감이 남긴 서울 교육의 변화는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학부모라면 누구나 반기는 혁신학교를 서울교육에 뿌리내리게 한 성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그리고 '국영수' 중심의 교육을 '문예체' 중심으로 바꾸는 개혁 노력은 큰 성과로 평가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중단된 교육 개혁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 곽노현 전 교육감이 다시 나섰습니다. '고동치는 민주주의', '춤추는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새로운 교육공동체를 출범한 것입니다.

징검다리 교육감,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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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출범식에 축하해 주기 위해 참여한 분들로 열기가 뜨겁다. 앞 자리에 박재동 화백이 보인다. ⓒ 고상만


지난 3월 26일, 서울 종로구 글로벌센터 9층 국제 회의장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비영리 사단법인인 '징검다리 교육공동체'가 출범하는 행사였습니다.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을 비롯하여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유명 시사 만화가인 박재동 화백 등 약 400여 명의 교육 관계자 및 일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이 날의 출범식에서 곽노현 전 교육감은 초대 이사장으로 첫 출발을 알렸습니다.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는 모두 5개의 센터를 두고 활동하면서 향후 ▲ 학생·학부모·교사·일반인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인성교육·문화예술교육 ▲ 전문성 향상을 위한 학습 공동체 운영 ▲ 연구조사·정책개발 ▲각종 간행물 발간·방송제작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특히 '징검다리 교육공동체'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려는 사업은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협약'입니다. 많은 분에게 명칭도 생소한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1976년 체결된 독일 학교의 정치 교육에 관한 협약을 의미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그동안의 잘못된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징검다리 교육공동체'가 바로 그 실천적 교육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 나선 것입니다.

이외에도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는 역점 사업으로 ▲ 민주시민성(교육) 지표 개발 ▲ 헌법교육 대중화 ▲ 민주시민교육 전문방송 운영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당면한 정치상황과 자신의 입장을 분석함으로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 운동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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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출범식이 열리는 행사장 앞에서 이날 이사장으로 시작을 알린 곽노현 전 교육감과 함께 기념 사진. ⓒ 고상만


이러한 비영리 사단법인 '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출범에 대해 곽노현 초대 이사장은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춤추는 민주주의'를 향해 징검다리를 놓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가 방전된 우리사회를 학부모·교사·학생들의 민주 시민성으로 살려낼 한국 민주주의 충전 프로젝트에 함께 해달라"고 인사말을 통해 부탁했습니다.

참고로 사단법인의 이름이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로 만들어진 데에는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진보 교육의 다리를 완전히 놓지는 못했지만 1기 진보교육감 시대에서 2기 진보 교육감 시대로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는 놓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교육의 건너편으로 갈 수 있을까요?

'징검다리 교육공동체'가 그러한 역할을 해주리라 많은 분들이 성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응원하기 위해 정말 많은 분이 출범식에 함께했습니다. 이제 화답할 책임은 '징검다리 교육공동체'에 있습니다. 멋진 화답을 기대하며 '징검다리 교육공동체'의 발전을 응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대한민국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에게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는 문이 열려 있습니다. ‘징검다리 교육 공동체’와 함께하실 분들은 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사무국 Tel : 02-723-2468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다음카페 : http://cafe.daum.net/civiced
#곽노현 전 교육감 #징검다리 교육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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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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