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마지못한 세월호 분향... 이게 최선이었나

리본도 안달고 나오다니... 당 차원에서 유가족 고통 동참했어야

등록 2016.04.19 20:56수정 2016.04.2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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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였던 지난 16일 오후 4시를 전후해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김종인 세월호'가 상위에 올랐습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에 당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런 차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고, 자연스럽게 큰 뉴스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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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정세균 의원이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 ⓒ 지유석


전 운 좋게 김 대표가 분향소를 찾은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김 대표는 헌화하려는 시민들의 행렬에 섞여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 대표 뒤에는 같은 당 정세균 의원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가만히 보니 김 대표의 상의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배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던 제 아내도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지 재빨리 김 대표에게 다가가 노란 리본을 달아줬습니다.

김 대표와 정 의원 주변엔 취재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개 유력 정치인들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취재진을 대동하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더구나 4.13총선에서 더민주가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선 터여서 김 대표의 동선에 취재진들이 벌떼 같이 붙어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김 대표 주변에 취재진은 없었습니다.

김 대표와 정 의원의 세월호 분향소 방문은 많은 언론이 주요 기사로 다뤘습니다. 그러나 동행한 기자들이 취재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김 대표를 본 시민들이 재빨리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기자들이 이걸 '받아서' 기사를 쓴 것입니다.

시민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점이 보기 좋았습니다. 시민들은 보수 정권이 집권했던 지난 8년 동안 대통령 이하 고위 공직자들의 '갑질'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습니다. 그런 터라, 김 대표와 정 의원의 조용한 행보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정치권의 몫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는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사고라기보다 대한민국이 가진 온갖 부조리와 난맥상이 일대 얽혀 있는 사건입니다. 유가족들은 지난 2년 동안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대했던가요?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 이에 대해 다뤘으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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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를 마치고 나오는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 ⓒ 지유석


진상규명 없이는 유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게다가 늘 그래 왔듯이 적당히 덮고 넘어가면 언젠가는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 될 것입니다. 진상규명을 위해선 정치권이 나서야 합니다.

진상규명을 위해선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필요하고, 이 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민간이 할 수 없습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따라서 정치권이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는 어떻게 꾸려졌나요? 정부 여당은 자꾸 세월호 문제를 덮으려 하고, 야당은 의석수 부족을 이유로 몸을 사리니, 유가족을 중심으로 전 국민이 뜻을 모아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해서 겨우 꾸려진 것 아니던가요?

4.13총선을 통해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습니다. 이제 공격과 수비가 바뀌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 선거결과를 정부·여당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야당이 잘해서 야당을 찍은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야당은 잘해야 합니다. 그간 정부·여당이 잘못했거나 외면했던 의제들을 끄집어내 바로 잡으라는 말입니다. 세월호 문제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더민주 지도부가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15일 자 <연합뉴스>는 "국가 주도 행사가 아니라 경기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유족들이 2주기를 조용하게 보낼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관여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취지로 김 대표가 얘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행간을 보니 아무래도 정치적 공방이 일어나는 것을 의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민주 지도부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보다 통 크게 접근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유가족에게 겪게 했습니다. 이제 막 원내 제1당이 된 더민주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을까요?

이 지점에서 2014년 8월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말을 되새겨 봅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어쨌든, 김 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김 대표의 발걸음은 소박했습니다. 그 행보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김 대표의 당내 지위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 앞에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기보다는, 그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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