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꽃차남 백일 무렵어머니와 제규, 그리고 꽃차남. 아이들은 어리고, 어머니는 젊었다.
배지영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지. 나이 들어서 딸 없으면 불쌍해져. 지금이라도 하나 낳아."어떤 사람은 아들만 둘인 내게 말한다. 나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제규와 꽃차남은 열 살 터울, '10년 주기 출산설'을 내세운다. "꽃차남 초등학교 4학년 되면 낳을 거예요. 그래야 딱 열 살 차이 나거든요"라고 성실하게 대답한다. 진짜로 그때 셋째를 낳을 거냐고? 내 진심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런데 올해 4월에는 흔들렸다. 셋째를 낳고 싶었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때문이다. 그는 수도권과 부산, 경남 지역에 지원유세를 다녔다. 나중에는 광주에도 오고, 심지어 우리 옆 동네인 익산까지 왔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진취적이면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와 사진을 찍는 것에 성공했다.
인터넷을 통해 그 감격의 순간을 본 적도 있다. 아기 데리고 간 사람들은 그와 사진 찍는 게 더 수월해 보였다. 아휴, 우리 꽃차남도 아기였는데 어느새 여덟 살. '소년미'만 폴폴 풍긴다. 그 순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꽃차남이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자랑했던 나는 "애가 왜 이렇게 빨리 크냐"고 한탄했다. 나도 모르게 원치 않는 욕망을 품고 말았다.
'1년 8개월 뒤에 대선이니까 얼른 셋째를 낳아야겠어. 통통하고 방글방글 웃는 아기를 데리고 가서 기필코 그분이랑 사진 찍고 말 거야.'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4월 14일 새벽, 우리 집안에는 경사가 났다. 우리 부부의 여섯 번째 손주(큰 시누이 둘째 아들의 둘째 아기)가 태어났다. 신기하게도 우리 꽃차남이랑 많이 닮은 아기. 셋째 낳을까 말까 고민하던 마음은 싹 사라졌다. 내가 지지하는 그가 우리 동네에 온다면, 손주를 데리고 가보리라(조카 부부에게는 양해를 구해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