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딴집 애들, 우리 애들은 흙이나 파고

마침내... 캠핑은 내 운명

등록 2016.04.17 19:53수정 2016.04.1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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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민기자로써 데뷔 기사는 다름 아닌 캠핑 이야기다. 처가 식구들을 따라 반강제로 끌려갔던 캠핑장에서 겪은 일들을 홧김에 썼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로 우연히 캠핑 관련 기사를 몇 개 더 쓰긴 했지만, 내게 있어 캠핑은 여전히 귀찮고, 번거로우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회가 동하지 않는 동시에, 가급적 미루거나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게 존재한다. 두 아들을 가진 아빠로써, 터닝메카드 다음 소원이 캠핑이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과 바람을 무시할 만큼, 나는 무정한 사람이 아니다. 몸만 들러붙는 캥거루 캠핑족에서, 직접 망치를 들고 텐트에 고정팩을 때려 박는 순혈 캠핑족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캠핑 좀 다녀봤다는 직원의 도움으로 중고나라에서 텐트와 타프(그늘막)를 구입했다. 며칠을 폭풍검색해서 내게 추천해 준 장비들이라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시가 100만 원 상당의 텐트와 타프를 현금가 60만 원에 구입해놓고 보니 희비가 교차했다. 정말 싸게 잘 샀구나라는 기쁨과 동시에…. 이제, 진정 빼도 박도 못하는 구나라는 후회가 겹쳐 혼란스러웠다. 허나, 님은 이미 그 강을 건넌 뒤였다.

남자들은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보이스카우트'를 거치고, 교련과 기술공업 시간에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몸에 익혔을 것이라고 대단한 착각들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보이스카우트란 소수 부유층 자제들에게 주어진 선택지였고, 교련 시간 동안에는 땡볕에서 제식훈련만 교련복이 헤질 때까지 반복하며, 기술공업 시간에는 망치질이나 불 피우는 법 대신 평생 들여다볼 일이 없는 4기통 엔진에 대해 암기한다는 진실은 늘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순조로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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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첫 오토캠핑 시작은 아이들과 더불어 의욕이 넘쳤다. 태풍같은 강바람이 불기 전까지. ⓒ 이정혁


매듭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하는 나를 위해, 중고나라를 뒤져 득템하게 해준 직원이 끝까지 도움을 준다. 집 근처 야영장에서 텐트와 타프 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평소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생활하는 나를 잘 알기에 누구나 손쉽게 칠 수 있는 텐트를 선택해줬다고 한다. 실제로 하나씩 배워가며 텐트를 치다 보니 겨우 15분 만에 완성되는 게 아닌가? 텐트보다 어렵다는 타프까지 세워 올리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캠핑장 예약하라고 큰소리 뻥뻥 쳤다. 하루 만에 예약 완료로 답하는 아내의 표정은 썩 미더워 보이진 않았다. 원래 계획은 아내에게 1박 2일간 자유 시간을 주고, 아들 둘만 데리고 떠나는 삼부자 캠핑이었지만, 숙달되기 전까지만 동반해달라고 아내에게 사정했다.

캠핑 날짜가 잡히자 갑자기 사야 할 용품들이 늘어났다. 접이식 의자부터 바비큐 그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해먹까지. 머릿속에 필요한 장비들이 하나둘 늘어나자 다시금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걸 언제 차에 실어서, 언제 다 폈다가, 언제 다시 챙겨서 돌아온단 말인가? 텐트를 샀다는 말 한마디에 초롱초롱해지던 두 아들의 눈망울이 생각났지만, 짐 옮기다가 허리라도 삐끗하면 가장이 쓰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하므로 짐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직화구이라는 게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특히나 중국산 숯에서 나오는 연기에 미세먼지 1000배쯤 되는 발암물질이 섞여 있는 사실을 아는지 부연 설명을 해가며 그릴 대신 집에 있는 휴대용 버너와 불판을 가져가기로 했다. 해먹은 잘못해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고, 해먹을 묶어둔 나무들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며 아이들의 순수함을 자극했다.

결국, 접이식 의자 네 개와 테이블 하나만 구입한 후 용감하게 캠핑장으로 향했다. 날씨는 오랜만에 봄기운이 만연했고, 낙동강변에 위치한 오토캠핑장 주변의 경관은 수려했다. 깔끔한 구획정리와 깨끗하게 청소된 화장실도 맘에 들었다. 1박 2일 사용료가 1만 5천원이면 시설 대비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본격적인 캠핑 철이 되면 예약하기 힘든 곳이라고 한다. 출발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역시 밖에서 먹는 고기는 육질부터 다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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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오토캠핑장.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그날은, 하필 첫 오토캠핑날이었다. 텐트 하나 치는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끙끙거렸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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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프라이 아래 옹기종기 바람때문에 타프는 도저히 불가능했고, 텐트 프라이 그늘 밑으로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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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구이는 몸에 해롭다 캠핑장에서 장작불을 피워 본 사람은 그 고통의 시간을 안다. 불 피우다가 당이 떨어져 쓰러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것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휴대용 버너와 불판을 챙겨 갔다. 물론 바람막이가 있을리 없다. ⓒ 이정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가에는 강바람이 불어온다. 거기에 봄바람까지 더해지면 땀을 단번에 씻어주고, 사람에 따라 옷깃을 여밀 필요가 있을 정도의 풍속이 된다. 그곳은 그런 곳이었다. 텐트가 주인보다 바람의 말을 더 잘 들었다. 날아가려는 텐트를 잡으면 낙하산처럼 부풀어 올라 씨름을 해야 했다. 결국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고, 1시간 만에 간신히 텐트를 쳤다.

아침 먹고 출발했는데 텐트를 치고 나니 허기가 졌다. 타프를 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텐트 프라이의 일부로 작은 그늘을 만들고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기로 했다. 만일 그때부터 숯불을 피워야 했다면 화를 버럭 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음에 만족하며 휴대용 버너에 불을 붙였다. 당연히 바람막이 따위의 소도구를 챙겼을 리 만무하다. 한 손으로 버너 케이스를 부여잡고 한 손으로 고기를 구웠다.

그래도 밖에서 먹는 고기맛은 육질부터 다르다. 이 맛에 캠핑을 오는 게지. 흡족해하며 점심을 먹고 나니 봄볕에 졸음이 밀려온다. 잠깐 졸다 눈을 떠보니 텐트 치느라 지친 아내는 구석에서 자고 있고, 아이들은 텐트 주변에서 돌멩이를 캐며 놀고 있다. '아뿔싸, 급하게 준비하느라 아이들 놀거리를 못 챙겨 왔구나.' 주변을 둘러보니 아빠와 공차기를 하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연을 날리는 아이들 모두 행복에 겨운 표정인데…. 흙 파고 있는 우리 아이들 얼굴에만 그늘이 진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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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의 아이들 아이들은 그저 밖에 나와 있는 것 만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뒤에 보이는 해먹이 부럽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 아빠의 일이다. 나무를 보호하기로 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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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보 오토캠핑장 전경 낙동강변에 위치한 오토캠핑장. 바람이 제법 부는 곳이다. ⓒ 이정혁


미안하지만 어쩌랴. 캠핑 초보 아빠의 한계인 것을. 몸은 게을러도 정신은 늘 낙관적이기에,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마음가짐으로 텐트를 다시 허물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더욱 알차게 준비해서 처자식들을 이리 방치하지 않겠다는 눈물 섞인 다짐과 함께 내가 총대 메고 준비한 우리집 1호 캠핑은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물론 그 순간에도 중고나라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이걸 확 팔아버릴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성의 없이 준비한 캠핑에도 감동받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야구공도 주고받고, 모닥불도 같이 쬐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이 한 몸 캠핑에 불사를 계획이다. 마침내, 캠핑이 운명처럼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말았다.
#오토캠핑 #타프 #보이스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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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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