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에 떨어진 34억 소송 폭탄, 국가 맞나

[주장] 정부의 강정마을 34억 원 구상권 청구, 위헌적

등록 2016.05.03 15:49수정 2016.05.03 15:49
8
원고료로 응원
대한민국 정부와 해군이 지난 3월 28일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성직자 121명과 5개 단체를 상대로 34여억 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 방해로 공사가 지연되었으니 배상하라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입법권과 행정권과 사법권 등의 우월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어이 없이 몸을 낮추고, 억울하다며 일반 국민의 위치에 서서 다른 국민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받는 국가, 그 국가가 소송을 건다면?

a  천막 앞에 선 강정마을 주민들.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임시 마을회관으로 선포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천막 앞에 선 강정마을 주민들.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임시 마을회관으로 선포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 강정마을회


국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란 결국 정당화된 폭력을 말하는 것이며, 폭력은 어떠한 형태 혹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결코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그 권력적 작용을 최소화할 수록 바람직합니다.

현대적 이론과 선언에 따르면 국가는 헌법에 따라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받습니다.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을 몇 가지로 분류하여 입법권을 국회에, 행정권을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사법권을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수여하고 있습니다. 또 헌법의 수호를 위한 재판권을 헌법재판소에, 국가기관의 합헌적인 구성을 위한 관리권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수여하고 있습니다.

사법권의 행사는 크게 민사재판, 형사재판, 행정재판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행정재판은 국가기관 혹은 공공단체의 기관 사이의 다툼이 있을 때 혹은 국민이 국가 혹은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여 부당한 행정을 바로 잡거나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형사재판은 국가가 범죄로 규정한 행위를 한 사람을 상대로 처벌권의 행사를 하고자 할 때 벌이는 소송입니다. 우리나라도 차츰 영미법의 예를 따라 국가와 피고인이 대등한 관계로 재판을 치르는 제도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사재판은 국민들 사이의 분쟁에 대하여 국가가 옳고 그름을 따져 주는 소송입니다. 그 소송의 결과 원고의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자신의 권리회복을 위한 일련의 강제적 행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민사소송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식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권력의 행사, 곧 폭력의 행사를 최대한 자제하는 선한 정부는 헌법과 법률에서 부여받은 엄청난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전념하느라 굳이 사법권에 기대어 또 다른 권력을 휘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모든 강제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악한 정부는 재판권을 이용해서까지 국민에 대햐여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이중 수탈입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구상권 청구한 정부는 '악하다'

a  4월 10일, 구상권 철회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에 돌입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출동한 경찰들

4월 10일, 구상권 철회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에 돌입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출동한 경찰들 ⓒ 강정마을회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국가기관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이미 '공익'의 이름으로 상처를 입은 국민에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헌법에 따라 부여받지 않은 권력을 부여받고자 하는 그릇된 일입니다. 이미 국가기관은 입법권과 행정권과 사법권 등의 우월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몸을 낮추고 일반 국민과 같은 위치에 서서,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로부터 피해를 입어 억울한 듯이 재판을 시작하는 것은 국가가 부여받지 않은 권리를 억지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공법상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강제력의 행사기한이 5년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국가가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10년의 소멸시효가 있는 채권임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또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재판을 벌이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원칙 중 하나인 '자신이 자신의 소송사건의 재판관이 되지 않는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것에 위배됩니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들은 대개 자신들은 국가적인 공익을 위하여 재판한다고, 자신들은 하나의 국가기관이라고, 나아가 자신들은 국가라고까지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과연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이뿐만 아닙니다. 모든 권력을 가졌다고까지 할 수 있는 국가가 일개 국민들을 상대로 재판을 벌여서 소정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합니다. 따라서 공정하여야 할 재판 과정과 법 논리를 왜곡하게 됩니다.

민사사건에서의 주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재판에 있어서 소위 무기 혹은 저울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서 약자의 보호를 위한 입법을 하는 것도 그러한 균형을 잡기 위한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스스로 원고가 되어서 펼치는 주장에 어느 누가 용감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모든 법률과 논리를 뒤집어서라도 국가의 요구가 받아들여져야 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 재판과정에서 공정한 법의 논리는 왜곡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론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고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수권을 받아서 그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국민들이 자신을 상대로 소송하라고 권력을 주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자가당착입니다.

위헌적일 수 있는 국가의 구상권 청구 소송, 취하해야

a  강정마을이 구상권 철회를 촉구하며 설치한 천막 (임시 마을회관)

강정마을이 구상권 철회를 촉구하며 설치한 천막 (임시 마을회관) ⓒ 강정마을회


국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은 소송을 제기하는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국민들이 자신에게 일정한 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소송 제기가 모순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과연 어느 국민이 자신에게 어떤 의무를 이행하라고 강제하는 소송을 벌이는 것을 용납하기로 하고 국가에게 권력을 수여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가 소위 사경제주체로서 행동할 때가 있는 것이니, 국가가 원고가 되어 민사상의 청구를 하는 소 제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론을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민사상의 청구를 하는 것은 재산을 가진 경우, 계약을 체결한 경우, 혹은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 정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우선 국가의 재산이란 모두 공공재산으로 사유재산일 수 없으며 '국유재산법'에 의하여 규정되어 처리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체결하는 계약은 항상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관련된 불법행위는 국가가 피해를 입힌 경우라면 '국가배상법'에 따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국가가 피해를 입은 경우라면 여러 행정법령들에 따라 행정대집행, 변상금부과, 과태료부과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각종 인·허가의 제한과 입찰을 제한할 수 있으며, 나아가 감치 혹은 형사처벌에 이르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요? 만약 필요하다고 한다면 국가의 국민들에 대한 추가적인 행위는 새로운 입법을 통하여서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지, 사법권의 힘을 빌어 국민을 통제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국가가 사경제주체일 수 있다는 관념은 국가를 상대로 국민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때 사용되어야 하는 개념이지, 그 반대가 되어선 안됩니다.

이와 같이 현행 명령과 규칙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든 혹은 법률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든, 국가가 국민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선한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위헌적인 일입니다. 대한민국정부와 해군이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에 대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취하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희창 기자는 변호사입니다.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마을 #구상권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