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임자체 정상, 그 앞에서 돌아서다

임자체(6189m) 원정기... 열정의 중년 히말라야에 서다

등록 2016.06.17 09:54수정 2016.06.1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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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의 끝자락에 계절을 건너기 위해 짐을 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모 맥주 광고의 카피가 떠올랐다. 바쁘니까 중년이다. 하지만 중년에도 청년 못지않게 열정이 있다. 열정의 중년, 우리도 히말라야 간다. 5월 20일 오전 11시, 각기 다른 6인의 중년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2016 블랙야크 프로젝트', 히말라야 6189m의 임자체(Island Peak) 등정을 위해 뭉친 김현주 대장과 김민호, 박운범, 변재수, 송남석 대원, 나 그리고 염동우 기자도 동행했다.

a 열정의 중년 우리도 히말라야 간다

열정의 중년 우리도 히말라야 간다 ⓒ 김경수


a 쿰부 히말라야 계곡에서 고소와의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쿰부 히말라야 계곡에서 고소와의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 김경수


블랙홀에 빠지듯 7시간의 긴 터널을 지나 오후 6시,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떨어졌다. 비가 갠 직후라 노면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현지 사다 셰르파인 밍마가 마중을 나왔다. 올해는 몬순이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고 귀띔해 주었다. 환영의 백겹꽃이 대원들의 목에 걸렸다. 낯선 곳 낯선 세상, 천상과 가장 가까운 나라 네팔. 그래서일까. 신의 시샘이 과해 2015년 4월, 규모 7.8의 대지진의 참사를 겪은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들은 한 번도 완벽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부족함을 채우며 진보했다. 오로지 이곳을 오르기 위해 자신을 진화시켰다. 그들에겐 식지 않은 열정이 있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있다. 그들에겐 애환을 담은 자신만의 전설이 있다. 가슴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이름은 중년이다. 다음 날 대원들은 루크라(2840m)로 건너와 임자체 베이스캠프(4970m)를 향해 8일간 트레킹의 장도에 올랐다.

a 끝없는 행렬 이들이 신들의 왕국의 주인이다

끝없는 행렬 이들이 신들의 왕국의 주인이다 ⓒ 김경수


a 등정 임자체를 오르기 위해 진화된 대원들

등정 임자체를 오르기 위해 진화된 대원들 ⓒ 김경수


a 중년의 전설 임자체를 위해 뭉쳤다

중년의 전설 임자체를 위해 뭉쳤다 ⓒ 김경수


팍팅(2610m)을 지나 지상 가장 높이 시장이 있는 남체 바자르(3440m)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잠시 숨을 골랐다. 2400km 히말라야 산맥의 심장부로 들어왔다. 캉주마(3550m), 텡보체(3860m)를 지나 쿰부 히말라야의 메인 계곡을 따라 딩보체(4530m)를 거쳐 추쿵(4730m)까지 58km를 거침없이 올랐다. 얼굴이 붓고 기침이 심해졌다. 가쁜 호흡과 잦은 기침에 발목을 잡히는 횟수 늘어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히말라야는 점차 본색을 드러냈다.

고산 등반은 시간과 인내의 과정이고 고소와의 싸움이다. 비록 두통과 무기력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더디 갈수록 아마다블람, 로체 남벽, 마칼루, 꽁데의 화려하게 빛나는 쿰부 히말라야의 설산 고봉들과 마주하는 행운을 누렸다. 임자체 등정 D-1 정오, 진눈깨비를 가르며 베이스캠프(4970m)에 올라섰다. 신의 영역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a 스님들의 행렬 네팔의 부처님 오신날 행사

스님들의 행렬 네팔의 부처님 오신날 행사 ⓒ 김경수


a 좁교와 함께 야크와 물소의 교배종

좁교와 함께 야크와 물소의 교배종 ⓒ 김경수


a  로지 숙소에서 본 아마다블람

로지 숙소에서 본 아마다블람 ⓒ 김경수


a 로체 남벽이 보이는 능선을 따라

로체 남벽이 보이는 능선을 따라 ⓒ 김경수


5월 29일 오전 1시 10분,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고 임자체 정상을 향한 등정에 섰다. 혼돈이 휩쓸고 지나간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진은 아직도 꿈틀댔다. 자칫 발을 헛디디거나 강풍에 밀리면 낙석에 묻힐 수 있는 위험이 발끝에서 전해왔다. 목숨을 건 등정 앞에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전 3시 40분, 하이캠프(5400m)의 흔적을 봤지만 스쳐지나가는 길목에 불과했다. 숨쉬는 게 힘들었다. 몸은 균형을 잃어갔다. 체내의 에너지는 거의 방전됐다. 대신 빈자리는 정신력이 끌어줬다. 셰르파 밍마는 여러 차례 하산할 것을 종용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a  기어코 올라선 임자체 베이스캠프(4970m)

기어코 올라선 임자체 베이스캠프(4970m) ⓒ 김경수


a  임자체 정상 등정을 위한 마지막 전략회의

임자체 정상 등정을 위한 마지막 전략회의 ⓒ 김경수


a  밤새 오른 위험천만한 너덜지역

밤새 오른 위험천만한 너덜지역 ⓒ 김경수


오전 6시 40분,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히말라야 임자체. 굽은 산길, 깎아 세운 절벽, 위험천만한 돌 더미의 너덜지역을 따라 하염없이 오르다 마지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신들의 왕국, 히말라야! 5800m 아이젠 포인트에서 만년 설산의 경계와 만났다. 그리고 염동우 기자와 김현주 대장과 번갈아 부둥켜안고 눈물을 삼켰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올랐는가? 너는 이 한계를 넘어설 열망이 있는가?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광을 보려는 바람이나 욕심만은 분명 아니었다.

a  설산면을 넘어선 김현주 대장, 변재수, 송남석 대원

설산면을 넘어선 김현주 대장, 변재수, 송남석 대원 ⓒ 김경수


a  임자체 정상을 눈앞에 둔 송남석 대원

임자체 정상을 눈앞에 둔 송남석 대원 ⓒ 김경수


a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광 임자체를 바라보는 필자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광 임자체를 바라보는 필자 ⓒ 김경수


대원 간 희비가 교체했다. 김현주 대장, 변재수, 송남석 대원은 오르고, 나는 거기서 발걸음을 멈췄다. 우리에겐 모두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임자체 정상을 향한 대원에겐 간절함이 있었고, 나에겐 없었다. 그들은 설산을 사랑했고, 나는 그 산을 그저 바라만 봤다. 오르던 대원들의 뒷모습이 사라졌다. 임자체 설산 경계 언저리를 머뭇거리다 자존심을 묻고 하산을 단행했다. 목숨을 건 하산 길에 밍마가 휘청거리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 산은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a 기어코 임자체 정상(6189m)에 오른 대원들

기어코 임자체 정상(6189m)에 오른 대원들 ⓒ 김경수


a 송남석, 김현주(대장), 박운범, 변재수, 김민호, 필자 텡보체에서

송남석, 김현주(대장), 박운범, 변재수, 김민호, 필자 텡보체에서 ⓒ 김경수


6월 3일, 열흘 넘게 5천 미터 고산을 넘나들다 다시 카트만두로 내려온 날,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별세 소식이 포탈사이트의 화면을 채웠다. 링 위에서 링 밖에서 모두를 위해 싸웠던 그의 어록이 떠올랐다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막과 오지레이스는 시간, 체력, 경비 중 두 가지만 충족되면 나머지 하나는 더불어 채워진다. 단, 열정이 있을 때 말이다. 임자체 원정대에 진정 낮은 자세로 함께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공존하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은 시간, 체력, 경비에 목숨을 담보로 한 간절함이 있어야 했다. 아직 50대 중반,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히말라야. 임자체 등정보다 더 소중한 삶의 지혜를 얻고 왔다.

a 대원들의 함박웃음 중년에게도 열정은 있다

대원들의 함박웃음 중년에게도 열정은 있다 ⓒ 김경수


a 나는 나의 길을 간다(필자) 웃어서 행복하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필자) 웃어서 행복하다 ⓒ 김경수


곤경에 빠뜨리는 것도, 건져내는 것도 나 자신이다. 삶이 발목을 잡고 어깨를 짓눌러도 이젠 천천히 가야겠다. 나를 가로막는 나, 나를 이기는 힘은 천천히 가는 것. 용감해서 히말라야로 떠난 건 아니다. 인생에서 한 번쯤 모든 것을 걸고 떠나야 할 길이 있다. 아직 식지 않고 살아 숨 쉬는 도전과 열정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도착한 서울이 벌써 폭염에 휩싸였다. 나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잊혀져갈 뿐이다.
#사막 #오지 #김경수 #히말라야 #임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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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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