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더민주와 문재인에게 등을 돌렸는가?

[주장] '문재인이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라는 표현은 유보해야 합니다

등록 2016.04.15 18:13수정 2016.04.1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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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투표일 전날 오후 7시 "새132, 더126, 국22, 정8, 무12(친여8+친야4)"의 스코어를 예상했습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 및 정치평론가들이 더민주의 100석 이하를 점쳤고, 100~120석 사이를 말한 곳도 거의 없던 가운데 이것은 모험이었습니다. 일개 필부에 불과한 저라지만, 페이스북 계정을 폭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험 부담을 느꼈습니다.

한편 새누리의 과반 붕괴를 예측한 곳도 몇 없었지만 저는 과반 붕괴가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실제 스코어는 제 예측치보다도 10석이 떨어졌네요. 더민주의 스코어는 (예측치-3석)이었습니다. 무소속 스코어도 친야 무소속은 숫자 및 지역구까지 다 맞추었고, 친여무소속 예측치는 1석만 차이가 났네요. 정의당의 스코어는 제가 지역구 및 비례에서 각각 1석씩 초과해서 예측했고요. 정의당 예측에는 그런 바람을 담아 보았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안 한) 것은 국민의당의 호남 석권이었습니다. 몇몇 신호들을 애써 무시하며 좋은 신호에 집중했고, 거기에 제 바람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론조사 기관이 25~40석을 말했고, 국민의당 스스로도 40석을 말했습니다. 또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제가 인용한 리서치뷰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이 차기 지지율 1등을 하지 못한 지역은 유이한데, TK 그리고 호남이었습니다.

호남은 안철수를 대선주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안철수보다도 뒤지는 결과인 안철수 28.5% > 문재인 23.4%가 마음에 걸렸었지요. 이 부분이 틀린 것은 아쉬우면서 또, 제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합니다. 왜 호남은 국민의당 석권을 허용하였는가?

문재인이 호남방문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면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반문 정서'가 확대재생산된 것은 2015년 2월 전당대회에서 박지원과 경쟁하면서부터입니다. 하필 호남 대 영남, DJ와 노무현의 비서실장끼리 대결한 가운데 박지원은 선거전 내내 '친노 패권주의'를 당내 구석구석 깊숙히 설파했고, 노무현 시절부터 '빽바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던 호남/호남출신 수도권 말단 당원들에게 이 전략은 주효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이 전당대회에서 승리하였으나 당심에서는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같은해 4월 재보선의 패배와 뒤이은 호남의원 중심의 문재인 흔들기를 통해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친노 패권'이란 흑색선전이 쌓이는 가운데 문재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광주를 방문하려는 시도는 무산되거나, 방문하더라도 제한적이었습니다.(이번 선거 5개월 전에 광주를 찾았을 때의 일정은 젊은층만 모이는 조선대 강연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 광주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이 자연스럽게 만난 것은 선거 직전인 지난 11~12일이 마지막이었다고 봐야겠지요. 총선 막판 문재인의 호남 방문은, 어느 정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흐름도 감지되었습니다만, 이내 "선거 되니까 표 구걸하러 온다"는 국민의당 막바지 프레임에 갇혀 버렸습니다. 상승세가 꺾였고, 그걸로 호남 선거는 끝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랫동안 '호남 여당'을 해온 더민주에 대한 호남민의 불만은 "선거 되니까 표 구걸하러 온다"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기사 뭐 이 말이 호남만 그렇겠습니까마는, 호남에서는 이게 유난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렇습니다. 88년 평민당 황색돌풍 이후 비아냥과 조소를 들어가며 꾸준히 90% 가량의 지지를 민주당에 보낸 호남민에게 누적된 불만은 '왜 호남은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해 주지도 못하는, 때로는 꽂아도 당선된다는 생각에 막대기를 공천하는 민주당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대의만으로 자동적으로 표를 주는 표 셔틀이 되어야 하는가?'였습니다.

대표적인 막대기는 현 광주광역시장 윤장현입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강운태, 이용섭 등 시민들에게 인지도도 높고 훌륭하다고 여겨졌던 후보군 대신 안철수 몫으로 전략공천된 그는, 시정을 사유화한다는 비판 속에 전국 모든 시도지사 중에서 지지도 꼴지를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윤장현이 당선되었을 때에도 당시 민주당(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선거 되니까 표 구걸"을 했고 그래서 광주시민들은 마음에 안 들어도 속아주는 셈 치고 뽑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때가 사실상 마지막이었습니다. 임계치가 넘었습니다. 싫지만 그렇게까지(대선 후보인 안철수 얼굴 봐 줘서) 당선시켜준 사람이 시정까지 말아먹으니 더 꼴보기 싫지요. (이번 선거에서 윤장현이 주군인 안철수를 따라 탈당했다면 선거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호남은 경우에 따라서는 무소속을 상당수 당선시키거나, 노동자 밀집지역도 아닌데 민주노동당을 2당으로 만들어주거나, 최초의 진보정당 지역구 재선의원을 만들어주기도 했고(김선동), 하다못해 그렇게 싫어하는 새누리당에게까지 기회를 주기도 하였습니다.(이정현) '호남여당 민주당'에 대한 심판은 이렇게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제대로 폭발한 것입니다. 휴화산이 활화산이 된 것입니다.

감격스런 DJ의 당선이 있었습니다. 김대중과 더불어 오랜 인고 끝에 민주정부를 세운 것만으로도 호남은 역사에 할일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타 지역 사람인 노무현에게 '노풍'을 만들어주었고, 역시 90% 가량의 지지로 참여정부라는 민주정부 2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서운한 것도 있었지만 참았습니다. 서운한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를(사과할 일이었느냐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듣지 못했지만, 더구나 그 서운한 것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또한 우리 동네 출신의 후보가 아닌데도, 어마어마한 중장년층 사이의 '박근혜 광풍' 속에서도,(아무리 호남이라도 중장년층에게 박정희 향수가 없었겠습니까?) 새누리 후보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마음만으로 또다시 90% 가까운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랬는데 졌습니다. 이 공허함에 대한 위로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이 위로는 총선 직전에야 나왔습니다. 망월동 묘역에서의 무릎꿇기와 시민 속으로 방문한 것 등입니다.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는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너무 늦었'습니다.)

그랬음에도 호남은 문재인을 놓지 않았습니다. 호남은 지난 대선 이후 박원순-문재인-안철수를 차례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지지율 1위를 만들어주었고 오랫동안 3자 간에 황금분할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총선 기간 동안에는 박원순이 실종되면서 문재인-안철수의 양자대결이 되었는데, 정치적 이슈에 따라 둘의 지지율은 요동쳤습니다.

안철수가 탈당했을 때에는 안철수가 앞서다가, 국민의당 내홍이 불거지고 문재인의 인재영입이 성과를 거두며 더민주가 전열을 정비하는 기간에는 또 문재인이 앞섰는데, 하필 안철수 및 국민의당에 유리한 주기일 때 우리는 총선기간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유리한 주기를 만들어준 정치적 이벤트는, 더민주 비례 파동이었습니다.

비례표에서 3등이 된 것은, 교차투표를 감안하더라도 더민주 지도부의 잘못이 분명합니다. (동시에 지역구에서 1등한 것은 김종인 대표에 문재인 전 대표의 조합이 적절하게 이루어졌기에 가능했지요. 어느 한쪽만으로는 안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국민의당과 더민주 사이에서 망설이는 호남인들에게, 마음 놓고 국민의당을 지지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김종인 대표는 호남인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박혀 버렸고, 긍정적인 인상이 기존에 있었다면 아주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국보위 전력 논란까지 더해져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떨어졌던 것입니다. 왜 그렇잖아요. 좋으면 다 좋고, 한번 밉게 보이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이는. 아마 비례 파동이 아니었다면 김종인에 대한 호남인들의 연관 키워드는 '국보위'가 아니라 '순창의 자랑 가인 김병로의 손자'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에 국민의당의 공천 내홍은 귀여운 수준이었죠. 우리는 도끼나 몸싸움 등을 조롱했지만, 가만 보니 새누리/더민주의 공천 과정에 비해 지지를 거두게 할 요소로까지 작동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비례대표 잡음이나 후보 적합성 시비가 가장 적은 곳은 국민의당 비례 명단이었습니다. 1, 2번에 테크노크라트를 공천하여 전문성이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낡은 정치와 싸우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라거나 "1번과 2번에게는 기회가 많았다. 여기서 멈추면 미래는 없다" 등의 카피는, 더민주 콘크리트인 제가 보기에도, 뭔가 '선거 때에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층에게는 이거 먹힐만하다'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정치 저관심층은 상당부분 공보물 및 선거 때에 전달되는 메시지 등에 많이 좌우되는데, 국민의당 정당투표 공보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뭔가 안철수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하는. (홍보 전략은 8번 이태규의 역량이 발휘된 것 같습니다. 공보물 디자인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한것이 눈에 띄었는데요. 비례 7번이 20대의 청년 디자이너인데 그 공이 컸던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에 장악된 언론(특히 종편)의 호의적인 보도 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대선주자란 있을 수 없"으며,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계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문재인의 선언은 우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2015년 2월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문재인은 대표가 된 뒤 차기 대선 지지율에서 3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는데 이는 올해 최고치보다도 높은, 2012년 이후 최고치였습니다. (4월 재보선 패배로 꺾였고, 이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근접은 했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야권 1등 대선주자의 지지율은 상당수 호남에서 평균치 이상(대개 평균치보다 10% 이상 상회합니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데, 이 당시 3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일 때 호남에서의 지지율은 평균치보다 살짝 낮거나 높더라도 살짝 높은 정도에 불과한 뜨뜻미지근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지금 현재로 돌아오면, 4/12 리서치뷰 기준으로(다른 조사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 수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양해하십시오.) 호남 23.4%의 지지는 어느 정도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28.5%의 안철수 지지는 더욱 올라가고요.(저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현재의 전국 15% 내외에서 상승하여, 향후 전국 20% 내외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호남에서의 지지도 하락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의 지지율이 28~34% 사이 혹은 그 이상에서 형성된다면, 문재인은 아무래도 도저히 정계은퇴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민주 당 지지율을 떠받치는 사람이 그대로 사라진다는 것은 글쎄요, 더민주가 망할 작정이 아니고서야. 다른 지역에서의 지지도 상승을 통해 대체할 수 없는 전국적 지도자로 부각된다면, 호남은 이미 박-문-안을 차례로 호명하였듯이 문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문재인이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표현은 유보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호남도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늘 문재인의 말이 정답입니다. "호남 민심이 문재인을 버린 것인지는 (지금 판단할 수 없습니다.)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호남 민심의 최종적인 판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facebook.com/lovisionist/posts/1082222988507434)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더민주 #호남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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