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낮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안산 노동자들의 모임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 좋은 이웃'의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좋은 이웃
홍씨는 "처음에는 그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처럼 기본급에 상여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혹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 파견노동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2013년 설 연휴를 앞두고 한 파견노동자가 홍씨에게 말했다.
"이번에 그만둔다면서?"회사는 홍씨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퇴사 소문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출근했다. 설 연휴가 끝난 뒤, 파견회사 쪽은 그에게 사직서를 내밀었다.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챙겨주겠다고 했다. 홍씨는 거부했다. 곧 회사는 그를 다른 지역으로 발령 냈다. 출근이 불가능했다.
홍씨는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도움으로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을 냈다. 그러자 이 회사 황아무개 총무부장이 홍씨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200만 원 줄 테니까, 그만하자."홍씨가 거절하자, 황 부장이 부르는 돈의 액수는 커졌다. 1000만 원까지 불렀다. 홍씨는 "회사와의 싸움이 장기화되는 모양새였다. 월세와 가스요금이 많이 밀린 상황이었다. 1000만 원에 마음이 흔들렸다"라고 말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그는 결국 늦은 밤 황 부장에게 연락했다.
"2000만 원 가져오면, 사인하겠다."이튿날 황 부장은 한 카페에서 5만 원짜리 현금 다발 2000만 원을 홍씨 앞에 내보였다. 그는 "사인하고 끝냅시다"라면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홍씨의 심장은 벌렁벌렁 뛰었다.
홍씨의 말이다.
"그 순간, '끝까지 함께 하자'고 하던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과 노무사, 항상 '형님 괜찮으세요?'라고 걱정해준 동료 파견노동자의 얼굴이 스쳤다. 사인하고 돈을 챙긴 뒤, 전화번호 바꾸면 그만이다. 이 사람들 안보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겠더라."그는 황 부장에게 "기다려 달라"라고 말한 뒤, 박재철 센터장을 찾았다. 고깃집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홍씨는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토로했다. 박 센터장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끝까지 만나겠다.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황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심상 도저히 돈을 못 받겠다. 미안하다. 돌아가 달라."홍씨는 며칠 뒤 회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돈 때문에 저렇게 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2주가량 1인 시위를 이어가자, 회사는 두 손을 들었다. 회사는 30여 명의 파견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다. 다만 홍씨의 퇴사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홍씨를 이를 받아들였다.
2013년 4월의 일이다. 그는 기자에게 "그 전에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를 노동자로 자각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면서 "내 옆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서 끝까지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