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의 재출간, 4.3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제주4·3 장편소설 <한라산의 노을> 한림화 작가와의 만남

등록 2016.04.25 09:47수정 2016.04.2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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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주의 바람이 불던 어느 날, 4·3장편 소설 <한라산의 노을>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충격이었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의 신화, 해녀, 전통공예 등을 현장에서 연구해온 저자 한림화가 10여 년에 걸친 취재와 자료조사를 거쳐 써내려간 <한라산의 노을>은 1947년 북국민학교와 관덕정 광장에서 벌어진 3.1운동기념식 시위부터 1949년 6월 인민무장대 총사령관인 이덕구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촘촘히 엮어냈다.


25년 만에 재출간 된 <한라산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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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제주의 바다와 오름, 한라산, 그리고 븕은 노을등 43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한라산의 노을> 표지로 홍진숙 작가 그림 ⓒ 장천

1947년 3월 1일. 관덕정 광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들의 입에서는 한반도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일본이 채 물러나기도 전에 미군정이 들어갔고, 이승만을 등에 업은 서북청년단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안한 권력은 제주의 치안을 명분으로 제주 출신들이 아닌 본토 출신의 경찰들까지 보내기 시작하면서 긴장과 충돌이 잦아지고, 제주도민들은 저항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대대적인 검거와 엄청난 탄압이었다. 제주 섬 사람들이 갈 곳이라고는 신령이 산다는 깊고도 넓은 산인 할머니의 품인 한라산이었다.

3월 1일에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도 보내지 못한 새신랑 돌통이도 산으로 들어갔고, 신축년 성교란(聖敎亂)에도 함께 한 적이 있는 늙은 불미대장도 산으로 들어간다. 테우리(牧者) 양생돌도, 3·1절기념식에서 비참하게 오라비를 잃은 종희도, 설문대할망같이 똑똑하고 당찬 젊은 과부 잠녀 순덕이도, 신식교육을 받은 여교사 양성례도 산으로 들어간다.

인민유격대 총사령관 이덕구의 휘하에 모여든 이들은 모두들 같은 꿈을 품고 있었다. 완전독립된 나라, 남녀평등한 나라, 서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세상이었다. 이들은 점차 난폭해지는 산사람들을 보며 절망하기도 하고, 이념을 앞세우는 남로당에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경찰과 군의 토벌작전 앞에서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라산의 노을>은 4·3의 주요 얼개를 따라가면서 무장대의 아지트, 중산간마을, 해안마을을 숨가쁘게 오가고 수많은 제주의 민초들을 등장시킨다. 취재를 통한 개인의 기억과 자료 속 사건들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촘촘히 엮어낸다. 파편의 역사는 이렇게 뼈와 살을 맞춰가며 점점 더 큰 소용돌이로 몰아치기 시작한다.

작가는 "소박한 꿈을 꾸던 제주도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레드 아일랜드'로 불리기 시작하고, 제주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려버린다. 인민군무장대와 9연대간의 평화회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방해공작으로 인해 결렬돼 버리고, 상황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빠져든 역사를 알리고 싶었다"라며 소설이 나올 당시의 마음과 함께 "김대중·노무현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역사 속에 묻혀 있었을텐데 그나마 이렇게 공론화 된 것은 두 분 대통령의 역사의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 다시 멈추었다. 그래서 세상으로 펴냈다"라며 4·3의 진실 규명이 아직도 미흡함을 강조하였다.

저자 한림화는 이 비극의 역사를 베일 속에서 한 겹씩 드러내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독특한 자연 속에서 특유의 문화를 이루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수많은 제주의 민초들을 등장시킨다. 중산간에 위치한 용마슬 사람들은 낮에는 산속 동굴 속에 숨었다가 밤이면 마을로 돌아오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군경의 소개작전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마을은 잿더미로 변해버린다.

4·3 당시 제주도민 28만 명 중 적게는 3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 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접근하고 있다. 소설은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이야기 한다. 그저 잠녀로, 테우리로, 아내로, 부모로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역사인 것이다.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다.

<한라산의 노을>은 1991년 한길사에서 전 3권으로 나온 바 있다. 그때까지 나온 4·3을 다룬 책 중에서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과거에 비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4·3을 말할 수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 4·3은 과연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가. 우리는 4·3을 묻는 후손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우리는 그 비극의 역사에서 몇 발짝 더 나아갔는가.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소설을 다시 출간하는 의미"라고 제주 토박이 출판사인 도서출판 장천의 권영옥 대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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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람화와의 대화.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제공 한라산의 노을 저자 한림화선생과 작가와의 대화후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 ⓒ 박진우


지난 22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가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현동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공동대표는 "노무현대통령이 2003년과 2006년에 제주에 와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음에 대해 유족과 도민들에게 사과하였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후 정부는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제주사회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재출간이 4.3진실 규명을 촉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 하였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도 "많은 국민들이 4.3을 모르고 있으며, 피해자들이 빨갱이라고 잘 못 알고 있어 아픔이 큰데 이번 재출간이 4.3이라는 아픈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기대"한다고 하였다.

김수열 제주작가회의 대표는 "80년 암울했던 시절에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외로운 조사를 통해 4.3을 세상밖으로 꺼냈음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다시 독자들과 만남으로 4·3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작가 한림화는 1950년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 <가톨릭 시보>의 작품공모에 중편소설 <선률>이 당선되어 한국문단에 입문하여 어릴 적 성산포에서의 기억을 구수하게 써낸 <아름다운 기억>, <꽃 한 송이 숨겨놓고>, <철학자 루씨, 삼백만년 동안의 비밀> 등을 출간 하였으며, 제주43평화재단 이사와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제주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 왔다.

한라산의 노을

한림화 지음,
장천, 2016


#43 #한림화 #한라산의 노을 #노무현 #도서출판 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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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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