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날, 순댓국이 땡기는 이유

[먹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장마철에 더 맛이 나는 '순댓국' , 그리고 비오는 날

등록 2016.07.04 10:36수정 2016.07.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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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장마'라고 하더니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장맛비가 얼마 전 한꺼번에 내렸습니다. 더웠던 날씨도 장맛비가 내리면 조금은 서늘해지죠. 장맛비 내리는 소리, 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기분에 따라 빗소리가 다르게 들리기도 하지요. 간혹 대학 시절 비 오는 날마다 들르던 단골 술집의 분위기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간혹 비가 오는 날, '일탈'을 꿈꾸시는 이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비 핑계로 일을 대충 마치고 어디 가서 파전에 막걸리 마실 생각을 하실 분 많으실 거예요. 옛날 농사짓던 시절에는 이런 일탈이 통했지만 요즘 같은 시기엔 그냥 '백일몽'일 뿐이죠. 퇴근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우중 낮술'을 꿈꾸라니요.

바로 이 '일탈'을 얼마 전 저질렀습니다. '먹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연재의 일환이라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장맛비가 쏟아지던 오후, 서울 석관동 골목의 한 순댓국집에 갔습니다. 비가 내려 서늘해진 어느 오후에 맛본 순댓국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묘하게 장마철과 순댓국은 잘 맞습니다

a  장맛비가 내리는 오후, 순댓국집이 있는 골목의 모습입니다. 절로 순대국에 소주 생각이 나게 되네요.

장맛비가 내리는 오후, 순댓국집이 있는 골목의 모습입니다. 절로 순대국에 소주 생각이 나게 되네요. ⓒ 임동현


장맛비가 오면 더웠던 날씨도 조금 서늘해집니다. 서늘해지면 그간 먹었던 찬 음식보다는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되죠. 커피도 아이스커피가 아닌 따뜻한 커피, 음식도 냉면이나 콩국수보다는 칼국수나 순댓국 같은 메뉴가 더 생각이 납니다.

특히 순대와 돼지고기, 각종 내장 등을 넣고 끓인 순댓국은 장마철과 묘하게 잘 맞는 느낌입니다. 계속 비가 내리는 날씨에는 세련된 음식보다는 뭔가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음식이 그리워지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간단하게 술 한잔 하고픈 마음도 생기게 되죠.


순댓국에 숟가락을 넣으면 큼지막한 고기들이 잔뜩 눈에 들어오게 되죠. 고기와 순대가 가득 들어있는 국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양념장을 넣고 밥을 말아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이고 여기에 소주도 한 잔 곁들이면... 빗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게 됩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순댓국집이 늘어나 이제는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순댓국집 두세 곳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특징은 순댓국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메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다는 것이죠. 깨끗한 분위기에서 먹는 프랜차이즈 순댓국 맛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a  팔팔 끓은 순댓국 한 그릇

팔팔 끓은 순댓국 한 그릇 ⓒ 임동현


그런데 제 선입견일까요? 순댓국은 깨끗하고 넓은 곳에서 먹는 것보다는 골목에 있는 허름한 집, 다른 메뉴는 일절 없이 순댓국과 머리 고기, 순대, 내장 등만을 파는 곳에서 먹는 게 더 맛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이것저것 팔면서 생색을 내는 것보다는 한 음식으로 승부를 거는 음식점이 더 맛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순댓국 육수를 내는 것만 해도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겠습니까?

순댓국, 마음에 위안을 주는 음식

골목에 위치한 순댓국집에 들어가 '목적대로'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켰습니다. 반찬이 먼저 나왔습니다. 김치와 깍두기, 풋고추, 마늘, 쌈장이 나왔습니다. 김치를 먹어보니 이제 막 익기 시작한지 라 시원하면서 깔끔한 맛이 납니다. 김치 맛을 보고 소주 반 잔을 마시니 어느새 펄펄 끓는 순댓국이 나왔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대로 순댓국은 새우젓으로 간을 합니다. 새우젓은 돼지고기를 소화시키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면서 소금보다 덜 짜기에 자칫 필요 이상으로 많이 넣어 국물이 짜게 될 우려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순댓국을 먹을 때는 필히 양념장을 넣습니다. 그래야 돼지 냄새가 덜 나고 비린 맛이 없어지는 대신 시원한 맛이 나기 때문이죠. 뭐 이건 취향의 문제니까 이렇게만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입맛에 맞는 순댓국을 만들어내고 밥을 말아 김치 깍두기를 곁들이고 소주 한 잔을 마시는 순간 비로소 '일탈의 즐거움'이 느껴졌습니다.

'캬! 이게 바로 자유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왕도 부자도 안 부럽다네!'

그렇게 국밥을 먹다 보니 슬며시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땀으로 나오는 듯합니다.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던 사이 빗줄기가 더 굵어지네요. 잠시 일손을 놓고 있던 순댓국집 이모님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가 왠지 정겹게 들립니다. 이모님들은 알고 지내던 것 같은 어르신이 지나가자 대뜸 감자를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이날의 일탈이 없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푸근함이었습니다.

a  순대, 고기, 내장 등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순대, 고기, 내장 등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 임동현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아무래도 이런 뜨거운 음식을 드시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날 소나기가 내리고 뭔가 서늘함이 느껴지는 날이 되면 순댓국 한 그릇 먹고 땀 한 번 흘려보는 건 어떨지 제안해봅니다.

마음고생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한 그릇 먹고 나면 그 고생이 땀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조금은 마음이 평안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음식은 때론 몸은 물론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주고 걱정을 조금이나마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답니다.
#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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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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