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까지 책 안 봤다"는 출판사 사장, '독특한' 포부

[인터뷰] 절판 도서 다시 내는 출판사 '최측의 농간' 신동혁 대표

등록 2016.07.04 21:22수정 2016.07.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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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기사를 쓰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평을 써 줘 고맙다는 출판사나 저자 또는 독자들의 쪽지를 받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출판사가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검토해 달라'는 부탁의 쪽지를 받기도 한다.

더러는 '소개한 책 저자의 글이 함량미달이니 그 글에 현혹되지 말라'와 같은 이해 못할 쪽지나, '책 홍보하느냐?' 다짜고짜 비방하는 쪽지를 받기도 하지만, '서평이 힘이 된다'는 쪽지를 받을 때면 늘 기분이 좋다. 글쓰는 데 힘이 된다.


최근 내게 신선한 감동을 준 '최측의 농간'이란, 이름도 낯선 이 출판사를 알게 된 것은 지난 3월 어느 날. <은빛 물고기>란 책을 냈으니 관심 가져 달라는 출판사의 쪽지를 받고서다.

비록 인쇄된 글이었으나, 책과 함께 온 몇 장짜리 손 편지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뭣보다 '절판된 도서 복간'이 출판사 방향이란 것이 신선했다. '책도 책이지만 출판사 인터뷰도 좋겠다' 생각했다. 덧붙이면, 이제까지 만난 출판사 중 가장 독특하다 싶은 출판사다.

그런데 하필 <은빛 물고기>를 읽기 시작할 무렵 고단하고 어수선한 일이 많았다. 반면 <은빛 물고기>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 제대로 느끼려면 좀 여유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제대로 느끼고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 그러나 읽거나 놓거나가 반복됐다. 결국 서평도, 출판사 인터뷰도 진행하지 못했다.

그러던 5월 중순 어느 날. 출판사 대표 신동혁씨에게 전화가 왔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것. 서평을 써주지 못해 가뜩이나 미안한 터라 난감했다. 그런데 그의 뜻은 간절했다. 6월 1일에 그를 만났다. 그날 1시간 30분 가량 나눈 책 이야기 그리고 이후 서면 인터뷰한 것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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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최측의 농간' 대표 신동혁 씨. ⓒ 김현자


- <은빛 물고기>, 다 못 읽었지만 매우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이더군요.
"<은빛 물고기>는 고형렬 시인이 10년 넘게 연어의 일생을 추적하며 쓴 장편 산문입니다. 시와 삶의 무게로 방황하며 떠돌던 작가가 태백선 열차 안에서 우연히 연어가 남대천에 돌아온다는 찢어진 신문 한 귀퉁이의 기사를 읽게 되고, 그를 계기로 10년 넘게 연어를 따라 가며 쓴 글이죠. 맞아요. 매우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꼭 서평을 써달라고 보내드린 것보다 이런 책이 있다, 존재라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이제 막 출발한 2인 출판사입니다. 그만큼 책 홍보가 어렵고. 그래서 가급 이처럼 직접 찾아뵙고 발간 취지를 알리기도 하는데, 공연히 부담만 드린 것 아닌가 싶어 죄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낸 책은 꼭 만나 뵙고 이야기도 듣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입장인데, 읽기도 전에 출판사의 일방적인 소개글로 선입견이 생길까봐 보도자료를 사실 잘 안 읽어요. 그런데 직접 손 글씨로 쓴 것까지 보내셔서 특별하게 와 닿더군요. 이 사람 책에 대한 애정이 참 특별하구나 싶고.
"스물 다섯 살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았어요.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어색할 정도였죠. 스물다섯 살 때 실연으로 참 많이 아팠는데, 그때 우연히 책을 잡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 마음을 보게 되고, 지난날도 돌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너무 좋은 겁니다. 그 무렵 한 친구를 알게 됐는데, 그 친군 정반대로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좋아해 많은 책을 읽었고, 그만큼 책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스물다섯에야 알게 된 책이 얼마나 좋던지 둘이 허구한 날 책만 봤습니다.

아르바이트 몇 달 열심히 해서 돈이 조금 생기면 일을 그만두고 둘이 붙어 책만 읽었죠(그 친구는 최측의 농간 유일한 편집자다). 몇 년 그렇게 살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더라고요. "정신없이 일하고 부지런히 모아도 힘든데, 너네들 그렇게 허송세월해 돈은 언제 벌고 어디 장가나 가겠냐?", "젊음이 아깝다", "책에서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잘 사는 사람 없더라" 뭐 이런 식으로 말하며 한심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그는 지난해 결혼했고, 현재 대학원생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래 맞다. 정말 실감했습니다. "


- 그때 그렇게 미쳤기 때문에 저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은빛 물고기>와 같은 더 많은 책들도 알고 있는 것이니 결코 허송세월은 아니죠. '책 속에 길이 있다' 맞아요. 책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나 이성적인 판단, 그런 것들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힘이 되고,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하니까. 그런데 어떤 계기로 절판도서 복간 출판사를 생각했을까요?
"그 친군 제삶에 큰 행운이죠. 그렇죠. 그때 그렇게 읽은 덕분에 우리가 지금처럼 재미있게 책을 만들고 있으니. <은빛 물고기>는 고형렬 작가가 10년 동안 쓴 책입니다. 한 사람이 책 한 권을 쓰는데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그 10년 동안 쓴 글이 나온 지 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절판되고 잊혀져 그 누구도 그런 책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게 되는 건 참 헛헛한 일입니다. 대학 시절 소설가 김훈 선생님의 글을 통해 <은빛 물고기>라는 장편 산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전해지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 그 누구도 그 책의 존재를 알지 못하더란 거죠.

<은빛 물고기>처럼 안타까운 책들이 많습니다. 빛조차 못보고 사라지는 좋은 책들도 많고. 어떤 절판도서들은 정가의 수십 배 가격으로 은밀히 거래되고 있죠. 단지 읽고 싶어 무단 전재와 복제란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일본에서는 여러 출판사가 연대해서 인터넷을 통해 대중들에게 절판된 책 중 꼭 다시 나왔으면 하는 책들의 목록을 받아 투표를 진행하고 차근차근 복간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데 우리의 현실은 전혀... 아마 우리처럼 또 누군가 어떤 절판도서를 목 메도록 찾아다니기도 할 것 같고. 그래? 그럼 우리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이왕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직접 부딪쳐 만들어 볼까? 친구와 뜻을 모았죠. '최측의 농간'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절판된 도서를 구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절판 도서 복간이란 출판사 방향이 너무나 반갑긴 해요. 그런데 복간이 힘들지 않나요? 저작권문제도 있고.
"절판 도서 복간이란 포부를 밝히자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도 처음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예상도 했고 그래서 걱정이 컸습니다. 복간 희망 리스트 책 저자들이 지금은 대가나 원로가 되신 분들도 많고, 행방이 묘연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이제 막 발을 떼기 시작한 출판사다보니 믿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 선뜻 허락해줄까? 걱정이 컸죠. 그런데 몇몇 분께 연락을 드리고 저희 작업의 취지를 설명 드렸을 때, 저희가 도리어 더 크게 감동할 정도로 흔쾌히 복간을 동의해주시고,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책(관련기사 : 시집 한 권 내지 못 하고 살다 간 여림 유고 전집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처럼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자료까지 주신 분들도 있고."

- 단지 절판이라는 이유만으로 복간 대상은 당연히 아니죠?
"현재 200권이 넘는 절판 도서 목록을 가지고 있는데, 출판사로서 어떤 전략적 판단이나 수익성 등을 고려해 확보한 리스트가 아닙니다. 책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책이 있는 곳들, 예컨대 대형서점, 동네의 작은 서점 헌책방 등을 전전하며 찾고 읽고 팔고 다시 찾고 다시 읽는 가운데 조금씩 쌓인 목록들이죠. 헌책방 한 모서리에서 마침내 찾아내 설렘 반 기쁨 반으로 천천히 한 장 한 장을 넘겨봤던 책들이 있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만날 수 없었던 책들도 있죠. 거의 대부분의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는 책들도 많고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발행을 꺼려하고 있는, 그러나 분명 시대를 초월하는 어떤 지점들을 건드리고 있는 시적이거나, 철학적인 글들이 실려 있는 책들도 복간도서 순위에 들어가 있죠. 오직 책 그 자체 가치가 우선이죠. 여하간 분명한 원칙은 '세월이 지나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을 복간하자. 어떤 경우든 우리는 절판시키지 않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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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최측의 농간이 펴낸 책들. 왼쪽부터 <無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 <은빛 물고기>,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펴낸 순서다. ⓒ 최측의 농간


-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도, <은빛 물고기>도, 책표지가 참 편안하네요. 소박하다고 해야 하나? 표지에 끌려 사는 책도 있는데 전혀 아니지만 싫지는 않네요. 여튼 들고 다니며 읽기는 좋겠어요.
"출판 관련 어떤 사명감과 소명보다, 읽고 싶었지만 읽기 힘들었거나 읽기 불가능했던 그런 책들을 직접 만들어서 읽자 라는 생각을 앞세워 시작했습니다. 책은 좋아하지만 출판 전반을 모르니 모든 면에서 서툴 수밖에 없구요. 하지만 외주로 맡겨 번듯하게 만드느니 좀 촌스럽더라도 우리가 모든 것을 하자입니다.

모르면 배우자. 현재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다. 사실 원칙은 분명하게 세웠습니다. 표지 등에 지나친 치장을 해 그로 책값이 올라가지 않게 하자. 누구든 가방에 부담 없이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최대한 편안하고, 최소한 가벼운 책으로 만들자. 그래서 책 크기도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겁니다. 한손으로 감싸 쥐고 읽을 때 방해가 되는 양장본 표지도 쓰지 않을 겁니다."

- 2인 출판사로서 그간 낸 책이 3권. 워낙 특별한 책들을 복간하니 다음 책을 기다릴 독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 다음에 나올 책은? 출판 관련 계획은?
"200여 권 목록 중 현재 발간이 확정된 책은 10권입니다. <비어 있는 중심>(김정란 저)과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허만하 산문집)를 각각 7월 말과 9월 말에. '이연주 시전집 <매음녀가 있는 방의 시장>과 <속죄양 유다> 이 두 권을 합한 한 권짜리 책이 11월에 나올 예정입니다. 양주동 박사님의 <문주반생기>를 내년 2월에 발간할 예정입니다. 그간 발췌본만 나왔는데, 모든 내용을 담되 가볍고 작아 들고 다니기 쉽고 늘 펼쳐보기 좋은 그런 형태로 거듭나게 할 계획입니다.

조급하게 복간하기보다 새로운 편집을 통해 가독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조금 더 나아지는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보다 꼼꼼히 숨고르기를 하며 출간 시기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원형 그대로 복간보다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처럼 원형에 최대한의 자료를 더할 생각이고요. 그러자면 더 많이 노력해야겠죠. 기계적으로 신간을 발행하는 것보다, 어렵게 한 번 더 세상에 내미는 책들이 '다시 잊히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한 권 한 권 작업하고 있으니 많이 지켜봐 주세요."

은빛 물고기 - 연어 이야기

고형렬 지음,
최측의농간, 2016


#절판 도서 #복간 출판사 #최측의 농간 #은빛 물고기 #여림 시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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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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