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공장에서 닳아 떨어진 장갑으로 가전제품을 조립했다.
선대식
곧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알림판에는 그날의 인원현황표가 붙었다. 내가 있던 라인에 정규직은 모두 7명. 나머지 24명은 파견노동자다. 파견노동자들은 각기 3군데 회사에 속해있다. 이 라인과 공장은 파견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곧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이날 새로 들어온 파견노동자 20여 명이 줄지어 섰다. 각 라인의 관리자들은 파견노동자들을 뜯어봤다.
"그 자리가 비었는데, 남자를 데려가야겠네.""○○○씨가 남자를 부담스러워하던데….""그러면, 이 사람을 데려가야겠네."선택된 이들은 그곳 관리자를 따라갔다. 노예시장에 나온 노예가 생각났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라자고, 나도 한 라인에 배치됐다. 일한 지 몇 시간 만에 파견노동자의 현실과 마주했다.
일을 시작할 때 얇은 실장갑을 지급받았다. 얇은 실로 결어 만든 장갑인 탓에 금세 더러워졌고, 한쪽이 닳아 떨어졌다. 관리자에게 새 장갑을 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째려봤다.
"일주일에 하나 주는 거예요. 다음부턴 없어요."새로 지급받은 장갑 역시 곧 너덜너덜 해졌고, 일을 그만둘 때까지 찢어진 장갑을 끼고 일해야 했다.
두 번이나 고발했지만, '불법파견 공장'은 여전하다1년 전 두 번이나 불법파견으로 고발당한 이 회사에는 여전히 많은 파견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정부는 무얼 하고 있을까. 문상흠 노무사는 "불법 파견으로 걸려도, 벌금 300만 원, 400만 원밖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약한 처벌 규정뿐만 아니라, 지금의 불법을 하루아침에 합법으로 바꾸는 파견법 개정안도 불법 파견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문 노무사는 올 초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신고센터 설치를 요청했다.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 쪽의 답이다.
"곧 법이 바뀔 텐데, 나중에 얘기합시다."지난 4월 20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집권여당의 과반의석은 붕괴됐다. 파견법 개정안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을까. 며칠 전 이 회사와 연결된 파견회사 대표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지금부터 또는 내일부터 ○○○ 라인에서 근무하실 (파견)근로자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